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일은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일이다. 취재를 하다 보면 언쟁을 벌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고, 아주 가끔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아마 사회인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그런 날이면 일을 마치고 침대에 쓰러져 생각하곤 한다.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무해하게 살고 싶었는데…….
완전 무해한 삶이란 건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건 최근 개봉한 영화 '씨너스: 죄인들'을 보고 나서다. 1932년 미국 미시시피에서 흑인 커뮤니티끼리 연 술집에 뱀파이어가 난입해 싸우는 일종의 오컬트 영화다.
영화의 백미는 주인공 새미가 부르는 'I Lied To You(거짓말을 했어요)' 공연 장면이다. 새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블루스 가수가 되고자 한다. 타고난 실력도 있다. 하지만 음악과 유흥을 죄악시하는 목사 아버지의 신념 아래 꿈을 숨겨왔다. 영화의 중반부 새미는 주점 공연 무대에서 열광적으로 이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에게 숨겨온 꿈을 말한다. 종반에 이르러서는 아버지와 사촌 형들의 조언을 뿌리치고 음악가로서 자신의 길을 간다.
오컬트 영화로서 뱀파이어와 인간 간 대결도 단순한 선악 구도는 아니다. 불청객처럼 다가와 사람들을 물어 뱀파이어로 만들어버리는 인물은 아일랜드계 미국인. 오랜 시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유럽의 흑인'으로 불린 이들은 미국에서는 백인과 아일랜드계라는 이중적인 지위를 부여받는다.
그들은 죽지도 않고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적 '뱀파이어 공동체'를 만들자고 주인공 일행을 설득한다. 살점을 물어뜯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가리면 매력적이기까지 한 정치적 구호로 읽힌다. 뱀파이어의 분노와 구호도 이해할 수 있다. 핍박받고 낙인찍힌 이들이 꿈꿀 만한 목표다.
영화는 개인의 갈등(음악·종교적 신념)과 집단 간 갈등(인간·뱀파이어) 두 갈래로 나뉘어 주인공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선택을 내리기까지는 목숨을 건 싸움과 갈등이 수반된다.
우리 사회에서 '무해함'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지는 꽤 됐다. 이기심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 서로에게 다정하고 안온한 존재가 되자는 것은 요즘의 시대를 읽을 만한 키워드다. 단순한 감정 싸움을 넘어 범죄와 사고의 표적이 되는 이들에게는 무해함이 하나의 생존 지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론 무해함이 장벽이 되는 게 아닐까. 외부와의 갈등과 불화를 없애버리려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지천에 널린 해로움을 보다 덜 해롭게 만드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씨너스'에서 뱀파이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60년이 지난 뒤에도 주인공을 찾아 문을 두드린다. 각자의 처지와 불가피한 상황을 통해 맞붙은 이들은 시간이 지나도 세상에 남아 섞이고 뭉치고 흩어진다.
누구나 타인과 뒤엉키고 갈등한다. 심해지면 우울의 늪에 빠져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결국은 먼지에 뒹굴고 피땀을 흘리면서 앞으로 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자신의 꿈과 같은 기타가 부서지고 살갗이 찢어져도 어쩔 수 없다. 무해함의 갑옷을 벗고 진창에 구를 수밖에 없다. 생활에 지친 와중에 뱀파이어 영화가 주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