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형주 체육공단 이사장 41년 전 쾌거 추억
8강전에서 최강 일본을 꺾은 뒤 금메달 확신
체육공단 업무도 ‘불굴의 도전’ 자세로 임해
“해마다 8월 10일이 오면 설렘으로 가득해집니다. 41년 전인 1984년 이날 LA 올림픽 유도 95kg급에서 우승했기 때문입니다. 결승에서 브라질의 더글러스 비에이라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최대 고비였던 8강전에서 일본의 미하라 마사토를 한판으로 제압하면서 우승을 확신했습니다. 물론 4강전 상대였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우승자인 서독의 군터 로이로이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만…”
하형주(63)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8월10일 휴가중인데도 필자와의 통화에서 한국 유도 사상 올림픽에서 안병근(63·용인대 교수)과 함께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그날의 감동을 되새기는 듯했다. 재작년 손주까지 본 초로(初老)의 연배인데도 하 이사장은 평소에도 LA 올림픽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이 밝아진다.


다음은 1984년 제23회 LA 올림픽 한국선수단 기수로 태극기를 들고 개회식에 입장해 한국 유도의 새 역사를 썼던 하 이사장과의 인터뷰 내용.
- 1936년 8월 9일(손기정)과 1992년 8월 9일(황영조)은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땄는데 8월 10일은 하 이사장이 1984년 LA 올림픽 유도에서 우승해 온 국민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날입니다.
“한국 유도는 1972년 뮌헨 올림픽(오승립)과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장은경)에서 은메달을 땄으나 숙원이었던 금메달은 따지 못해 각오가 더욱 새로웠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 한국이 불참해 나가지 못했습니다만 1984년 LA 올림픽은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여서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올림픽 등 국제유도대회에서 번번이 일본의 장벽에 막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만…
“저는 국제대회에서 일본 선수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19세 때인 1981년 아시아 유도선수권대회(인도네시아 자카르타) 95kg급에서 은메달에 머물렀으나 무제한급 결승에서 100kg이 넘는 일본 선수를 꺾고 우승했으니까요. LA 올림픽 때에도 8강전에서 미하라를 만나 들어메치기 절반 2개로 한판승을 거두고 4강전에 올랐습니다. 일본 선수를 누르고 나니 자신감이 배가돼 4강전과 결승전을 무난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한국스포츠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까지는 세계 15위권 밖에서 맴돌았으나 1984년 LA 올림픽부터 하형주 안병근의 우승으로 첫 종합 10위에 올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종합 12위)을 제외하고는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종합 10위 이내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는 하형주 안병근 외에 레슬링의 유인탁 김원기, 복싱의 신준섭, 양궁의 서향순 등 모두 6명이 금메달을 따 국위를 선양했다.


- 작년 11월 제14대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9개월째 체육공단을 이끌고 있는데…
“1600여 임직원들과 함께 한국 체육의 위상 제고를 위해 선수 시절의 ‘도전 정신’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 스포츠 환경 조성과 스포츠 복지 수준의 업그레이드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지난 2월부터는 은퇴한 체육인들의 직업 안정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오는 10월에는 2025 올림픽 레거시(유산) 포럼 및 스마트 시티 & 스포츠 서밋을 사흘간 올림픽공원 등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체육공단은 2025 스포츠 서밋 행사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세계올림픽도시연합(WUOC), 서울시 등 50개 역대 동·하계 올림픽 개최 도시 관계자 등 350여 명에게 서울올림픽 레거시의 우수성을 전파할 계획이다.


이종세(대한언론인회 부회장·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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