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로 떠나기 좋은 5월도 끝나간다. 미 북동부, 뉴욕주 서부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은 열한 개의 호수 핑거레이크스(Finger Lakes)가 있다. 그중 가장 긴 호수는 '카유가'다. 그 이름 속에는 '거대한 늪'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거대한 물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도시 이타카!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오디세우스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섬과 이름이 같다. 그곳은 미국의 알프스라 불릴 만큼 아름답다. 그러니 그곳에 간 우리에게도 마음속 섬으로 기억될 게 분명했다.
떠나기 전 나는 남편이 먹을 밑반찬과 육개장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었다. 혼자서는 잘 붙이지 않는 팩도 챙기고, 소풍 가듯 마음 설레며 짐을 꾸렸다. 햇살 가득 초록이 부풀던 그 봄날, 우리는 (호수 이름처럼 손가락에 비유하자면 다섯 손가락(Five Fingers)쯤 되겠다) 출발했다. 뉴욕주로 여섯 시간 넘게 달려 도착하니 차창 너머로 이타카의 저녁이 조용히 몸을 풀기 시작하고 있었다.
드디어 '다섯 손가락' 멤버들이 도착한 숲속의 집! 통유리로 만든 창문 아래로 바다만큼 큰 호수가 내려다보였다. 거대한 물 위에 태양이 깨진 듯, 노을이 지고 있었다. 찬란한 빛에, 모두 한동안 말을 잃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멤버들의 지난 생일과 다가올 생일을 묶어 잔치를 열었다. 생일 축하의 그림을 숙소 벽에 걸었다. 이름이 쓰여 있는 종이 왕관은 유난히 알록달록 빛이 났다. 그때, 지혜로운 중지가 가방에서 똑같은 옷을 꺼내 왔다. 하나씩 나눠 입으니 모두에게 잘 어울렸다. 우리는 서로의 매무새를 봐주고, 종이 왕관을 씌워주며 즐거워했다.
어떤 손은 양념해 온 고기를 굽고, 어떤 손은 텃밭에서 뜯어온 상추와 쑥갓을 내놓았다. 고추와 깻잎 장아찌를 곁들이고, 캐비닛에서 고운 접시를 꺼내 저녁 식탁을 차리고, 노을빛 와인을 잔에 채웠다.
어느 집시 소녀의 뒷모습처럼 흐르던 그 강물 때문이었을까. 다섯 가지 미소를 가진 우리는 푸르스름한 빛이 번지는 창가에 둘러앉았다. 그날 저녁 호수는 멤버들을 아홉, 열 살쯤으로 돌려놓았고 우리는 공깃돌 놀이를 했다. 그러나 마음 밖으로 계속 이탈하는 다섯 개의 작은 돌멩이들, 그때마다 모두는 까르르까르르 파도처럼 환히 부서졌다.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우리는 어릴 적 눈 감고도 익숙했던 놀이들마저 하나둘 어설퍼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언제 이렇게 멀리까지 흘러온 걸까…. 그러나 우리, 아쉬워하진 말자. 저 창밖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노을의 아름다움이 있지 않은가. 혼자 걸어가지 않아도 되는 이 길이 참 고맙고 다행이다.
물새도 잠들 무렵, 촛불을 켠 우리는 은은한 불빛에 둘러앉았다. 그때 검지는 애잔한 노래로 모두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다섯 손가락처럼 모두 다른 우리라서, 참 잘 어울렸다. 졸졸졸 긴 이야기가 그렇게 밤 깊도록 이어졌다.
저 멀리, 강 건너 마을로 내려왔던 별들도 하나둘 돌아가 잠자리를 폈다. 우리도 졸음 가득한 촛불을 끄고 각자 침실로 향했다. 처음 만났을 때 왈칵 안겨들었던 그 숲의 노을처럼, 그 밤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이타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