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름·선교적’ 노선 눈길도 안주고
오로지 ‘솔직한 실리’로 해결사 역할
포린폴리시, 트럼프 입장 긍정 평가
“비판 지점 많지만 솔직함은 신선”

“미국 대통령은 이 지역에서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을 올바르게 버렸다.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도 솔직함으로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
얼마 전 중동 순방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미 외교 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가 이례적으로 긍정 평가해 눈길을 끕니다.
한국의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가 지난 3월 백악관에서 벌어진 이른바 젤렌스키 집단 구박 사건을 평가하며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트럼프의 외교 노선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 보여도 기존 미국 정부의 가식과 선교적 위장을 버리며 실용적인 가치를 추구했다는 평가입니다.
이 매체에서 외교 정책 칼럼을 쓰고 있는 스티븐 쿡은 21일(현지시간) ‘트럼프, 중동을 바로잡는다(Trump Gets the Middle East Right)’는 제목의 글에서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트럼프 연설을 환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예외주의와 그 가치에 대한 가식을 배제했고, 또 선교적 외교 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과거 미국이 구하고자 하는 세계에 피해를 줄 수 있고 실제 그렇게 해왔음을 인정한 대목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의 솔직함이 신선할 정도라는데 이 장문의 매일경제가 발췌해 소개합니다.(다소 길지만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퇴임할 당시 중동의 엄청난 잠재력을 가로막던 것은 끊임없이 혼란을 일으키는 소수의 불량 행위자와 폭력적인 깡패들이었다. 안타깝게도 지난 행정부는 이러한 파괴적인 세력에 맞서 싸우는 대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제 안정과 평온을 추구하는 이 지역에서 우리의 임무는 수백만 명의 꿈을 인질로 잡은 소수의 공포 세력에 맞서 단결하는 것이다. 이 세력 중 가장 크고 파괴적인 주체는 이란 정권이다.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제다와 두바이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층 빌딩을 건설하는 동안 1979년에 지어진 테헤란의 랜드마크는 잔해와 먼지로 무너지고 있다. 여러분의 기술이 메마른 사막을 비옥한 농지로 바꾼 반면, 이란의 지도자들은 부패한 물 마피아가 가뭄과 빈 강바닥을 초래하면서 녹색 농지를 마른 사막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부자가 됐지만 국민들은 그 부를 전혀 누리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의 근본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아랍 국가들이 지역 안정과 세계 상업의 기둥이 되는 데 집중하는 동안 이란의 지도자들은 해외에서 테러와 유혈 사태를 일으키기 위해 국민의 재산을 훔치는 데 집중했다. 시리아에서 무너져가는 정권을 유지하려는 이란의 노력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레바논에서는 헤즈볼라의 대리인들이 한때 중동의 파리로 불렸던 수도 베이루트의 희망을 약탈했다. 이 모든 비참한 상황은 완전히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오늘 이란 지도자들의 과거 혼란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훨씬 더 나은 희망찬 미래를 향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섰다. 나는 과거의 갈등을 끝내고 더 나은 세상, 더 안정적인 세상을 위해 비록 우리의 차이가 매우 심할지라도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할 것이다. 나는 영원한 적이 있다는 말을 믿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미국의 가장 가까운 친구 중 일부는 과거에 우리가 전쟁을 벌였던 국가들이다. 지금은 우리의 친구이자 동맹국이다. 나는 이란과 협상을 하고 싶다. 이란과 협상을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지역과 세계를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면 매우 기쁠 것이다. 선택은 그들의 몫이다. 우리는 그들이 훌륭하고 안전하며 위대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지만 핵무기를 가질 수는 없다. 지금 바로 그들이 선택할 때다. 나의 가장 큰 희망은 피스메이커가 되고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나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티븐 쿡 칼럼니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카타르로부터 보잉 747 기종을 뇌물처럼 받은 점, 그리고 순방 과정에서 온갖 뻔뻔한 주장, 심지어 시리아에 대한 제재를 갑자기 풀어준 것은 신중해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도 트럼프의 이런 솔직함(forthrightness)은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중동 방문, 특히 리야드 연설은 그와 그의 행정부가 이 지역에서 미국이 적절한 위치에 있다고 믿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라고 전합니다.
트럼프 2기 외교 정책에 최대한의 경고와 비판의 목소리를 가했던 포린폴리시가 상당히 전향적인 글을 올린 것은 리야드 연설에서 감지되는 진정성에 더해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트럼프의 대이란 협상 노력 때문으로 보입니다.
사실 전임 행정부의 중동 정책을 비판하고 차별성을 꾀하려는 트럼프의 노력은 지난 세 번에 걸친 트럼프의 미 대통령직 도전 과정에서 반복된 패턴이었습니다.
그런데 집권 2기 취임 후 행보를 보니 말의 성찬이 아닌 중동에 평화와 번영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상황인 것이죠.

그간 미국의 대중동 정책은 깊숙한 개입 입장을 취했을 때와 반대로 방어적 접근을 할 때 다양한 문제점을 발생시켰습니다.
적극적 개입 노선에서는 안타깝게도 정책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대체로 실패했으며 방어적 입장을 취했을 때는 이스라엘이 위태로워지거나 다른 도덕적 비용이 수반되는 식입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미국의 이런 전통적인 외교 공식을 탈피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쿡 칼럼니스트는 트럼프가 중동 문제 해결과 관리에 적극 나서면서도 미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인 직접 투자의 ‘종착점’으로 유도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걸프만 국가들이 미국의 경제 프로젝트에 돈을 쏟아붓겠다는 약속을 잘 지킨다면 (트럼프의 솔직한 외교 노선의 효과성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중동의 고질적 문제에 해결사 역할을 하는 트럼프의 최근 행보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이스라엘입니다.
올해 1월 취임 때만 하더라도 트럼프를 가장 든든한 우호 세력을 믿었던 이스라엘은 최근 상당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쏟아지는 이스라엘 관련 뉴스에서 확인되듯 이스라엘은 언제든지 이란 핵시설을 타격할 것임을 예고하며 불안하고 호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마저도 미국과 사전에 조율된 대이란 핵협상 압박 카드일 수 있지만 만약 이스라엘이 트럼프의 통제를 벗어나 핵시설 공격을 감행할 경우 중동 지정학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좌충우돌, 사고뭉치 트럼프는 과연 중동 외교에서 우아한 위선이 아닌, 정직한 야만의 모습으로 전임 행정부가 성취하지 못한 결과물을 얻게 될까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를 이끌며 미국이 한때 현상금 140억원을 걸었던 아메르 알 샤라 시리아 임시 대통령과 악수하며 대시리아 경제 제재를 풀고 이란과는 아직까지 순조롭게 핵협상을 전개하는 행보를 볼 때 기대감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이스라엘을 미국이 어떻게 어르고 달래며 끌고 갈지 주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