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불황에 빠진 용품업계가 탈출 해법으로 틈새 시장을 찾아 나섰다. 제로 토크 퍼터를 비롯해 미니 드라이버, 가볍고 비거리 증가를 도와주는 프리미엄 샤프트 등 기존 클럽 구성에 ‘추가 구매’할 수 있는 시장이 성장 중이다.

‘틈새 시장’. 이미 성숙단계에 접어든 거대 시장과는 달리 아직 수요가 충분히 창출되지 않아 경쟁이 덜한 미개척 시장을 의미한다. 마치 거대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 잡은 스마트 워치의 등장과 같다. 기존의 제품을 갖고 있더라도, 하나를 더 구매할 수 있는 새영역. 기존의 소비자들을 지키며 지갑을 한 번 더 열게 하는 ‘틈새 시장’이다.
올해 한국 골프용품 시장은 그야말로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엄청난 양의 신제품이 판매된 이후 갑자기 찾아온 빙하기. 용품업계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3년간 시장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올해가 가장 어려운 시기인 3년 차다.
다양한 국내 경제·정치 상황과 맞물려 가계경제가 위축되니 골프 등 레저 비용을 먼저 줄이고 있다”라고 상황을 설명한 뒤 “올해 목표는 매출 목표를 맞추는 것보다, ‘생존’을 먼저 생각하고 긴축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일단 소비자들의 심리가 회복되는 시기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기존 제품을 교체하고 성능이 업그레이드된 새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기존 클럽 구성에 ‘추가’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
대표적인 ‘틈새 제품’은 바로 ‘제로 토크 퍼터’다. 김아림, 김효주, 안병훈 등 많은 프로 골퍼들이 제로 토크 퍼터로 바꾸고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그 모습을 본 골퍼들도 제로 토크 퍼터를 찾기 시작했다. 이미 블레이드 퍼터와 말렛형 퍼터를 갖고 있어도 골퍼들은 제로 토크 퍼터를 ‘신제품’, 혹은 ‘신세계’로 불리는 새로운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구매에 나섰다.
불황 탈출을 위한 틈새 시장 전쟁. 제로 토크 퍼터의 성공처럼 많은 영역에서 ‘전에 없던 아이템’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미니 드라이버’ 하나 사볼까
기존의 드라이버와 우드, 유틸리티, 아이언, 웨지 구성은 모든 골퍼에게 동일하다. 그래서 ‘틈새’를 찾았다. 드라이버와 우드 사이 ‘미니 드라이버’다.
지난해 6월 30일.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비즈플레이·원더클럽 오픈 최종일. ‘야생마’로 불리는 허인회는 장유빈과 18번 홀(파5)에서 치른 연장 1차전 중 페어웨이에서 두 번째 샷을 앞두고 낯선 클럽을 하나 꺼내 들었다. 드라이버 같지만 조금 작고, 3번 우드라고 하기에는 좀 큰 클럽. 바로 ‘미니 드라이버’였다. 그리고 허인회는 파5홀에서 2온에 성공시킨 뒤 버디까지 잡아냈다. 이 샷은 KPGA투어 ‘올해의 샷’으로 꼽힐 만큼 팬들의 마음을 흔들어놨다.
일반 드라이버 헤드(460cc)보다 확연히 작은 헤드(300~340cc)를 가진 미니 드라이버는 최근 허인회, 제이크 냅 등 국내외 유명 프로가 이를 사용해 좋은 성적을 거두며 아마추어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고, 미니 드라이버를 한번 사용해 보려는 골퍼들이 증가했다. 드라이버샷이 불안하거나 과감한 공격 골프를 즐기는 골퍼들이 대상이다. 샤프트 길이도 43.5인치로, 일반 드라이버에 비해 2인치가량 짧아 부담감도 적다.
새롭게 생긴 ‘신대륙’. 이를 놓칠 리 없다. ‘허인회의 미니 드라이버’로 주목받은 캘러웨이 Ai Smoke Ti 340 미니 드라이버는 올해 ‘엘리트’ 모델로 돌아왔다. 공기역학적 헤드 디자인을 통해 스윙 시 공기저항을 줄여 헤드 스피드 증가에 도움을 준다. 헤드에는 우주항공 산업용 고강도 카본 소재인 ‘서모포지드 카본 크라운’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헤드 무게를 줄이면서도 내구성을 유지하고, 여유 무게는 저중심 설계를 위해 재배치할 수 있었다. 또 캘러웨이의 최신 Ai 기술이 적용된 Ai 10x 페이스를 탑재했고, 이전에는 없었던 조정 가능한 무게추도 새롭게 달았다.새로운 시장이 열렸고 올해 대부분의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미니 드라이버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미니 드라이버’ 열풍에 타이틀리스트도 합세했다.
