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 보고서 “달러 가치 하락해야 제조업 부활·무역적자 해결”
이창용 “나쁘지 않은 뉴스...전문가끼리 논의하는 게 나아”

한미 양국이 7월 8일까지 관세 철폐를 목표로 마련하기로 한 ‘7월 패키지(July Package)’에 통화(환율) 정책이 포함되면서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원화 절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은 이미 ‘환율관찰대상국’에 올라 있는 만큼 미국이 이를 지렛대 삼아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27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요청에 따라 미 재무부와 기재부는 환율 문제를 별도로 논의하기로 했다. 통상 협의에 환율이 포함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가진 동행기자단 간담회에서 “무엇을 논의할지 미 재무부 내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 유력한 시나리오는 원화 절상 요구다. 미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1월 교역 규모가 큰 상위 20개국을 평가해 환율 보고서를 낸다. 평가 기준은 △150억달러 이상 대미 무역 흑자 △국내총생산(GDP) 3% 이상의 경상수지 흑자 △1년 중 9개월 이상 달러 순매수하고 그 금액이 GDP의 2% 이상 등 3가지다.
3가지에 해당하면 ‘환율조작국’, 2가지가 해당되면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는데 한국은 이미 지난해 11월 대미 무역 흑자와 경상수지 흑자 요건이 충족돼 환율관찰대상국에 오른 상태다. 늦어도 6월께 발표될 것으로 전망되는 올해 상반기 환율 보고서에서도 한국은 관찰대상국에 들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대미무역 흑자는 약 660억달러고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도 5.3%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미국 측이 이를 빌미로 원화 절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과거에도 환율관찰대상국 지정 이후 원화 가치가 급등한 사례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인 2016년 한국이 관찰대상국에 오른 뒤 원·달러 환율은 1207.7원(2016년 말)에서 1070.5원(2017년 말)으로 약 12.8% 절상됐다. 2004년 이후 13년 만에 최고 절상률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2기가 통화(환율) 정책을 관세 협상 의제에 올린 것은 ‘환율 전쟁’을 본격화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고질적인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1단계로 관세를 동원했다면, 2단계 무기는 환율이라는 관측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트럼프 관세 정책 청사진으로 꼽히는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의 ‘글로벌 무역 시스템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 보고서에서도 약달러를 통한 무역수지·재정적자 해소가 관세 전쟁 최종 목표로 명시돼 있다.
문제는 최근 미국 달러 가치가 크게 하락했지만 원화 절상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월 13일 109.87에서 지난 11일 99.404로 약 10.5% 하락했다. 반면 원·달러 환율은 같은 기간 1470.8원에서 1424.1원으로 3.28% 오르는 데 그쳤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원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췄다고 주장할 수 있는 빌미가 된다.
일각에서는 1985년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엔화 절상을 이끌어낸 ‘플라자 합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당시 엔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해 일본 수출 경쟁력이 약화됐고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경기 침체가 촉발되는 계기가 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관련 질문을 받고 “미국 재무부와 한국 기획재정부가 별도로 환율 정책을 협상하기로 한 것은 나쁘지 않은 뉴스”라며 “환율은 정치화되기 쉬워서 환율의 속성을 잘 아는 전문가끼리 논의하는 게 낫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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