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2.13 21:00:00
‘GE버노바’
최근 증권가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천연가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꾸준히 ‘전력 수요 확대’ ‘천연가스 생산 확대’ 키워드를 던지면서다. 이에 천연가스 관련주가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천연가스 생산을 위한 필수 설비 ‘터빈’을 제조하는 GE버노바가 심상치 않다. 지난 1월 27일 중국판 챗GPT ‘딥시크 쇼크’로 인공지능(AI) 거품론이 불거지면서 주가가 크게 하락했지만, 빅테크가 데이터센터 등 설비투자(CAPEX) 가이던스를 상향 조정하면서 다시 회복세를 띠는 모습이다. 전력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1월 27일 330달러였던 주가는 2월 5일 367달러를 기록 중이다.
‘천연가스’ 업고 훨훨 GE버노바
딥시크 쇼크에도 빅테크 투자 확대
천연가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빅테크와 트럼프 두 가지다. 빅테크가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붓는 분야는 AI 데이터센터다. 데이터센터는 모든 데이터를 저장·유통·처리하는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정보를 한곳에 모아둔 건물이다. 도서관을 떠올리면 편하다. 다만 AI 시대로 접어들며 데이터양은 늘었고 요구 처리 속도는 빨라졌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가 필요해진 상황. 결국 빅테크는 새로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섰다.
문제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소모량이다.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더 빠르고 많은 정보를 처리·보관하는 만큼 최소 10배 이상 전력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전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4년 7월 글로벌 전력 소비 증가율 자료를 발표하며 데이터센터 확대에 근거해 2024~2026년 글로벌 전력 수요 증가율을 연평균 3.4%(2024년 1월 발표치)에서 4%로 상향했다. 최근 10년간 글로벌 전력 소비 증가율이 평균 2% 안팎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2배 높은 수치다. 고선영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12월 리포트에서 “미국 전력 수요 전망치는 계속해서 상향되는 단계”라면서 “빅테크 주도의 데이터센터 건설 영향으로 풀이된다. 예상보다 더 많은 전력이 단기에 필요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빅테크 입장에선 전력 수요를 뒷받침할 전력원이 필요한 상황. 초기에 각광받던 건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다. 다만 실제 사용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태양광이 갖고 있는 ‘간헐성’이다.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불안정해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부각됐다. 일각에서는 원전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이 역시 문제가 있다. 8년 이상 걸리는 평균 원전 건설 기간이다. 소형원자로(SMR)도 떠오르고 있지만 안정성과 상용화 이슈가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2030년까지 SMR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단계다. 빅테크가 당장 큰 도움을 받긴 힘들다.
이것저것 빼고 나면 빅테크가 당장 손 뻗을 수 있는 전력원은 천연가스뿐이다. 일단 신규 가스 발전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은 평균 2~3년에 불과하다.
LS증권은 최근 ‘천연가스 시대의 재도래?’ 리포트를 내고 “빅테크가 원전 에너지를 선호한다고 공언했지만, 신규 원자로는 당장의 야망을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양형모 DS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와 AI 산업의 전력 수요 증가를 100% 가스 발전으로 충족하기 위해서는 약 124GW의 추가 발전 용량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AI 워크로드(주어진 시간 안에 컴퓨터 시스템이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의 양) 특성상 24시간 연중무휴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기저부하 공급이 가능한 천연가스 발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딥시크 쇼크에도 빅테크 대부분은 설비투자 가이던스를 상향 조정한 점도 천연가스 진영 입장에선 호재다. 당분간 막대한 전력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메타는 2025년 연간 설비투자 가이던스로 600억~650억달러를 제시했다. 2024년 연간 설비투자 규모(390억달러)를 고려하면 약 2배 상향이다. 구글(알파벳)도 2025년 설비투자 가이던스 750억달러를 내놨다.
GE버노바의 역할은?
생산 필수 설비 ‘터빈’ 제조
GE버노바는 천연가스 진영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 GE버노바는 천연가스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가스 터빈 제조 부문에서 압도적 1위를 지키고 있다.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GE버노바의 글로벌 가스 터빈 설치 개수는 누적 7000개를 넘어섰다. 이를 전력 용량으로 환산하면 약 880GW 수준이다. 글로벌 천연가스 생산 전력의 51% 가까이를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최근 수주도 꾸준히 늘고 있다. 전력 용량으로 환산한 지난해 연간 가스 터빈 수주 물량은 20.2GW로 전년 동기 대비 110% 증가했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올해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점쳐진다.
수주 물량 중 대형 가스 터빈 숫자가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대형 가스 터빈일수록 마진이 커지는 만큼 GE버노바 수익성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간 기준 100㎿ 이상의 대형 터빈을 의미하는 Heavy-Duty 가스 터빈 주문은 68대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41대) 대비 20대 이상 늘었다. 특히 초대형 공랭식 터빈을 뜻하는 HA 가스 터빈(HA-Turbines) 주문도 8대에서 25대로 확대됐다.
김시현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하이퍼스케일러 데이터센터로 인해 대형 가스 터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글로벌 1위 가스 터빈 사업자인 GE버노바의 수주는 증가 추세를 이어갈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GE버노바는 지난해 9월 “가스 터빈 인도 물량을 2026년 70~80대 수준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새 먹거리 발굴도 지속
히타치 손잡고 SMR 개발
GE버노바는 새 먹거리 발굴에도 꽤나 힘을 주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 등 주요 싱크탱크가 장기적 대체 에너지 자원으로 언급한 SMR 투자에 적극적이다. 일본 히타치제작소와 운영 중인 합작사 ‘GE히타치(GE-Hitachi Nuclear Energy)’가 이를 이끈다. SMR 설계와 개발, 원자로 연료 제공 등이 주된 사업 내용이다.
GE버노바는 2029년 본격적인 SMR 성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지난해 3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2029년 캐나다에서 첫 가동이 시작될 것”이라며 “재무적으로 의미 있는 매출과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지만, 가동 자체로 주목받을 만한 사안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GE히타치는 지난 2021년 캐나다 온타리오발전(OPG·Ontario Power Generation)의 주문을 받아 ‘BWRX―300’이라고 불리는 출력 30만킬로와트(㎾)급의 SMR을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건설하고 있다. 수주액은 공표되지 않았다. 2028년 완공, 2029년 가동이 목표다.
스콧 스트라직(Scott Strazik) GE버노바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4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기존 고객사들 역시 SMR 설치 등에 대한 의견이나 문의를 보내오고 있다”며 “고객 요구에 적극 대응해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6호 (2025.02.12~2025.02.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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