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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 골드카드·비자 급행료···공공재 특권화하는 트럼프의 엉뚱 계산법 [★★글로벌]

미국 내 경제 활동과 거주의 자유 거대 특권으로 생각하는 트럼프 외국인에 공공재 가격 차별 속도 ‘벨벳줄 경제’ 방식 공공재 이식 비자 인터뷰 29만원→‘146만원’ 이민 전문가들은 “대단한 착각, 트럼프가 미국 매력도 떨어뜨려”

  • 이재철
  • 기사입력:2025.06.06 09:01:00
  • 최종수정:2025.06.06 0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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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경제 활동과 거주의 자유
거대 특권으로 생각하는 트럼프
외국인에 공공재 가격 차별 속도
‘벨벳줄 경제’ 방식 공공재 이식
비자 인터뷰 29만원→‘146만원’
이민 전문가들은 “대단한 착각,
트럼프가 미국 매력도 떨어뜨려”
지난 4월 3일 트럼프 대통령이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황금색 배경에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500만달러 영주권 카드(이른바 골드 카드) 샘플을 들고 있다. <
지난 4월 3일 트럼프 대통령이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황금색 배경에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500만달러 영주권 카드(이른바 골드 카드) 샘플을 들고 있다. <

#장면1 : 지난 4월 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금색 신용카드 모양의 ‘골드 카드’를 기자들에게 소개했다. 미 행정부에 500만달러만 내면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고가의 그린카드였다. 한 달 뒤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일주일 내에 골드카드 웹사이트가 개설되고 이 특권에 관심 있는 해외 구매자들이 등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러트닉 상무 장관의 발언이 나온지 보름이 지났지만 골드카드 전용 웹사이트는 감감무소식이다. 제도의 적절성을 두고 공화당 내부에서도 찬반이 갈리고 있다.

#장면2 : 트럼프 행정부는 골드카드 프로젝트에 더해 비(非)이민 비자를 신청하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또 하나의 가격 차별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급행료 ‘1000달러(146만원)’를 내면 다른 비자 신청자에 앞서 먼저 비자 인터뷰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이 비자 신청자들에게 부과하는 수속 비용은 185달러(27만원)인데 약 5배를 더 내면 특별 서비스를 받게 된다.

트럼프가 미국 재정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넘지 말야야 할 선을 넘으려 하고 있습니다.

일반 사기업이 초고소득층을 타깃으로 즐겨 쓰는 이른바 ‘벨벳줄 경제’를 미국 공공 서비스에 적용하려 하는 것이죠. 벨벳줄 경제는 일반 서민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고급진 벨벳 줄로 빙 둘러 경계를 가르는 가격차별 행위를 뜻합니다.

뉴욕타임스(NYT) 기자 출신인 넬슨 슈워츠가 2017년 ‘벨벳줄 경제 : 어떻게 불평등은 거대한 사업이 됐나’라는 저서에서 야구장과 놀이공원, 공항, 심지어 병원 침대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석구석 벨벳줄이 둘린 미국 자본주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이 용어가 회자 됐습니다.

넬슨 슈워츠의 2017년 저서 ‘벨벳줄 경제 : 어떻게 불평등은 거대한 사업이 됐나’ 표지 <이미지=아마존>
넬슨 슈워츠의 2017년 저서 ‘벨벳줄 경제 : 어떻게 불평등은 거대한 사업이 됐나’ 표지 <이미지=아마존>

민간 기업이 수익 고도화를 위해 사용하는 가격 차별 전략을 미국의 대통령이 전례 없이 공공 영역에 도입하려는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세수 확대’입니다.

자신의 거대한 감세법안을 끌고 가려면 각종 감세로 부족해지는 세수를 다른 방식으로 메워야 하는데 주특기인 ‘국경’ 문제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국경 밖에서 미국 진입을 원하는 돈 많은 외국인을 상대로 먼저 가격 차별 전략을 쓰려는 것이죠.

미국 비자와 영주권은 미국 정부만 가진 독점 서비스인만큼 부르는 게 값입니다.

‘장면 2’에서 언급한 146만원짜리 비자 인터뷰 급행료가 실제 도입되면 미국에 비자를 신청하는 한국민은 직감할 것입니다.

‘나보다 5배 이상 비싼 수수료를 낸 신청자들에게 미국 정부가 가혹하게 비자를 거부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거야’라고.

