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11.30 15:35:10
LGU+마스터즈 2위 등 톱클래스 출신, 아이리그 초기부터 빌리언트쌤 참여, 태권도장 찾아 학생선수 수급 해결
필자는 지난 9월 ‘3쿠션 세계1위 시장 한국, 이제 지도자 문화 구축할 때’라는 칼럼을 썼다. 칼럼을 통해 한국 당구가 미래지향적 행보를 지속하려면 ‘학생 선수 없는 종목은 미래가 없다’는 경고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인프라를 바탕으로 학원 스포츠를 접목해 꿈나무 육성을 체계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조명우 등을 중심으로 한국 당구 톱클래스층이 20~30대 위주로 재편하는 만큼 장기 비전을 꾸리려면 학원스포츠 틀을 명확하고 지도자가 양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타깝게도 전문 지도자 또는 지도자 활동과 관련한 당구인의 의식과 참여는 현실과 괴리가 크다. 대한당구연맹(KBF)이 진행하는 ‘당구 꿈나무 무대’ 유청소년클럽리그(아이리그, I-League)만 봐도 알 수 있다.
KBF는 지난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아이리그 공모 사업에 도전해 사상 처음으로 선정됐다. 일반 학생이 당구를 쉽고, 친근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당구대 앞에 서게 했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에 ‘빌리언트쌤’이라는 슈퍼바이저를 두고 레슨을 시행했다. 학생이 당구를 받아들이기 쉽게 기존 경기 방식이 아닌 스트로크대회를 구상, 문제 풀이 형태로 진행했다. 참여 학생 수는 늘었다. 그러나 지도자 구실을 하는 ‘빌리언트쌤’의 참여율 저조 등이 맞물리며 2024년엔 사업을 진행하지 못했다.
올해 다시 시행하게 된 건 KBF가 시행한 당구와 과학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프로그램 등에 문체부가 높은 점수를 주면서다. 하지만 KBF는 아이리그 공모사업 형태에 맞춰 전국 50개 리그를 구성하려고 했는데 지도자 참여율이 떨어져 애를 태우고 있다.
당구인의 사정도 이해할 만하다. 아이리그 사업 취지를 이해하고 있으나, 리그 참가를 위해 학생 선수를 직접 꾸리는 과정 등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기 어려워한다. 또 종목 특성상 선수 생명이 긴 만큼 ‘선수활동’에 주력하려는 이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아이리그 초창기부터 꾸준하게 빌리언트쌤으로 참가하면서 지도자로 비전을 품는 이가 있다. 2017년 ‘LG유플러스3쿠션마스터스’ 2위 홍진표(대전당구연맹)다. 그는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한다. 한양대 대학원 체육학 박사학위를 따기도 한 홍진표는 이론을 기반으로 일찌감치 지도자의 매력을 느꼈다.
그는 당구인이 아이리그에 지도자로 참여하는데 난제로 꼽는 선수 수급과 관련해 동네 태권도장과 손잡는 묘안을 떠올렸다. “2022년 처음 시작할 때 학생 선수 수급하려고 (포털사이트) 카페 등에 게시글을 올렸는데 원하는 만큼 인원이 안 모이더라. 고민하다가 (대전에) 친구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이 생각났다. 태권도장은 주말에 다른 스포츠 활동을 많이 한다. 당구를 제안해서 몇 번 해봤는데 반응이 괜찮더라. 그 친구가 다른 태권도장을 연결해 주기도 했다.”
태권도장에 매달 4회 또는 6회 당구수업을 시행한다고 공지했다. 첫해 60여 명이 몰렸는데, 시간이 갈수록 줄었단다. “아무래도 어린이가 당장 긴 큐를 들고 당구를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니까 나중에 안 오더라. 그래서 지도방식에 변화를 줬다. 거의 놀아주듯 시작한다. 또 이번 아이리그 교재에도 나와 있듯 큐를 사용하지 않고 당구공을 굴리면서 여러 경험도 하게 한다.”
미래 꿈나무가 당구를 친숙하게 느끼게 하고, 참여하게 하는데 진심 어린 노력을 한 홍진표는 올해 다시 60~70명의 인원을 꾸려 아이리그에 참여하고 있다. 4개 클래스로 나눠 같은 대전당구연맹 소속인 이영만 선수와 2개씩 맡아 지도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전문 선수의 길을 품는 이들도 홍진표를 찾아 지도받고 있다. 지도자로 사명감을 느낀 그는 최근 당구장 사업도 접었다. 대신 내년 1월 대전 둔산동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아카데미를 오픈, 유망주를 키우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학생 선수로 등록해 대회에 나가는 4명을 별도로 지도하고 있다. 어릴 때 시작해서 20세 성인이 된 선수도 있고, 초등학교 4학년 선수도 있다.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바쁘게 병행하는 과정에서 당구장 사업에 주력할 수 없을 것 같더라. 문을 닫고 아카데미만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국 당구계에 지도자가 늘어나야 할 시기라는 건 맞지만 사실 당구 종목은 선수 수명이 길지 않느냐. ‘선수냐, 지도자냐’를 두고 선택하는 건 존중받아야 한다. 또 (아이리그 등에) 시도연맹 관심이 부족하기에 이런 길을 모르는 선수도 있을 거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과거부터 당구만 치는 것보다 지도자 등 여러 길을 그렸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지도자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 국내에 지도자 문화가 정립된 게 아니다 보니 아직 체계적인 지도 커리큘럼이 없다. 언젠가 내가 경험하고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커리큘럼도 만들고 싶다.”
홍진표는 KBF 교육위원회에서도 활동 중이다. 훗날 자기 커리큘럼뿐 아니라 KBF가 학생 선수 눈높이에 맞춰 레슨 체계를 만들고 교재 사업까지 확장하는 데 보탬이 될 뜻이 있다. “KBF가 주도해 지도서, 교본 등을 제작해 배포하고 지도자가 활용한다면 더 신뢰 있는 커리큘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도자 양산을 두고 당구계 구성원 간의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 시기다. 그런 면에서 홍진표는 정상을 경험한 선수로 지도자 분야의 새 길을 개척하고 있다.
어찌 보면 새 지평을 여는 셈이다. KBF뿐 아니라 당구계 사정을 잘 아는 대다수는 당구인의 지도자 참여율 증가는 학원 스포츠 활성화를 통한 꿈나무 육성, 지도자 문화 확산, 당구인 제2 인생 구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김용일 칼럼니스트/스포츠서울 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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