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당구=유청소년 스포츠’ 인정
1990년대 중반, 한국 사회는 ‘응답하라 1994’로 상징되는 포켓볼 전성기를 경험했다. TV예능과 드라마, 각종 방송에서 당구대와 큐대는 하나의 문화적 코드처럼 등장했고, 젊은이들은 저마다 동네 당구장에 모여 실력을 겨뤘다. 포켓볼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당시 청년세대 열정과 문화를 대변하는 아이콘이었고, 스타 선수들이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 붐은 오래가지 못했다. 뜨거웠던 유행이 식어간 자리에 남은 것은 몇몇 선수들의 이름과 흐릿한 추억뿐이다. 그 사이 포켓볼은 미래 세대로 연결되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공백을 메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됐다.
유청소년 교육 공간 및 프로그램 여전히 부족
한국에서 청소년이 당구를 접하는 길은 언제나 순탄치 않았다. 오랜 기간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은 법으로 금지됐다. “학생이 무슨 당구를”이라는 부정적 시선이 뒤따랐다. 이런 제약을 뚫어낸 사건이 1993년 헌법재판소 결정이다.
헌재는 당시 결정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어떤 소년이 운동선수로 대성할 수 있는 재질로 출생하였고, 당구에 선천적으로 비상한 소질이 있어 그 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해 보고자 하는 경우, 다른 종류의 운동 지망생과의 관계에서 평등의 원칙이 문제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장차 당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경우라거나 세계선수권대회의 참가에 대비한다고 함과 같은 장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장애소년의 경우에는 장애자올림픽 대비를 위한 조기 발굴·조기 훈련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 결정은 청소년의 당구 참여를 제도적으로 열어주었고, 당구를 하나의 정식 스포츠로 인정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동시에 장애청소년까지 포함하는 포용적 관점을 제시하며, 당구의 사회적 지평을 넓힌 사건이었다.
필자가 유청소년 육성의 길을 걸어온 것도 이 결정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필자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당구의 길을 고집하며 선수로 성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제도적 벽 앞에서 늘 좌절감을 느끼곤 했다. 그때 헌재 결정이 제 앞의 길을 열어주었다. 오늘날까지 후배를 지도하는 길을 걸어온 원동력은 바로 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포켓볼은 진입 장벽이 낮고 접근성이 좋아 청소년이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큐스포츠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학생이 무슨 당구를”이라는 오래된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청소년이 마음 편히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하고,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나 지도자 양성 시스템도 아직 갈길이 멀다. 결국 많은 학생선수 출신들이 개인의 노력과 열정에만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 필요
반면 외국의 상황은 다르다. 미국 중국 대만 유럽 등은 이미 유소년 포켓볼 리그를 정착시켰다. 학교 체육 프로그램에 큐스포츠를 접목하는 사례도 많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경쟁과 협동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국제무대로 향할 발판을 마련한다.
한국은 여전히 출발선에 서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사람에 대한 투자를 시작한다면 늦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제도와 사회가 문을 열어주는 일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가능성 있는 학생선수 출신들이 등장하고 있다. 서서아 김혜림 송나경 서영원 등은 이미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알리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기간에 메달을 따는가가 아니다.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어 주는 것이 더 절실하다.
1993년 헌재 결정이 필자 개인에게 선수의 길을 열어주었듯 유소년, 학생선수 출신들에게 더 많은 문을 열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언젠가 이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우뚝 서는 날, 우리는 그간의 투자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당구가 지닌 가장 빛나는 색깔이 아닐까 싶다. [조필현 대한당구연맹 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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