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신춘호 농심그룹 창업주, 매경·경영학회 '명예의전당' 헌액 산업화에 정진하던 1965년 '값싼 대용식 만들자' 결심 창업 4년만에 맞은 폐업위기 소고기라면 개발해 성장 발판 최고의 역작 '신라면' 개발땐 모든 품종 고추 직접 먹어봐 안성탕면·짜파게티·새우깡 등 브랜드 전문가로도 명성 높아
고(故) 율촌(栗村) 신춘호 농심그룹 창업주. 농심그룸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하고, 값이 싸면서 한국인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한다. 이런 제품이라면 우리의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쌀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혼분식 장려운동'이 진행 중이니 사업 전망도 밝다."(1965년 청년 신춘호가 라면시장에 진출하며 밝힌 포부)
'라면왕'으로 불리는 율촌(栗村) 신춘호 농심그룹 선대회장.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산업화를 향해 나아가던 1965년, 신 선대회장은 '값이 싸면서 맛있고 영양가도 충분한 대용식'을 제공해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해 자본금 500만원으로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현 동작구 대방동)에 롯데공업주식회사(현 농심)를 설립하고 라면시장에 뛰어들었다. 그의 나이 35세 때였다.
청년의 꿈은 원대했지만 창업가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선두 업체가 국내 라면시장을 80% 이상 차지해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창업 4년 만에 회사의 문을 닫느냐 마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이때 반전을 만들어낸 '신의 한 수'가 '소고기라면'이었다. 신 선대회장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전통 소고기 국의 감칠맛을 구현하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70년 소고기라면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소고기라면은 출시 직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롯데공업의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은 10%대에서 곧바로 22.7%로 뛰어오르며 성장의 불씨를 지필 수 있었다.
신 선대회장은 이 같은 반전의 드라마를 쓴 후 신라면, 짜파게티, 너구리 등 세상에 없던 제품을 속속 내놓으며 국내 라면시장을 이끌었다. 스낵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1971년 새우깡을 출시해 시장을 열며 농심을 국내 대표 식품 기업으로 키웠다.
한국경영학회·매일경제신문은 15일 '2025 대한민국 기업가 명예의 전당' 헌액식을 열고 신 선대회장을 명예의 전당 헌액자에 선정했다.
'대한민국 기업가 명예의 전당'은 우리나라의 경제·산업 발전에 탁월한 기여를 한 기업인의 노고를 기리고, 우리 기업과 사회 각 분야 후배들이 그들의 도전정신을 본받길 바라는 의미에서 2016년 한국경영학회와 매일경제신문이 제정한 상이다.
심사를 담당했던 정연승 한국경영학회 어워드선정위원회 위원장은 "율촌 신춘호 선대회장은 1970년 라면을 개발·출시해 국민의 식생활에 혁신을 불러일으켰다"며 "'신라면'을 중심으로 농심을 세계적인 식품 기업으로 키운 데다 철저한 품질경영, 연구개발 중심의 기업 철학을 토대로 해외 시장 개척을 이끈 창조적인 경영자"라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1982년 육개장 사발면 출시 당시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가운데)이 임직원들과 라면을 시식하며 회의를 하고 있다. 농심그룹
신 선대회장은 기술 개발과 품질 향상에만 매달려온 '은둔의 기업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가 연구개발에 몰두하면서 만들어낸 최고의 역작은 1986년 출시한 '신라면'이다.
신 선대회장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맛만 구현한다면 모든 국민이 즐겨 먹는 라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매운맛을 찾기 위해 전국에서 재배되는 모든 품종의 고추를 매입해 직접 먹어보면서 매운맛을 실험했다.
국밥 등 국물요리에 주로 넣어 먹는 다진 양념의 조리법도 연구하면서 고추와 양념 등을 잘 배합해 궁극의 매운맛을 담은 신라면을 세상에 내놨다.
신라면은 출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이듬해 180억원을 상회하는 매출을 올렸으며, 1991년 국내 라면시장 1위에 올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상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신 선대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명성이 높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인 '안성'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장수 인기 제품에는 신 선대회장의 천재성이 반영돼 있다고 평가받는다.
농심은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에 라면류 공식 공급 업체로 지정되며 세계인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얻은 신 선대회장은 신라면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해외 시장에 주목했다.
농심의 첫 해외법인은 1994년 설립한 농심 아메리카다. 1971년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라면을 수출해온 농심은 1980년대 LA 지역 동포 사이에서 '너구리'가 인기를 얻자 1994년 현지 법인을 세우고 수출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신 선대회장은 1996년 상하이에 공장을 세우고 중국 시장도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했다. 1997년 칭다오농심과 1999년 선양농심을 각각 설립해 중국 내 사업을 키워나갔다. 신 선대회장은 라면의 종주국 일본에서는 2002년 일본 법인 '농심재팬'을 설립해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