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8 14:31:42
쿠르스크 탈환 선언 후 파병 사실 공식확인 김정은 ‘자동 군사개입’ 북러조약 4조 적용 北 “평양에 파병장병 전투위훈비 세우겠다”
북한과 러시아가 ‘쿠르스크 탈환’을 선언하며 그동안 쉬쉬했던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인정했다. 북·러 양국이 북한군 파병 사실을 공개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러 준비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8일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하며 “조로(북러)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의 제반 조항과 정신에 전적으로 부합되며 그 이행의 가장 충실한 행동적 표현”이라고 밝혔다. 북측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관영매체에 입장문을 보내는 형식으로 러시아 파병을 공식화했다.
앞서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도 지난 26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영상회의에서 북한군 참전 사실을 대내외에 언급했다. 이는 북·러가 발표 시기·방식을 서로 조율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북한은 이날 보도에서 “국가수반의 명령에 따라 쿠르스크 지역 해방작전에 참전한 우리 무력 구분대(대대급 이하 부대)들은 높은 전투 정신과 군사적 기질을 남김없이 과시했다”고 주장했다.
북측은 입장문에서 김 위원장이 지난해 맺은 ‘북·러 신조약 4조(유사시 자동 군사개입)’에 따라 당중앙군사위에 러시아 파병 명령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북한군이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 탈환작전에 투입된 점을 부각시키며 파병의 당위성을 강변한 셈이다.
북측은 평양에 전투위훈비를 세우겠다고 파병 장병 가운데 전사자가 발생한 사실도 인정했다.
북·러의 이러한 행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앞두고 북·러의 셈법이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승전을 기정사실화하고 종전 협상 유리한 고지 확보, 전후 처리 차원에서 공개가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홍 연구위원은 북한 역시 러시아로부터 파병의 반대급부를 받아낼 보장장치를 확보하기 위해 파병 사실을 공개할 필요가 있었다고 봤다. 북한은 이번 입장문에서 ‘동맹’ 표현을 세 차례나 쓰면서 북러동맹 관계를 굳히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북한이 잠재적 사회불안 요소인 전사자 문제를 ‘영웅적 위훈’이나 ‘승전’ 프레임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북·러가 내달 9일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기념일(전승절) 80주년을 앞두고 쿠르스크 탈환작전을 매조지면서 김 위원장이 조만간 방러할 것이라는 관측이 더욱 힘을 받는다.
다만 방러 시기·장소는 유동적일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김 위원장이 단기간에 모스크바로 날아가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 위원장 전용기인 ‘참매 1호’로는 모스크바 운항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왕복 이동에만 약 보름이 필요한 전용 열차를 이용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무엇보다 북측 최고지도자는 본격적인 우상화 작업 이후 여러 나라의 지도자 속에 섞여야 하는 다자 정상외교를 하지 않았다.
외교가에서도 북한이 전승절 이후 러시아와 양자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북한은 양자 정상회담을 통해 지도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이를 홍보해 내부 결속 효과를 얻는 경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김 위원장의 다자무대의 데뷔보다는 푸틴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로부터의 전쟁 참가 반대급부를 얻어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김 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 이후 비교적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는 극동 지역 등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나 북러 정상회담에 나설 개연성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과의 향후 협상도 염두에 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혹은 정전 협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참전국으로서 미국에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사를 러시아에 지속해서 전하고 논의를 진행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담한 것은 유엔 헌장과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명백한 불법적 행위”라며 “이를 공식 인정했다는 것도 범죄 행위를 자인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날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파병이 우리나라는 물론, 유럽을 넘어 전 세계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이자 유엔 안보리 결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행위임을 지적하고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구 대변인은 “정부는 북한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촉구하며 현재와 같은 북한과 러시아와의 군사적 야합이 지속될 경우 이를 좌시하지 않고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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