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2.11 14:46:21
PBA 8차전 ‘웰컴저축은행배’서 우승. 지난 시즌 이어 2연패 통산 2승, 우승 후 이틀 잠 설쳐, 아직도 실감 안나
“사랑하는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의 열렬한 응원이 선수생활의 원동력입니다. 특히 설명절 투어 땐 가족들의 응원을 몇 배로 받을 수 있으니 더 힘이 날 수밖에요.”
얼마전 설 연휴를 끼고 열린 올 시즌 프로당구 마지막 정규투어(8차전) 주인공은 조건휘였다. 지난 시즌 이 대회서 프로 첫 정상에 올랐던 조건휘는 올 설에도 같은 유니폼을 입고 ‘웰컴저축은행배’ 특유의 도자기트로피를 또한번 들어올렸다.
올해 서른셋인 조건휘는 20대이던 지난 2018년 당시 국내 당구대회 사상 역대 최고 우승상금(5000만원)이 걸린 ‘2018 KBF슈퍼컵’서 우승하며 큰 승부에 강한 면모를 과시했다. 이듬해 출범한 프로당구에 원년멤버로 합류해 2차대회 만에 준우승(결승서 신정주에 1:4 패)을 차지했고, 다음 시즌엔 팀리그(신한알파스)에도 뽑혔다.
하지만 이후 한동안 뜸했다. 기대만큼 성적이 안나왔다. 22/23시즌엔 큐스쿨을 간신히 면할 정도였고, 23/24시즌도 7차전까지 최고성적이 16강 한차례에 불과했다. 그러나 8차전서 반전드라마를 썼다. 프로 4년8개월만에 다시 오른 결승무대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1년 후 돌아온 이번 설명절에 약속이나 한 듯 또한번 정상에 섰다.
조건휘는 “(우승이)두 번째지만 아직도 우승이 실감이 안 난다”며 우승 후 한동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볼을 꼬집어보기도 하고, 이틀간 잠을 설쳤다고 했다. 후원사인 TPOK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사무실에서 얘기를 나눴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스승 이충복 선수가 와서 격려해주기도 했다.
▲정규투어 8차전 우승을 축하한다. 소감은 어떤가.
=너무 짜릿하고 기쁘면서도, 아직 얼떨떨하다. 오히려 첫 우승때보다 더 긴장돼 수상소감이 적힌 종이를 볼 생각도 못한 채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시상식 마치고 집에 가서도 이틀 정도는 잠을 설쳤다, 세수하고 거울을 보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볼을 꼬집어보기도 하고, 아내에게 내가 우승한게 맞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내가 트로피를 가리킨다. 하하.
▲설연휴에 열리는 ‘웰컴저축은행배’ 우승이 두 번째다. 이 대회서 유독 강한데.
=아무래도 가족의 응원 때문 아닐까. 아내는 직장생활하면서도 내 뒷바라지를 정성스럽게 해준다. 그런데 이번처럼 명절을 끼고 대회가 열리면 아내는 물론, 부모님과 장모님, 장인어른 등 온가족이 총출동해 응원해준다. 이렇게 몇배의 응원을 받으니 아무래도 평소보다 더 힘이 난다. 가족 응원은 선수생활의 원동력이다.
▲과거부터 흐름을 보면 꾸준히 성적을 내기 보다는, 잠잠하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한번씩 우승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 보면 대한당구연맹에 있을 때도 그랬다. 학생부 포함, 연맹에서 10년 정도 선수생활하면서 16~8강도 못 가다 2018년에 최고상금이 걸린 대회(2018 KBF슈퍼컵)에서 덜컥 우승했다. PBA와서도 첫 시즌 준우승 이후 축 가라앉아 있다가 우승 한번 했고, 또 별다른 성과를 못 내다 이번에 우승했다. 스스로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내가 우승하는 대회를 보면 눈빛이 다르다고들 하더라. 하하.
▲최근 연습 패턴을 바꿨다고.
=근래 연습루틴을 바꿨는데, 상당히 잘 맞는다. 이전엔 당구장에 11~12시간씩 주구장창 머무르며 오랜시간 연습했다면, 최근에는 3시간을 연습하더라도 집중해서 훈련한다. 이렇게 연습할 때 제대로 하고, 쉴 때 푹 쉬니 이전보다 피로감도 확실히 줄었다. 이렇게 휴식까지 잘 챙기는 것이 정말 좋은 연습방법이란 걸 몸소 느끼고 있다.
▲23/24시즌 프로 4년8개월만에 첫 우승했다. 오랜기간 우승이 없어 답답했겠다.
=많이 답답했다. 프로 데뷔 하자마자 준우승, 공동3위 등 곧바로 성과를 내며 기대감에 부풀었는데, 이후 별다른 성적을 못 내는 가운데 경쟁하기 점점 어려워졌다. 22/23 시즌엔 큐스쿨로 떨어질 뻔 했다. 그래도 뭐 별수 있나. 어차피 매일매일이 도전이니 계속 헤쳐나가기로 했고, 운 좋게 우승까지 했다.
