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훈 대표이사 인터뷰
지난해 청라국제도시 한 아파트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다. 지하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전기차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다가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더니 순식간에 주변으로 옮겨붙었다. 화마는 8시간 20분 이 돼서야 완전히 잡혔다. 이 화재로 23명의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됐고 900대가 넘는 차량이 열손 피해를 봤다. 800명이 넘는 입주민이 일상을 잃었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 초기 대응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아직도 전기차 화재 악몽이 남아 있는 장소에 이 회사의 ‘전기차 화재 확산 지연 시스템’이 설치돼 있었다면 어땠을까.
24일 매경닷컴이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육송 본사 사옥에서 만난 박세훈 육송 대표이사는 “전기차 화재 발생 시 가장 중요한 초기 대응은 감지”라며 “아무리 좋은 화재 진압 시스템이라도 감지 속도가 빠르지 않으면 골든 타임을 놓치게 돼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기차발 화재는 대부분 불길이 빠르게 확산하고 열폭주 우려가 크다는 특징이 있다. 소방기관이 출동하기 전, 현장에서 초기 조치해야 한다. 스프링클러가 터질 때는 이미 늦었다”며 “육송이 개발한 자동 화재 확산 지연 시스템은 화재를 신속히 진압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앞으로 도입이 잇따를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육송이 자체 개발해 특허 등록을 마친 이 시스템은 ▲1단계 인공지능(AI) 기반 16개 센서로 온도감지 ▲2단계 불꽃감지 ▲3단계 화재 알림 ▲4단계 1차 밸브 개방 ▲5단계 2차 밸브 개방 ▲6단계 8개 노즐 동시 방사 등 총 6단계로 작동한다.
통상적으로 화재감지는 30초 이내, 살수는 그로부터 5초 이내에 시작된다. 전 과정이 무인으로 움직인다.
박 대표는 “AI가 화재라고 인식할 수 있는 온도를 학습하면 밸브 개폐 판단부터 토출압력이 어느 정도로 설정돼 있는지, 몇 개의 베드를 작동시켜야 하는지까지 실시간으로 계산해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며 “만약 화재 발생 시 신고해 주는 자동 화재 속보 설비가 건물에 적용돼 있다면 온도감지와 동시에 인근 소방서로 알림이 간다”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은 전기차 주차 공간 지면에 설치된다. 차량 아래에 아연 도금과 특수 도장 처리된 패턴 강판이 매트리스처럼 깔리는 모양새라 주차 베드라고도 불린다. 실용성에 방점을 둔 디자인이다.
경쟁사가 공급 중인 자동차를 통째로 물에 담그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거대한 수조 형태의 제품은 설치와 관리가 쉽지 않다. 주차면당 6톤에 육박하는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특수 재질의 튜브가 자동차를 감싸고 올라오면서 불을 꺼 주는 제품도 있지만 바람이 튜브를 부풀리는 데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박 대표는 “제품 개발을 하면서 제품의 형식 및 구조에 대한 고민이 컸다”며 “결국 시공성과 사후관리의 편의성을 확보하고 하중을 견디면서도 노즐의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 현재의 디자인을 선택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 건수는 2021년 24건→2022년 43건→2023년 72건으로 증가세를 나타냈다. 전기차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이 높아지고 전기차 보급 확대 노력이 이어지면서 안전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포르쉐코리아는 지난 14일 서울 성동구 애프터서비스(AS)센터에 육송의 전기차 화재 확산 지연 시스템을 설치했다. 지난해에도 LG전자의 서울 마곡·가산·서초 연구개발(R&D)센터와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 구축을 완료했다. 이밖에도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배터리 제조사와 한국은행·NH농협 등 금융회사, 백화점·쇼핑몰 등 유통회사, 대단지 아파트 주차장에 시스템 도입을 협의 중이다.
박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보급률이 상승하고 있다. 전기차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기준이나 법령도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라며 “소형화와 경량화를 목표로 제품 업그레이드를 지속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육송은 1990년 설립된 소방용품 및 시스템 제조 능력을 보유한 기업이다. 자체 R&D를 통해 전문소방용품을 지속적으로 개발·공급하고 있다. 대표 제품으로는 꼬임 방지 소방호스와 소방대원들이 직접 사용하는 화재 확산 방지용 전기차 소방 노즐, 전기차 발화 시점부터 화재 초기 진압을 돕는 전기차 자동 화재 확산 지연 시스템 등이 있다.
육송의 본사와 공장은 경기도 안성시와 포천시에 자리를 잡고 있다. 연봉은 동종업계 평균 이상이다. 경조사비·결혼자금·학자금 등 지원금과 휴가비·귀향비·노트북·유니폼 등 선물을 지급하고, 임직원 기숙사 및 구내식당을 운영해 아침·점심·저녁 세 끼를 모두 제공하는 점도 매력적인 복지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