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7 11:26:59
러닝·독서 인기 이어 20·30세대 ‘클래식 힙’ 열풍 클래식 공연 판매액, 대중음악·뮤지컬 이어 3위 인기 공연은 수십초 만에 전좌석 매진되기도
19세기 유럽 음악계에는 ‘콘서트고어(concertgoer)’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는 말 그대로 ‘공연장에 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현재는 공연 문화 애호가들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19세기 초중반 영국의 음악 평론가들 사이에서 이 개념이 처음 사용될 당시만 해도, 콘서트고어는 산업혁명으로 생활 수준이 개선되자 클래식 공연장을 찾게 된 중산층들과 기존에 클래식을 즐기던 상류 음악 애호가들을 구별하기 위한 용어였다. 클래식을 듣는다는 뜻의 ‘리스너(listener)’나 애호가라는 뜻의 ‘러버(lover)’가 아닌, 자주 간다는 뜻을 강조한 ‘고어(goer)’가 쓰인 까닭도 이와 같다.
이처럼 비판적인 시선을 받으며 탄생한 콘서트고어들은 이후 대중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의도가 무엇이든 다양한 사람이 공연장을 찾게 되며 그만큼 다양한 형태의 음악과 공연이 생겨나서다. 상류층을 위해 연주되던 클래식을 오늘날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단순히 공연장에 가는 행위를 즐기던 콘서트고어들 덕분이라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 클래식 공연장이 다시 콘서트고어들로 붐비고 있다. 이들은 흔히 떠올리는 클래식 애호가들의 모습과 달리 검은 재킷 대신 캐주얼한 스웨트 셔츠를 입고, 프로그램북 대신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연주곡 목록을 검색한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웅장한 무대를 배경 삼은 티켓 사진과 함께 짧은 후기를 올린다.
중장년층이나 음악에 조예가 깊은 이들을 위한 장르라는 인식이 강했던 클래식이 20·30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며 자주 볼 수 있게 된 풍경이다.
실제로 클래식을 향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27일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4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서양음악(클래식) 공연 티켓 판매액은 1009억9613만원으로 2022년 648억2808만원에서 55.8% 증가했다. 같은 기간 티켓 예매 건수도 35.1%나 늘었다. 장르별로 봤을 때도 클래식 공연은 대중음악과 뮤지컬 공연 바로 다음 가는 티켓 파워를 가졌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클래식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숏폼 콘텐츠가 인기를 끌며 빠르고 자극적인 음악이 많아지자 반대급부로 편안하고 느린 클래식을 찾는 20·30대가 늘고 있다.
지난달 피아노 연주회를 다녀온 대학생 이민선 씨(25)는 “요즘 음악을 들을 때 짧게 후렴만 듣고 마는 경우가 많았는데 처음 듣는 음악도 차분하게 들으니 위로가 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클래식을 활용한 콘텐츠들이 화제가 되며 클래식에 대한 문턱이 낮아지기도 했다. 지난해 KBS교향악단이 강호동, 김종민 등 유명인의 언행에 맞춰 클래식 협주곡을 연주한 영상을 자체 채널에 올려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한 바 있다. 대학생 김시현 씨(25)는 “클래식은 지루하단 생각이 있었는데 클래식이 활용된 여러 콘텐츠를 보며 관심이 생겼다”고 밝혔다.
국내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활약도 클래식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조성진, 임윤찬, 박재홍 등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고 이들의 영상이 SNS에서 회자되며 클래식에 입문한 이들도 많다.
최근 클래식 공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직장인 김성민 씨(26)는 “자기 전에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며 “공연장에 가 직접 연주를 들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기 속에서 일부 클래식 공연에 대해선 치열한 예매 경쟁이 열리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에 따르면 지난 3월 통영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리사이틀 연주회는 티켓 오픈 58초 만에 매진됐다. 오는 6월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임윤찬과 파리오케스트라의 협연 역시 티켓 오픈 30초 만에 전석이 매진됐다. 같은 달 대구에서 열리는 ‘조성진 리사이틀’ 연주회도 1분 만에 매진된 바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클래식 등 예술 소비가 늘며 공연·전시 업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한 공연 업계 관계자는 “클래식 등 다소 고전적인 예술 소비가 낭만적인 취미로 여겨지는 추세”라며 “과거보다 젊은 관람객의 비율이 높아지며 아이돌과 협업하거나 작품을 숏폼 형태로 가공해 소개하는 등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도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