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5 11:45:17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 ‘꽃은 열흘을 붉게 피지 못하고, 권세는 십 년을 넘기기 힘들다.’ 권력 무상을 가리켜 흔히 쓰는 말이다. 임원 재직 기간에 적용해보면 권불오년도 힘든 게 냉혹한 현실이다. 글로벌 컨설팅사 콘페리(Korn Ferry)가 2020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상위 1000대 기업 C-suite 평균 재임 기간은 4.9년에 불과하다. 국내 10대 기업 임원의 평균 재직 기간 역시 5.6년 수준(한국CXO연구소 2018년 자료)이다. 0.84%의 바늘구멍을 뚫고 겨우 도달한 임원의 자리 보존 기간이 5년도 채우기 힘들다. 업종, 직위에 따라 차이가 있어 더 짧을 수도 있다. 짧든 길든 임원들은 자연의 사계절처럼, 리더십의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전환기를 맞게 된다.
Q. 임원으로 승진한 이들은 대부분 탁월한 역량을 지닌 인재다. 그들 사이에서도 성패가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A. 김 코치: 단순한 역량 이상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흔히 그릇 크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자 그릇 기(器)를 보면 입 구(口)가 네 개 있다. 이를 수신- 제가-치국-평천하의 그릇이라고 빗대 말하곤 한다. 개인 역량을 넘어 팀, 조직, 회사의 시야에서 보고, 기대치와 역할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팀(조직)에 의존하는 행동을 취하고, 자신에게 의존하는 습관을 버릴 필요가 있다. 취할 것과 버릴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팀은 과제를 중심으로 뭉친 실천 단위, 조직은 전략과 구조로 이루어진 시스템이다. 임원이라면 비즈니스가 첫째, 부서는 둘째라는 사고를 가져야 한다. 비즈니스를 전체적으로 바라본 뒤 자신의 부서가 비즈니스를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 거꾸로 좁혀 들어가는 사고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S임원은 멘토로부터 “이제 임원이 됐으니 너무 애쓰지 말라”는 얘기를 듣고 어리둥절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력하지 말란 뜻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 역량이나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말고 판을 크게 보란 뜻이란 것을 뒤늦게 깨우쳤다”고 고백했다. 이른바 유능함의 역설이다. 경영 코치 스콧 에블린은 임원의 실패 요인을 ▲커뮤니케이션 기술 부족 ▲업무 수행에서 상호관계와 인간관계 기술 부족 ▲나아가야 할 방향과 기대치에 대한 명확한 이해 부족 ▲과거 습관의 신속한 폐기와 새 상황에 대한 적응 실패라고 말한다.
Q. 현실적으로 리더가 지금 어느 계절에 있는지 인식하기 어렵지 않나?
A. 김 코치: 맞다. 실제로 많은 리더가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를 성찰하기보다, 그저 주어진 일에만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리더십도 자연의 사계절처럼 흐른다. ‘사계절 자기 인식 질문’을 하나의 리더십 루틴으로 삼기를 권한다. 매 분기 혹은 큰 프로젝트 전후에, 꼭 스스로에게 다음 질문을 던져보시길 바란다.
- 지금 나는 어떤 변화를 마주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외부 환경의 변화뿐 아니라 내면의 감정과 동기, 리더십의 질감까지 점검하는 물음이다.
- 지금 내 리더십은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있는가?: 계절마다 입는 옷이 다르듯, 리더십도 ‘지금에 맞는 태도’가 필요하다.
Q. 국내 임원 평균 재직 기간이 짧게는 2년, 평균 5년에 불과한 현실에서 과연 리더십의 단계별 구분이 의미가 있을까? 물리적인 연차만으로는 구분이 어려워 보인다.
A. 김 코치: 임원의 리더십 단계를 숫자로만 나누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리더십의 단계는 단순히 ‘기간’이 아니라 ‘전환의 질’, 즉 변화의 순간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심리적·전략적 전환점의 단계가 있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그 계절을 인식하고, 그에 맞는 리더십으로 ‘갈아입을’ 수 있느냐다.
