국내 반도체 업계가 새해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전세계 정보기술(IT)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최근 취임한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기업에 지급하기로 한 반도체 보조금 규정을 뒤엎을 가능성을 보이고 있어서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 상무부 장관 지명자는 미 의회에서 열린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반도체법에 따라 보조금을 지원받기로 미국 정부와 최종 계약을 했더라도 신행정부가 내용을 재검토하기 전에는 지급을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트닉 지명자는 트럼프 2기에서 산업, 무역 정책을 총괄할 예정이다.
그는 반도체법 보조금을 받기로 미국 정부와 확정한 계약을 이행(honor)하겠냐는 질문에 “말할 수 없다. 내가 읽지 않은 무엇을 이행할 수 없다”며 “이행을 약속하기 위해서는 계약을 읽고 분석해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국내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와 보조금 지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기 위해 370억 달러 이상의 최종 투자 규모를 결정하고 지난해 12월 20일 미국 상무부와 47억4500만달러(약 6조9000억원)의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계약을 최종 체결했다.
또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를 건설하기로 했으며 최대 4억5800만 달러(약 6639억원)의 직접 보조금 지급이 결정됐다.
만약 미국 상무부가 보조금 중단 가능성을 시사할 경우 이들 기업의 공장 건설 일정에는 차질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등장도 국내 반도체 업계 입장에서는 그리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딥시크의 충격으로 대중 AI 반도체 수출에 대해 추가적인 제재를 고려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기업 역시 이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엔비디아에 HBM(고대역폭메모리)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딥시크의 등장이 더욱 뼈아프다.
딥시크가 지난 20일 공개한 AI 모델 ‘R1’은 오픈AI가 만든 챗GPT와 비슷한 성능을 보이고 있다.
차이는 가격에서 난다. 딥시크가 밝힌 개발비는 557만6000달러(약 80억원)으로 오픈AI GPT4 개발비의 18분의 1 이하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실적 발표 직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딥시크에 대해 “시장 내 장기적 기회 요인과 단기적 위험 요인이 공존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여러 고객사들에게 공급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업계 동향을 살피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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