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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선택한 스파운…US오픈 우승 동화 주인공 [US오픈 라이브]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정상 올라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언더파
18번홀서 버디 기록한 뒤 눈물
경기 중단 때 분위기 반전 성공
옷까지 갈아 입고 나와 버디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결과
역사에 이름 남겨 자랑스럽다”

  • 임정우
  • 기사입력:2025.06.17 04:33:00
  • 최종수정:2025-06-17 09: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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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메이저 대회 정상 올라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언더파
18번홀서 버디 기록한 뒤 눈물
경기 중단 때 분위기 반전 성공
옷까지 갈아 입고 나와 버디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결과
역사에 이름 남겨 자랑스럽다”
제125회 US오픈 정상에 오른 J.J. 스파운이 오른손을 불끈 쥐며 포효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제125회 US오픈 정상에 오른 J.J. 스파운이 오른손을 불끈 쥐며 포효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언더독이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워 승리하는 동화 같은 결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빗소리 밖에 들리지 않던 오크몬트 컨트리클럽 18번홀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든 한 남자가 눈물을 훔치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J.J. 스파운(미국)이 제125회 US오픈 우승을 확정한 뒤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많은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도 18번홀을 가득 메우고 있던 관중들은 잠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있던 스파운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 때 정신을 차린 그는 그린 주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 두 딸을 보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 첫째 딸 바이올렛이 “아빠가 오늘 1등 한거야”라고 묻자 스파운은 고개를 그떡이며 답을 대신했다.

스파운은 16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 인근의 오크모트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1언더파를 기록했다. 합계 1언더파 279타를 적어낸 그는 단독 2위 로버트 매킨타이어(스코틀랜드)를 2타 차로 따돌리고 US오픈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선두에 1타 뒤진 공동 2위로 이날 경기를 시작한 스파운은 6번홀까지 5타를 잃으며 우승 경쟁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특히 파4 2번홀에서는 정확하게 날아갔던 두 번째 샷이 핀을 맞고 그린을 벗어나는 불운까지 겹치며 승리의 여신이 그를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포기란 없었다. 12번홀과 14번홀 버디를 잡아내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마지막 두 개 홀에서는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314야드의 파4 17번홀에서 왼온에 성공한 뒤 가볍게 1타를 줄인 그는 18번홀에서 약 20m 거리에서 버디 퍼트를 집어넣으며 치열했던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스파운은 “아버지의 날인 오늘 두 딸이 보는 앞에서 우승을 차지해 더욱 의미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TV로만 보던 US오픈 역사에 내 이름을 남겼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에 선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번 대회 정상에 오른 비결로는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인내하고 버틴 것을 꼽았다. 그는 “작년 6월까지만 해도 PGA 투어 출전권 확보를 걱정해야하는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하다보니 메이저를 제패하는 날이 오게 됐다.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이 나를 보고 힘을 얻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상 악화로 인해 최종일 경기가 1시간 30분 가량 중단된 것도 스파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는 “전반에 스윙 등이 흔들리면서 부담감이 상당했는데 경기가 중단됐던 시간에 몇 가지 변화를 가져간 분위기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옷까지 갈아 입었는데 이번 우승을 차지하는 데 하늘도 도와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필리핀·멕시코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스파운. 임신 8개월차까지 골프를 즐겼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자랑했다. 그러나 프로 골퍼를 꿈꾸는 다른 선수들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전문 지도자들에게 지도를 받지 않고 미국골프주니어협회(AJGA) 주관 대회 등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양한 기술을 연마했고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에 진학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경쟁에 나섰다.

2013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3부 격인 PGA 투어 캐나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스파운은 2015년 콘페리투어를 통해 꿈의 무대 출전권을 따냈다. 4년의 도전 끝에 PGA 투어를 누비게 된 그는 2016~2017시즌과 2017~208시즌에는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진단 받은 당뇨로 인해 정상적인 기량을 발휘했지 못했고 2019~2020시즌 페덱스컵 랭킹 125위 안에 들지 못하며 PGA 투어 출전권을 잃을 뻔 했다. 스파운이 본격적으로 PGA 투어에서 이름을 알려나가기 시작한 건 당뇨를 극복한 뒤 발레로 텍사스 오픈 정상에 올랐던 2021~2022시즌이다. 앞서 받았던 오진과 다르게 현재 몸 상태에 필요한 약 등을 처방받은 그는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해 PGA 투어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거듭났다.

그는 “당뇨도 유형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다른데 오진으로 인해 지난 3년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다행히 지금은 꾸준한 관리에 식단까지 더해져 가장 이상적인 몸무게인 79kg을 만들었다. 과거와 다르게 햄버거, 쉐이크 등을 맛있는 음식들을 멀리하고 있지만 허리 사이즈가 38에서 34사이즈로 줄어 정말 행복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스파운의 최종 성적이 1언더파 279타로 확정되면서 US오픈을 주관하는 미국골프협회(USGA)와 오크몬트 컨트리클럽이 목표로 설정했던 오버파 우승자는 나오지 않게 됐다. 전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골프장이라고 불리는 오크몬트 컨트리클럽은 이번 대회 기간 내내 톱골퍼들에게 악몽을 선사했다.

1오버파 281타를 기록한 로버트 매킨타이어(스코틀랜드)가 단독 2위에 자리했고 빅토르 호블란(노르웨이)이 2오버파 282타 단독 3위로 뒤를 이었다. 스코티 셰플러(미국)는 4오버파 284타 공동 8위로 이번 대회를 마무리했다.

오크몬트 임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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