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과 첫 교전 순간 살아남는 계획은 없다.’ 프로이센 군 총참모장을 지냈고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함께 독일 통일 주역인 헬무트 폰 몰트케의 전쟁 명언이다. 훗날 우리에게 친숙한 마이크 타이슨의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처맞기 전까진’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몰트케의 생각은 계획의 유연성을 강조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름다운’ 관세를 ‘거칠게’ 사용하고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로 당선됐으니 한국을 비롯한 외국 사정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다는 그의 태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트럼프의 발언을 보면 자국을 위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재정적자를 관세로 해결하겠다는 그의 구상이 자유무역 질서와 물가에 악영향을 준다는 지적은 후보 시절 때부터 제기돼왔다.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이라는 선전포고를 하면서 활짝 웃는 트럼프의 표정은 마치 향후 발생할 시나리오에 대비책이 마련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지난 11일 미국 관세국경보호국(CBP)이 일부 전자제품을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한 것은 트럼프의 ‘말 바꾸기’ 이미지를 한층 부각하는 계기가 됐다. 트럼프는 다른 관세 범주로 옮긴다고 해명했으나, 중국과의 관세전쟁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중국을 겨냥한 관세가 오히려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후 자국 자동차 회사를 위해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 면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또다시 말을 바꿨다. 미국 갑질의 배경인 기축통화 달러화 가치도 떨어졌다. 중국 공략 대신 당장 자국에 부메랑이 된다는 점도 예측하지 못한 셈이다. 트럼프 1기를 겪으며 견디는 법을 배운 중국에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이 먹혀들지도 않는다.
자신의 오락가락 행보를 “유연성”이라고 포장했지만, 관세 부과 전부터 예견된 일을 준비하지 않은 그를 보면 한 국가의 행정부를 맡을 전문성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 이 ‘양치기 소년’이 한반도 자유 진영을 위협하는 북한과 중국을 막기 위해 필수인 동맹국 수장이라는 점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김덕식 글로벌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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