▲당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중학교 때 아버지가 부업으로 당구장을 운영하셨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가끔 당구치러 갔는데, 고1 때 아버지가 당구를 제대로 한번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공부에 썩 소질이 없던 나로서는, 공부 안하고 당구만 치니 당구선수 준비하는게 마냥 좋았다. 하하. 그렇게 하다 서울당구연맹에서 전국체전 학생부 대표 자리를 제안해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스승인 이충복 선수도 그 무렵 만나게 됐다고.
=그렇다. 전국체전 대회장에서 사부님(이충복)을 비롯, 조재호 강동궁 선수 등 많은 선수를 봤는데, 서울당구연맹 제의로 이충복 선수에게 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함께 애제자로 꼽히는 이범열에 따르면 이충복 선수 지도 스타일이 무척 엄했다고.
=물론이다. 하하. 중간에 견디지 못해 두어 번 쫓겨난 적도 있다. 당시엔 성격이 조금 다혈질적인 게 있었고, (김)행직이 (오)태준이 등 또래 친구에 비해 내가 뒤처지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렇게 겉돌다 다시 사부님을 찾아뵙기를 몇 번 했다. 그럴 때면 사부님이 멘탈적인 부분에 관련된 자료를 직접 프린트해 주시며 조언해주시는 등, 당구뿐 아니라 외적인 면까지 세세하게 신경써 주셨다. 되돌아보면 너무 감사한 일이다. 아버지가 계시지만, 내게 당구의 아버지는 바로 사부님이다.
▲사부가 PBA서 초반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 본인도 마음이 편치 않았겠다. (이충복은 지난 23/24시즌 PBA 합류 후 11연패로 부진하며 큐스쿨까지 경험했다)
=당연했다. 특히 승부치기로 탈락하면 더욱 많이 공감됐다. 그땐 종종 사부님께 전화드려 “사부님 그래도 당구 치셔야 합니다”하며 같이 당구치자고 말씀드렸다.
▲이번 우승할 때 사부가 어떤 말을 해줬나.
=8강 올라갔을 때부터 메시지를 남기셨다. 8강 오르니 ‘잘친다 잘쳐’, 4강 땐 ‘잘한다 잘해’, 우승하니 ‘축하’ 이렇게. 하하. 조만간 제대로 식사 한번 대접해 드리려고 한다.
▲팀리그에서도 원년시즌부터 뛰었는데. (조건휘는 팀리그 창단시즌인 20/21시즌부터 2시즌 간 신한알파스 유니폼을 입었고, 이후 현재까지는 SK렌터카에서 활약 중이다)
=처음 팀리그를 경험할 때가 기억난다. 워낙 생소한 시스템이다 보니 이게 시합인지 이벤트인지 처음엔 분간이 안 갔다. 그렇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팀리그가 내게 너무나도 중요한 대회로 거듭났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정말 열심히, 진지하게 임하는 대회다.
▲SK렌터카에선 벌써 3시즌 째다. 특히 전력변동이 적은 팀이라 팀원들과 더욱 각별하겠다.
=모든 팀원들과 두루두루 친하다. 주장 강동궁 프로님이 워낙 조율을 잘 해주시고, 팀원들도 모두 서로를 100% 믿는다. 경기 때 앞 세트에서 동료선수가 지더라도 응원해주고, 다음 세트에 내가 책임진다는 마인드로 나선다.
▲SK렌터카는 올 시즌 1라운드서 우승했다. 팀리그와 개인투어 우승 중 어떤게 더 기분 좋았나.
=시즌 시작부터 우승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개인투어 우승도 정말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팀리그 우승이 더 짜릿했다.
▲용품은 뭘 쓰나.
=루츠케이’(ROOTS-K)큐를 비롯해 대부분 TPOK 제품을 쓴다. 허정한 김행직 선수 등 세계 톱랭커들이 쓰는 만큼 검증된 큐이지 않나.
▲선수로서 본인의 강점을 꼽자면.
=개인적으로 느긋한 편인데, 이게 경기에선 ‘양날의 검’이다. 뒤로 갈수록 몸이 풀려 뒷심이 좋은 편이지만, 지나치게 느긋해 몸이 풀리기 전에 안 좋은 결과를 받아들일 때도 많다.
▲롤모델은 당연히 이충복 선수인가.
=물론이다. 사부님 플레이를 생각하면서 확장해 나가고, 내 스타일에 조금씩 맞춰간다. 가장 닮고싶은 부분은 당구를 정말 진지하고 우직하게 대하는 자세다.
▲올 시즌 개인투어는 왕중왕전만 남았는데, 목표는.
=여태 왕중왕전을 두 번(21/22, 23/24시즌) 갔는데 모두 조별리그를 못 넘었다. 특히 지난 시즌엔 왕중왕전 직전에 우승하고 마음이 들떠 제대로 집중을 못했다. 이번에는 조별리그 통과가 최우선 과제다.
▲고마운 분들에게 한 마디.
=먼저 부모님과 사랑스러운 아내, 장모님 장인어른 등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또 SK렌터카 동료, 구단 관계자분을 비롯해 세상에 한 자루뿐인 좋은 큐 만들어 주시는 TPOK 전남수 대표님과 실장님 등 주변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저를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항상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칠테니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김동우 MK빌리어드뉴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