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2회 연속 라이더컵 제패 원팀 정신으로 13년만에 원정승 우승 새 역사 쓴 도널드 주목 단장으로 라이더컵 2회 정상은 1947·49년 호건 이후 두번째 미국은 홈에서 완패하며 망신 욕설 난무 관중 매너도 도마에
2025 라이더컵 우승에 성공한 유럽팀 멤버들이 트로피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루크 도널드 단장, 욘 람, 제프 슈트라카, 루드비그 오베리, 로리 매킬로이, 빅토르 호블란, 맷 피츠패트릭, 티럴 해턴, 로버트 매킨타이어, 토미 플리트우드, 셰인 라우리, 라스무스 호이고르, 저스틴 로즈. AFP연합뉴스
미국과 유럽의 남자 골프 대륙대항전인 라이더컵 최종일. 미국 선수들은 각자 경기하는 싱글 매치플레이에서 대반격을 노렸지만 끝내 결과를 뒤집지 못했다. 결국 유럽 선수들이 제45회 라이더컵 우승 트로피를 뉴욕에서 들어 올리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29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파밍데일의 베스페이지 블랙 코스(파70)에서 열린 라이더컵 최종일 1대1 싱글 매치플레이에서 유럽은 1승5무6패를 기록해 승점 3.5점을 보탰다. 결과적으로는 단 1승밖에 하지 못한 최악의 부진. 하지만 앞서 이틀간 벌어놓은 11.5점을 발판 삼아 합계 15점을 기록해 13점을 쌓으며 맹추격한 미국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의 기적적인 역전 우승을 기원한 팬들은 이날도 엄청난 야유와 욕설, 조롱을 유럽 선수들에게 쏟아냈다. 미국의 기세는 무서웠다. 초반 4경기에서 3승1무로 유럽을 압도했다. 특히 '에이스' 스코티 셰플러가 세계 2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를 1홀 차로 제압하며 분위기가 고조됐다. 팬들의 욕설에 매킬로이는 티샷을 하려다 잠시 멈췄고, 흥분한 듯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다행히 5경기에서 루드비그 오베리(스웨덴)가 유럽에 첫 승리를 안겼고, 8경기에서 셰인 라우리(아일랜드)가 마지막 18번홀에서 극적인 버디로 무승부를 이뤄내며 유럽팀의 우승을 확정했다.
라우리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2시간이었다. 마지막 퍼트가 들어간 게 믿기지 않았다. 퍼트에 성공한 뒤 '이게 끝이다!'라고 외쳤다"며 심리적으로 힘겨웠다고 털어놨다.
유럽은 2023년 로마 대회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우승이자 2012년 '메디나의 기적' 이후 13년 만에 원정 승리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또 최근 라이더컵 15경기 중 11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대륙대항전에서 미국을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이어갔다.
1인당 20만달러를 수당으로 받는 미국과 달리 단지 단장이 주는 기념 시계만 받는 유럽팀은 돈이 아닌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하나로 뭉쳐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유럽팀의 '원정 승리' 요인으로는 2023년에 이어 또 한 번 단장을 맡은 루크 도널드(47·잉글랜드)의 리더십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
도널드의 리더십은 묘하게 한국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만든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의 방법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당시 히딩크는 철저한 실력과 컨디션 위주의 선수 선발, 팀 내 수평적 관계 형성, 자기 역할에 대한 책임 강조, '할 수 있다'는 심리적 자신감 구축 등으로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만들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5승과 DP월드투어 7승 등 잔뼈가 굵은 도널드는 2년 전 승리했던 경험을 발판 삼아 이번 라이더컵에서 승리 확률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도널드는 '라이더컵의 사나이'로 통한다. 유럽팀 선수로 4차례 출전해 모두 우승했다. 특히 유럽이 미국 원정에서 승리했던 2004년과 2012년 모두 참가해 분위기와 이기는 법을 잘 안다.
도널드는 이번 유럽팀 멤버 12명 중 11명을 2년 전 라이더컵 때 뛰었던 선수들로 채웠다. 승리의 맛을 아는 베테랑으로만 철저하게 구성한 것이다. 준비도 철저하다. 도널드는 "승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일관성"이라며 "위대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일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개선하고 발전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무엇보다 2023년에 이어 올해도 팀 내 위계질서를 없앴다. 수직적 관계가 아닌 서로 믿고 소통할 수 있게 수평적인 '원팀'을 만든 것이다. 평소 내향적인 자신의 성격도 버렸다. 도널드는 팀원들 의견을 듣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내성적인 성격을 버리고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이날 라이더컵 트로피를 차지한 유럽팀 선수들은 일제히 "2년 더"를 외쳤다. 그만큼 도널드의 리더십에 박수를 보낸 셈이다.
반면 미국팀은 올해 경기를 보면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각자 경기를 펼친 매치플레이에서 6승5무1패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너무 늦었다. 앞서 2인1조 팀 경기로 치른 12경기에서 4승1무11패의 처참한 결과를 냈기 때문이다.
미국은 관중 매너에서도 뭇매를 맞았다. 아무리 대륙대항전이라고 해도 상식을 넘어서는 증오에 가까운 욕설과 조롱을 퍼부어 많은 골프 팬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