반대로 ‘185달러를 낸 나는 5배 이상 높은 수수료를 지불한 저들 때문에 비자 신청에서 탈락률이 올라갈 수 있다“라는 고민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185달러를 내고 긴 트랙에 서기보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1000달러를 내고 패스트트랙에 서려 할 것입니다.

트럼프가 설정한 급행료(1000달러)와 일반 수수료(185달러) 간 차액(815달러·119만원)은 이렇듯 위험을 회피하려는 구매자의 염려 앞에서 작은 숫자에 불과합니다.

4인 가족이 비자를 신청한다고 보면 이 패스트트랙에 서기 위해 500만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팁 과세 면제 등 미국민에게 다양한 감세 혜택을 제공하려는 트럼프 의지가 강해질수록 이처럼 국경 서비스를 둘러싼 공공 수수료는 천정부지로 오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공교롭게도 일반 신청자와 패스트트랙 신청자 간 5배의 가격 차이는 주요 항공사의 이코노미석과 일등석 간 가격 차이(4~5배)와 유사합니다.

퍼스트 클래스 - 비즈니스 클래스 - 이코노미 클래스
퍼스트 클래스 - 비즈니스 클래스 - 이코노미 클래스

기분 나쁘겠지만 연구원, 유학생 등 다양한 이유로 미국에 가려는 외국인은 공항 문턱을 넘기도 전에 미국 대사관에서 줄을 서며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할 것입니다.(황금색을 선호하는 트럼프 성향을 고려할 때 실제 비자 인터뷰 현장에 1000달러짜리 패스트트랙을 표시하는 황금줄이 둘릴 수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 세수 확대를 위한 트럼프의 진정성을 이해하더라도 공공재를 독점 공급하는 정부가 사기업처럼 차별적 가격 정책을 실행하는 건 위험합니다. 경제학에서 공공재는 상당한 무게감을 갖는 단어입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공공재에는 ‘비배제(Non-excludability)’와 ‘비경합(Non-rivalry)’이라는 두 개념이 표출됩니다.

누군가 소비를 한다고 해서 다른 이가 소비할 기회를 줄이지 않아야 하며(비경합), 대가를 내지 않은 이라 하더라도 소비에서 제외할 수 없는(비배제) 상품입니다.

그래서 공공재의 질과 국민이 느끼는 만족도야말로 그 나라의 수준을 보여주는 진짜 선진 척도입니다.

공공재를 더 불평등하게 만들고 독점기업마냥 공급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올리는 행태가 반복될 경우 세계는 미국을 더이상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

트럼프의 대단한 착각도 문제입니다.

최근 미 공영라디오(NPR)는 이민법 전문가들을 통해 트럼프 골드 카드에 대한 시장 반응을 조명했습니다.

트럼프는 “이 카드를 100만장,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이민 전문가와 변호사들은 이 수치가 비현실적이라고 평가절하합니다.

이민 전문 호사인 대런 실버는 판매 조건인 500만달러가 수익이 보장되는 투자가 아니라 국고에 귀속되는 기부금 성격이라는 점에서 상담 고객들이 놀란다고 NPR에 전합니다.

트럼프는 미국에서 영주권을 얻는 게 대단한 특권이라고 생각하지만 부러울 게 없는 각국 고소득층에게 미국 영주권은 500만달러를 들여 살만큼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유층과 특권층 외국인을 위한 레드 카펫에 내국인 정서가 곱지 않은데다 500만달러의 출처를 미국 정부가 제대로 파악하지 않을 경우 범죄와 국가 안보 리스크로 위험이 전이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몰타, 그리스, 포르투갈, 뉴질랜드, 아랍에미리트 등 여러 국가에서 투자 대가로 거주지나 시민권을 제공하는 유사한 프로그램을 시도됐지만 이런 다양한 위험 요인 때문에 혼란을 겪다가 중단했습니다.

트럼프는 미국을 크고 아름다우며 미국에서 사는 게 특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이런 생각과 다르게 반이민, 반외국인, 반유학생 정책을 통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미국의 매력도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며 관세 전쟁으로 미국 경제를 수렁에 몰아 가듯이 트럼프의 공공재 차별 전략은 세수 확대에 비상이 걸린 미국이 얼마나 궁박한 처지에 몰렸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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