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8.21 11:29:37
상대방에게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 건 협상의 기본이다. 약점이 노출되는 순간 협상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버린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 간 지식재산권 분쟁 합의는 그래서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이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과 한국 협상단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한수원이 윤석열 정부의 최대 성과인 체코 원전 수주를 위해 지재권 합의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모르지 않았다. 하루빨리 체코 원전 수주를 확정 지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선 시간도 웨스팅하우스의 편이었다.
실제로 양사 간 합의 결과가 알려지면서 당시 합의가 불공정 계약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에 원전 수출 프로젝트당 2000억원대의 지재권 사용료와 1조원대에 달하는 일감 보장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체코를 제외한 유럽연합(EU) 가입국과 북미, 영국, 일본, 우크라이나 원전 시장에도 진출하지 않기로 했다. 원전 수출 때마다 웨스팅하우스에 상당한 비용을 지급하는 동시에 유망한 유럽 시장에서도 철수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파악된 합의 내용만 보면 에너지산업의 미래를 정권의 단기 성과와 맞바꿨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자기 살을 베어내주고 자기 뼈를 끊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재권 분쟁 합의는 언젠가는 필요한 조치였다. 한수원이 원전을 수출할 때마다 불거질 지재권 문제를 해소했다는 점에선 어느 정도 의미도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임기 5년이 아닌 20년, 30년을 내다봤다면 어땠을까. 체코 원전 수주를 위해 조급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웨스팅하우스와 훨씬 더 균형 잡힌 합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정권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은 정권의 치적을 위해 장기적인 국익을 훼손해선 곤란하다. 진상 조사도 중요하다. 더 중요한 건 이 같은 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정부에서는 정권의 초단기 성과를 위해 국익을 희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에는 윤석열 정부라는 훌륭한 ‘반면교사’ 교과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