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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이자만 한해 200조원…방탕했던 日, 금리 있는 세상에서 ‘퍼거슨 한계’ 마주하다 [★★글로벌]

美재정위기 공포심리, 日경제 불똥 “그리스보다 나쁘다” 이시바 발언 올해 이자부담 100조원 충격 반영 2028년 150~200조원 커질 수도 방위비보다 큰 이자액 ‘퍼거슨 한계’ 日 경제력과 안보 패권에 부정 영향

  • 이재철
  • 기사입력:2025.06.04 10:16:33
  • 최종수정:2025-06-04 19: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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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재정위기 공포심리, 日경제 불똥
“그리스보다 나쁘다” 이시바 발언
올해 이자부담 100조원 충격 반영
2028년 150~200조원 커질 수도

방위비보다 큰 이자액 ‘퍼거슨 한계’
日 경제력과 안보 패권에 부정 영향
사진설명

“우리의 재정 상황은 의심할 여지 없이 열악하며 그리스보다 더 나쁘다.”(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5월 19일 의회 연설)

이날 그의 발언은 솔직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했지만 양심적으로 온당했습니다.

‘제로 금리’의 세계에서 20여년을 유영하다 지난해부터 ‘금리가 있는’ 세상으로 발을 내디딘 경제 대국 일본이 지금 천문학적 국가 부채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유력 외신들이 설명하는 정제된 문장과 달리 시장이 감지하는 공포는 급등한 일본 초장기물(30·40년물) 국채 금리로 거칠게 나타납니다.

아마도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재무성과 중앙은행(일본은행·BOJ)은 금리가 있는 세상으로 진입하는 초입에서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트럼프 2.0 출현이 만든 관세 전쟁과 인플레이션 압력도 포함될 것입니다.

일본 경제와 안보 패권을 짓누르는 국가 부채 리스크를 소개합니다.

日 나사 풀린 적자 재정, 금리 있는 세상에서 ‘대재앙’

사진설명

최근 외신들이 빈번하게 조명하고 있는 일본 국채 금리 급등 현상은 얼마 전 무디스의 미 국가 신용등급 강등과 흐름을 같이 합니다.

미 국가 부채에 대한 위기 신호음이 강하게 퍼지다 보니 태평양을 건너 일본 열도까지 불똥이 튀었습니다.

일본 국가 부채는 경제 규모(GDP) 대비 240%를 넘나드는 1130조엔(1경740조원)입니다. 경제 규모 대비 선진국 최악 수준이며 한국 국가 부채(1200조원)의 9배에 육박합니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초저금리에 힘입어 적자 재정으로 공공 지출을 늘렸습니다.

금리가 없는 세상에서 차입 비용이 작다보니 마음껏 채권을 발행해 씀씀이를 키워왔습니다. 이를 상징하는 단어가 ‘아베노믹스’입니다.

사진설명

그런데 작년부터 기준금리 인상으로 통화정책 전환이 이뤄지면서 금리가 있는 세상이 열렸습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새로운 변화를 달갑지 않게 받아들였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죠.

그 결과 작년 7월 기준금리 인상 결정에 엔 캐리 트레이드( 차입비용이 낮은 엔화 대출로 금리가 높은 해외 자산에 투자) 자금이 일시에 청산 움직임을 보이면서 뉴욕 증시는 물론 아시아 증시 전체에 충격을 가했습니다.

금리가 없는 일본에서 갑자기 0.25% 기준금리 인상이 이뤄지고 엔화 가치가 오르자 ‘환차손’ 위험을 피부로 실감한 와타나베 부인(일본 엔 캐리 투자자)과 해외 투자자들이 일제히 투자금을 빼 대출 청산에 나선 것이죠.

0.25%라는 작은 숫자 하나가 ‘엔 캐리 트레이드가 과거만큼 유효하지 않으며 언제든 추가 발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새로운 시장 역학을 만들었습니다.

