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의 단풍산 풍경이 진공 액자 속에 갇혔다. 사진이지만 평범한 사진은 아니다. 사진 속 장소에 있던 단풍잎에서 추출한 색소로 인쇄했기 때문이다.
제 나무에서 떨어져나온 단풍잎은 공기 중 산소와 만나 산화되면서 점점 생기를 잃고 결국 색이 바래는 게 자연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백정기 작가는 사진에 담은 풍경의 모습뿐만 아니라 실제 그 풍경을 이루던 단풍잎의 색채마저 박제하고자 했다. 그가 액자에 작품의 산소 접촉을 차단하는 진공 펌프, 질소 주입기 등 복잡한 장비를 달아놓은 이유다. 백 작가는 "계속해서 변화하려는 자연과 그것을 계속 붙잡아두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함께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백정기 작가의 개인전 'is of'가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오는 8월 10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해 가을 작가가 전북 내장산과 경북 팔공산, 충북 속리산, 경기 양평의 두물머리 일대를 다니며 작업한 'is of' 연작의 신작 10여 점을 선보인다.
'is of'는 말 그대로 '~는 ~를 이루는'이란 뜻이다. 2011년부터 시작된 작가의 대표적인 연작 중 하나로, 특정 장소의 자연 풍경을 촬영하고 그 풍경 속 자연물에서 추출한 색소로 사진을 인화하는 작업이다. 예컨대 'is of 속리산 2024-1'(2025)은 지난해 속리산의 풍경, 자연물로 이뤄진 작품이다.
백 작가는 "사계절이 늘 반복되지만 같은 가을이라고 해도 매년 가을 풍경이 다르고 같은 장소에서도 단풍잎의 색깔이 시시각각 변한다. 결국 같은 순간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단풍잎 추출물을 용매에 녹여 잉크젯 프린터의 4색인 K(검정)·C(파랑)·M(빨강)·Y(노랑)를 모두 만들었지만, 이번 전시작들의 색채가 대부분 누런 빛깔인 이유에 대해 그는 "작년에 날씨가 엄청 더웠고 가을 추위도 늦게 왔다. 단풍이 드는 듯 마는 듯하면서 붉은색이 많이 약하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is of' 연작에서는 작가가 사진의 자연색이 바래지 않도록 갖가지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과정 모두가 작업의 일부다. 하나의 장면을 56장의 사진 액자로 표현한 대형 설치 작품 'is of 속리산 2024-4'(2025)에는 각 액자에 호스로 연결된 진공 펌프를 설치했다. 전원을 연결해두면 주기적으로 굉음을 내며 액자 내부의 공기를 빼낸다. 철이 쉽게 산화되는 성질을 활용한 작품도 있다. 단면적이 넓은 철선을 체임버에 두고 공기를 통하게 해 산소가 철을 먼저 산화시키면서 모두 소모돼 작품으로 가지 않도록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또 'is of 내장산 2024-4'(2025)에는 산소와 달리 반응성이 낮은 비활성 기체로 식품 충전재로도 많이 쓰이는 질소를 계속 주입해 산소를 밀어내는 장치를 달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백 작가의 작품이 인간이 자연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결코 자연을 거스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인간의 욕망을 형상화했을 뿐이다.
백 작가는 "꼼꼼하게 밀폐된 액자를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완벽한 산소 차단은 불가능하다. 질소 가스통에 담긴 질소도 언젠가 소진된다"며 "작품의 산화를 늦출 수는 있을지 몰라도 막을 수는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늘날 기후변화 대응이나 우주 개발처럼 인간 중심적인 기술로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행위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