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9.30 22:18:14
韓 세계 최고수준 당구인프라 보유, 유청소년 선수도 꾸준히 증가추세, 그럼에도 지도자문화는 변방 수준
프로와 아마추어 무대를 통틀어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와 특급 선수를 보유한 한국 당구는 어느덧 미디어, 용품, 시설, 더 나아가 다른 산업과 협업으로 고부가가치 생태계 조성을 그리고 있다.
‘체육계 인구 절벽 시대’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도 당구의 미래 젖줄인 유청소년 등록 선수 역시 이런 바람을 타고 꾸준히 증가 추세다. 최고 인기 종목인 3쿠션이 중심이다.
문제는 꿈나무를 육성하고 새 비전을 제시할 지도자 문화는 아직 ‘변방 수준’이라는 점이다. 생애주기형 종목에 가장 어울리는 당구의 역설적인 상황으로도 비친다. 개인 종목 베이스인 당구는 스스로 관리를 잘 하면 고령까지 선수 생활할 수 있다. 톱클래스 선수일수록 두드러진다. 이들이 간간이 주요 행사에 강사로 참여해 원포인트 레슨을 하긴 하나, 전문 지도자 혹은 남을 지도하는 데 시간을 더 쓰거나 주력하는 일은 많지 않다. 전문 지도 커리큘럼을 둔 이도 보기 드물다.
한국 당구가 진정으로 미래지향적 행보를 지속하려면 인프라를 바탕으로 학원 스포츠를 접목해 꿈나무 육성을 체계화해야 한다.
대한당구연맹(KBF)은 지난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유청소년클럽리그(아이리그, I-League) 공모 사업에 도전해 사상 처음으로 선정됐다. 이와 더불어 2023년까지 당구를 물리 등 과학 수업에 접목, 전국 중고등학교를 돌며 ‘찾아가는 당구교실’ 특강을 열기도 했다.
일반 학생이 당구를 쉽고, 친근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당구대 앞에 서게 했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에 ‘빌리언트쌤’이라는 슈퍼바이저를 두고 레슨을 실시했다. 학생이 아이리그에 참여했을 때도 기존 당구 경기 방식이 아닌 스트로크대회를 구상, 문제 풀이 형태로 진행했다.
흥미로운 콘텐츠에 참여 학생 수는 늘어났다. 그런데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건 ‘빌리언트쌤’의 참여율 저조 등과 맞물렸다. 결국 2022~2023년 사업을 진행했지만 2024년엔 제외됐다. 그러다가 올해 2년 만에 재개됐다. 문체부는 KBF가 시행한 당구와 과학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프로그램 등에 높은 평가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현실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다. KBF는 아이리그 공모사업 형태에 맞춰 전국 50개 리그를 구성하고자 했는데 지도자 참여도가 떨어져 고심이 크다. KBF에서 강습회를 거쳐 1년에 각급 지도자 자격증을 주는 인원만 해도 200명이 넘는다. 이들 중 아이리그 참여를 고려해 학교 등과 접촉하는 사례는 보기 어렵다. KBF 차원의 홍보 부재도 문제지만, 주요 시도연맹 역시 관심이 적고 활성화가 안 돼 있다.
‘학생 선수 없는 종목은 미래가 없다’는 경고 메시지가 더욱더 확산하는 건 현주소가 명확해서다. 한국 당구는 2010년대 3쿠션월드컵,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수 선수가 두각을 보이며 제2 전성기 틀을 마련했다. 중심 구실을 한 건 ‘당구 명문’ 수원 매탄고 출신 김행직이다. 2020년대엔 매탄고 후배 조명우가 비상하며 현재 국내는 물론 세계랭킹 1위에 올라있다. 한국 당구 톱클래스층이 학원스포츠를 거친 20~30대 선수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장기 비전을 위해서는 당구계 학원스포츠 틀을 명확히하고 지도자가 양산돼야 한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는다. 특히 아이리그에 참여하는 학생 선수처럼 미래 세대와 눈높이를 맞추고 소통할 젊은 지도자의 등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당구인 나름의 사정도 있다. 아마와 프로 구분을 떠나 당구장 운영을 비롯해 개인 사업 또는 단체 활동을 겸하며 선수 생활을 하는 이들이 다수다. 아이리그 사업의 취지를 이해하나, 리그 참가를 위해 학생 선수를 꾸리는 작업 등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한마디로 ‘당구 지도자’에 대한 문화, 인식 결여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결국 KBF가 더욱더 명확한 비전을 심고, 공감하도록 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KBF는 당구인이 아이리그 지도자로 꾸준히 참여하고 활성화하면 학생 선수 눈높이에 맞춰 레슨 체계를 만들고, 교재 사업까지 확장할 뜻을 품고 있다.
표준화한 교재를 두고 전국 어디서든 당구와 관련해 일관한 교육을 시행하고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당구인이 선수로 활동하면서도 전문 지도자로 제2 인생을 그리는 데 기폭제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학원스포츠 활성화를 통한 꿈나무 육성과 당구인의 제2 인생 구축, 지도자 문화 확산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 장치로 보는 것이다.
서로의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 시기다. 어찌 보면 한국 당구의 백년대계와도 맞닿아 있다. [김용일 칼럼니스트/스포츠서울 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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