일본 기준금리 인상 추이
일본 기준금리 인상 추이

당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뉴스의 폭발성에 가려졌지만 이때부터 일본 정부 가계부에서 부채 원금에 붙는 이자 비용으로만 한해 ‘100조원’을 막아야 하는 지옥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재무성 자료를 보면 지난 20년간 일본 정부는 0.8~1.4%의 금리 수준에서 한해 70조원 안팎의 예산을 이자 지불에 썼습니다.

금리 인상 기조에 따라 2025 회계연도에서 금리를 2%로 올려 잡았고 그 결과 이자 지급액이 100조원(10조5000억엔)으로 급등한 것이죠.

이 공포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재무성은 금리 상승 여파로 향후 수년간 갚아야 할 연간 부채 이자 지급액이 빠르게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자료 : 일본 재무성
자료 : 일본 재무성

올해 1월에 공개한 추계 자료를 보면 2028 회계연도에 갚아야 할 이자액은 153조원으로 2025 회계연도에서 53조원 폭증합니다. 적용 이자율을 2%에서 2.5%로 올린 결과입니다.

3년 뒤 전체 예산 ‘20%’ 오롯이 ‘이자 지불’에 쓸 수도

그런데 최근 시장 상황을 보면 3%를 돌파하며 내달리는 일본 초장기물 국채 금리가 진정되지 않고 우상향할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폭과 속도 역시 중요한 변수입니다.

2028 회계연도에서 떠안을 이자 추계(153조원)는 상황에 따라 재무성의 계산이 보수적이었음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이자율을 2.5%에서 3% 가까이 잡으면 부담은 200조원을 웃돕니다.

사진설명

최근 재무성의 분주한 움직임은 이런 경각심을 설명합니다.

지난달 28일 40년물 국채 경매에서 재무성은 기대를 밑도는 냉랭한 수요를 확인하고 급기야 올해 국채 입찰 물량의 재조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오는 27일 대형은행 등 국채 큰손(프라이머리 딜러)들을 불러 올해 초장기물 입찰 물량을 전략적으로 축소하는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인플레이션 상승 추세와 함께 재정 적자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일본 국채에 요구하는 수익률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시장 눈높이를 맞추다가는 일본이 감내해야 할 이자액이 200조원에 이를 수 있기에 초장기물 입찰 물량을 애초 계획에서 줄이고 중장기물을 늘리는 방식이 예상됩니다.

국가 부채에 대한 시장 공포가 확산하는 가운데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솔직한 어투로 부채 위기를 경고하면서 펀더멘털에 대한 불안 심리를 부채질한 것입니다.

‘재정 매파’ 출신 야노 고지 전 차관, “끓는 스튜처럼 거품 터져 올라온다”

물론 현저한 부채 부담 가중에도 불구하고 일본 금융시장에 구조적 돌발 상황이 발생할 확률은 낮다는 시장의 평가입니다.

그럼에도 금리가 있는 세상으로 복귀한 일본이 과연 지난 20년 초저금리 시대에서 누린 방만 적자 재정 기조를 현명하게 극복할지 시장은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이 나사 풀린 과거의 적자 재정 기조를 바꿀 의지가 있는지부터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재정 매파 관료로 유명한 야노 고지 전 일본 재무성 차관은 최근 NYT에 일본 정부의 차입 비용 상승 위험은 현실이며, 최근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처럼 일본 국채도 등급이 떨어질 ‘상당한 위험’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야노 고지 전 재무성 차관  <사진=닛폰닷컴>
야노 고지 전 재무성 차관 <사진=닛폰닷컴>

그 역시 1경원을 돌파한 부채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 비용으로만 올해 100조원을 넘어선 점을 그 증거로 들고 있습니다.

야노 전 차관은 초장기물 국채 금리 급등에 대해 “이건 스튜가 계속 뜨거워져 거품이 터져 올라오는 것과 같다. 금리는 계속 오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일본 매체와 인터뷰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급증한 정부 지출 대비 세수 격차가 확대되면서 마치 크게 벌린 ‘악어의 입’ 모양처럼 적자 재정이 통제 불가능한 수위에 다다르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악어의 입’처럼 벌어지는 정부 재정 지출-세수 간 격차 확대 흐름 <닛폰닷컴>
‘악어의 입’처럼 벌어지는 정부 재정 지출-세수 간 격차 확대 흐름 <닛폰닷컴>

재직 시절 일본을 ‘부채의 산’이라는 빙산에 부딪히기 직전의 타이태닉호에 빗대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아베 전 총리가 “일본 국채는 제대로 팔리고 있어 타이태닉호가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특히 적자 국채의 절반을 일본 중앙은행이 매입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급기야 일본은행을 재무성의 ‘자회사’로 비유했습니다.

