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21 14:23:35
남편 신장 기증받은 이보영씨 암과 말기신부전 이겨내고 회복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파” “평생 처음 가족여행을 떠납니다”
“아이들 크는 동안 아팠던 시간이 많아 여행은 꿈도 못 꿨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어디로든 가보려 합니다. 아무리 부부 사이라 해도 신장 기증이 당연한 일은 아닌데, 남편은 본인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좋아했어요. 덕분에 지금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고생한 남편에게 28년 결혼생활 동안 하지 못했던,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둘이 결혼해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이날 서울성모병원에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 병원에서 남편이 기증한 신장을 이식받고 건강을 되찾은 이보영(50대) 씨가 생애 첫 가족여행을 준비한다는 근황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이 씨는 갑자기 피곤하고 머리가 아파 동네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성콩팥병 진단을 받았다.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했지만 말기신부전으로 진행됐고, 2019년 혈액 투석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자신의 신장 하나를 아내에게 주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더 큰 불행이 찾아왔다. 2021년 신장 이식을 앞두고 진행한 건강검진에서 위암이 발견된 것이다. 이 씨는 그해 8월 위암 수술을 먼저 받았다. 그는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지낼 만큼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당시 주치의였던 정병하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그래도 위암을 조기에 발견해서 다행이니 잘 치료 받고 기다려보자”고 진료 때마다 응원했다.
위암 수술 후 2년이 지나 신장이식을 다시 준비하던 중 이번에는 대장에서 용종이 발견됐다. 조직검사 후 결과를 또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함께 고생하는 남편에게 미안함이 계속 쌓였다. 검사 결과, 다행히도 대장용종은 암이 아니었다. 이 씨는 본격적으로 신장이식을 준비했다.
가장 먼저 이 씨는 혈액 투석과 혈액 내 항체를 제거하기 위한 혈장분리교환술을 번갈아 받았다. 이후 지난해 1월 생체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 씨가 정기 외래로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건 지난 20일이었다. 다행히 경과는 좋게 나왔다. 이 씨가 수술 후 매일 근력 운동과 걷기 운동을 2시간씩 해온 덕분이다. 이 씨는 “투석받고 힘들었을 때는 ‘건강하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란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건강을 되찾고 나서 가지 못했던 산에 올라가보고, 먹고 싶었던 음식도 먹어보니 ‘건강이 곧 자유’라는 걸 알게 됐다”며 비슷한 상황에 놓인 환자들에게 “힘든 투병생활을 잘 이겨내면 곧 자유로운 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큰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건강이 나빠졌다. 어려서부터 엄마 도움 없이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해냈던 두 딸에게도 감사함을 전했다. 큰 딸 김혜진 씨는 2020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진 수상자기도 하다. 이 씨는 “혈액 투석을 시작해 몸이 많이 아팠을 때라 다른 엄마들처럼 옆에서 도와 주지 못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건강 때문에 제대로 된 가족여행을 해보지 못했던 이 씨는 아쉬움을 털어내기 위해 올해 어디든지 떠날 계획이다.
이 씨는 “정 교수님, 집도를 맡은 윤상섭 서울성모병원 외과 교수님, 장기이식센터 간호사 선생님 등 모든 의료진에게 이 기회를 통해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수술 전 간절했던 마음을 잊지 않고 늘 기도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