Q. 임원의 리더십 여정을 사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비유한다면, 각 단계의 특성과 유의 사항은 어떻게 달라지나?
A. 김 코치: 각 계절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리더십 전환의 방향성과 과제를 내포한 프레임이다. 봄, 신임 리더 단계는 새로운 관찰과 리더십 발아의 시간이다. 신임 임원이 맞이하는 봄은 ‘성과’보다 ‘관계’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다. 이전의 성공 방식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조직 토양, 즉 문화와 권력 구조, 비공식 네트워크를 읽는 것이 우선이다. 과거의 성공 경험은 때때로 독이 된다. 유능함의 역설을 조심해야 한다. 여름은 실행과 영향력의 계절, 이제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리더십의 실체를 드러내며 본격 성과를 내는 시기다. 하지만 이 시기의 함정은 ‘과속’이다. 성과 중심 독주를 경계할 것. 팀의 속도를 함께 봐야 한다.
가을은 성찰과 전략 재구성의 시간이다. 성과가 누적되고, 일도 조직도 손에, 눈에 익는 시기다. 이 시기엔, 외부 환경 변화에 맞춘 리프레임에 특히 중점을 둬 점검할 필요가 있다. 봄엔 리더 개인의 성공방정식에 매몰되는 게 위험하다면, 가을엔 조직(팀)의 성공방정식 과신을 조심해야 한다. 항로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겨울은 본격 전환의 시기다. 한국 인사 체제 특성상 퇴직 전날까지도 잘 알지 못하는데, 연차 후반기에 이르면 “나는 무엇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를 생각하고 점차 준비할 것을 권한다.
Q. 한국의 인사 시스템은 며칠 전 전광석화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퇴직이든 보직 변경이든 갑작스러운데, 퇴장과 관련된 ‘겨울의 리더십’은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A. 김 코치: 겨울의 리더십은 ‘퇴장’이 아니라 ‘전환’의 예술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인사 제도 속에서도 준비된 리더는 퇴장이 아닌 다음 계절을 대비한다.
“내가 떠난 뒤에도 조직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려면?”을 1p로 매 인사 시즌에 정리해보라고 제안한다. 그것은 후임 리더에게 주는 메시지기도 하지만 본인 리더십의 연말정산이기도 하다.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기 전, 대통령 전용 책상인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에 손편지를 남기는 전통이 있다. 후임이 직면할 무게를 이해하고, 응원의 마음을 건네는 일이다. 같은 기업 내에서도 전임, 후임 간 인수인계 전통이 있는 부서와 없는 부서가 있다. 이는 조직문화 정립과 계승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Q. 임원으로서의 성공과 개인의 성공을 같이 균형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배 임원의 스트레스나 번아웃을 보며 나다움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A. 김 코치: 탁월한 임원이란 단지 성과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다운 방식으로 리더십을 구현하는 사람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후계자인 팀 쿡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스티브 잡스라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묻지 말고, 당신다운 결정을 하세요.” 이는 단순한 유언이 아니라, 리더십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다.
‘○○○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의 벤치마킹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최상의 나는 어떻게 행동하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리더들에게 ‘인생 GPS’라는 도구를 작성해보실 것을 권한다. GPS로 현재 좌표와 갈 목표를 설정해 찾아갈 수 있다. 인생 GPS를 이용하면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어떤 행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지, 일과 삶의 밸런스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좌표, 목표, 장애물, 이탈 요소, 경로를 고루 파악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관점을 새롭게 바꾸는 데 유용하다.
리더십은 마라톤도, 일회성 단거리경주도 아니다. 단거리경주의 지속적 반복과 충전이다. 임원 리더십의 진정한 성패는 ‘몇 년 버텼는가’보다 단계별 전환을 잘했는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전환의 사계절에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질문을 던졌으며, 어떤 선택과 행동을 했는가가 결국 성패를 가른다. 리더십의 사계절, 여러분은 어떻게 맞고 있나.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코칭경영원 코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7호 (2025.04.30~2025.05.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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