국가 부채의 절반을 일본은행이 보유하고 있고 국채 만기가 돌아오면 자회사 격인 일본은행에 돈을 빌려 막으면 된다는 발상입니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교도 AP 연합>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교도 AP 연합>

이는 일본 경제의 신뢰도를 무너뜨릴 위험천만한 사고입니다.

1경원이 넘는 부채 원금이 쌓이는 과정에서 해외 투자자 비중이 확대됐고 과거처럼 원금과 이자를 충당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국채를 찍어내다가는 이른바 채권 자경단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채권 자경단은 정부가 재정지출을 과도하게 확대할 경우 국채를 투매(=채권 금리 급등)해 정책 변화를 유도하는 투자자 움직임을 가리킵니다.

자국 편향이 있는 일본 내 금융 큰손들에 비해 해외 투자자들은 일본 재정 문제를 비롯해 경제 정책을 더 엄격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미 국채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 엄중한 행동주의에 놀라 주요국을 상대로 발표한 상호관세 발효 시점을 유예했습니다.

이자 부담에 방위비 지출 확대 빨간불···커지는 ‘퍼거슨 한계’
일본 육상자위대 훈련 모습 <로이터 연합>
일본 육상자위대 훈련 모습 <로이터 연합>

3년 뒤 순수 이자 비용으로만 150조~200조원이 아른거리는 상황에서 일본은 방위비 지출 확대를 지상 과제로 두고 있습니다.

3년 뒤 방위비 예산(올해 82조원)의 2.4배에 이르는 금액을 순수 이자 비용으로 써야 하는데 일본은 과연 방위비를 계획대로 확장할 수 있을까요.

200조원은 일본 예산(약 1000조원)의 20%에 이르는 수준입니다.

이 대목에서 한 지정학 개념이 떠오를 것입니다.

국방비 지출액과 국가 부채 이자 지급액 간 연관성을 설명하는 ‘퍼거슨 한계(limit)’ 입니다.

저명한 지정학 전문가이자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은 한해 국가 부채 이자로 지출하는 돈이 국방비 예산을 초과하는 시점이 제국 몰락의 시점이라며 이를 ‘퍼거슨 한계’로 부릅니다.

(이름에서 혼동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퍼거슨은 스코틀랜드 출신 정치 이론가인 애덤 퍼거슨의 분석을 가리킵니다. 공공 부채의 위험성을 분석한 애덤 퍼거슨의 성과를 니얼 퍼거슨이 ‘퍼거슨의 한계’로 확장해 발표했습니다.)

​16세기 스페인 합스부르크 제국부터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제국까지 이 임계점을 넘어선 제국이 패권 쇠락으로 재앙을 맞았다는 평가입니다.

미국도 2024년 회계연도부터 부채 이자 지출액(1조1124억달러)이 국방비 지출액(1조1107억달러)을 처음으로 넘어서면서 ‘퍼거슨 한계’ 시대를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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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일본이 과거 서구 제국의 위상과 패권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이미 과거부터 퍼거슨 한계를 경험했지만 최근 폭증하는 이자 비용은 일본의 야심 찬 방위비 구상에 중대 시련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간 초저금리 세계에서 일본은 차입 비용에 대한 무서움을 잊고 살았습니다.

‘금리가 있는’ 세계로 나오자마자 일본은 0.1%포인트의 금리 차이로 세출 항목에 수 십조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공짜 점심은 없는데 늘 정치는 공짜 점심이 있다고 국민을 현혹합니다.

그 후과가 무엇인지를 금리 있는 세상의 초입에 들어선 일본의 딜레마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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