헤드 크기가 280cc라는 것에서 유래된 GT280 미니 드라이버는 드라이버의 비거리와 페어웨이 우드의 컨트롤을 하나로 결합한 클럽이다. 비거리와 관용성은 유지하면서 보다 유연한 컨트롤 성능을 제공한다.
GT 드라이버에 적용된 ‘심리스 서모폼 크라운’을 채택해 무게를 효과적으로 절감하고, 무게중심 배치의 효율을 극대화했다. 또 정밀하게 조정된 음향 특성을 통해 타이틀리스트 특유의 안정적인 타구음과 타구감을 구현했다. 특히 GT4 드라이버와 똑같이 앞뒤 무게 조절 기능을 적용해 구질과 스핀을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조시 탤기 타이틀리스트 골프 클럽 마케팅 부사장은 “드라이버보다 짧은 샤프트와 유연한 헤드 설계로 정교한 티샷이 필요한 홀에서 효과적인 동시에 페어웨이 또는 러프에서도 안정적인 볼 콘택트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라고 말했다.
미니 드라이버 원조 격인 테일러메이드는 ‘r7 Quad 미니 드라이버’로 승부를 던졌다. 테일러메이드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이버 중 하나인 r7에서 영감을 받아 r7의 감성과 현대적인 디자인을 접목시켜 만든 제품이다.
새틴 마감의 인피니티 카본 크라운을 채용해 무게 절감을 통한 최적의 무게 배분은 물론 시각적으로도 깔끔하고 세련된 헤드 디자인을 만들었다. 성능적으로는 이동식 웨이트 설계를 통한 셀프 피팅이 가능하고, 투어에서 입증된 트위스트 페이스(Twist Face)와 관통형 스피드 포켓(Thru-Slot Speed Pocket™) 기술을 모두 담았다. 그야말로 크기만 작아진 드라이버, 즉 ‘미니 드라이버’다.
PXG도 ‘시크릿 웨폰’을 선보이며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PXG에서 출시한 시크릿 웨폰은 300cc의 헤드 크기로 460cc의 드라이버보다 작고, 140~180cc 내외의 페어웨이 우드보다 크다. PXG 블랙옵스 우드와 마찬가지로 티타늄과 고강도 복합 소재의 유사한 조합으로 제작했다. 페이스에는 더 얇고 단단한 티타늄을 사용해 중앙에서 벗어난 타격 샷에서도 볼 스피드 손실을 최대한 방지한다.



새 샤프트로 튜닝해볼까
드라이버 샤프트는 자동차로 비유하면 ‘엔진’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다양한 샤프트의 성질과 골퍼가 잘 맞으면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 샤프트만 잘 바꿔도 비거리가 10m 이상 늘어난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맞춤형 샤프트 시장은 이미 존재한다. 300야드는 쉽게 날리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선수들이 사용하는 브랜드가 주축이 됐다. 하지만 이제 아마추어 골퍼들도 잘 안다.
자신의 스윙 스피드와 골프 스타일에 맞는 제품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 틈을 파고드는 브랜드들이 늘고 있다. 핵심은 ‘가볍게’, ‘강하게’, ‘편하게’다.
전 세계적으로 샤프트 시장 규모는 성장 중이다. 미국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는 2032년까지 전 세계 샤프트 시장 규모가 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샤프트 시장 규모는 약 120억 원. 열정 골퍼들이 많아 성장할 가능성이 어느 나라보다 높다.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으는 제품은 ‘김효주 샤프트’로 소문난 요넥스 카이자 라이트(KAIZA LIGHT) 샤프트다. 비거리와 방향성에 고민하는 골퍼를 위한 핵심 메시지를 다 담았다. 일단 무게가 39g밖에 되지 않는다. 가벼워서 편안하게 휘두를 수 있다. 그런데 강도도 강하다.
일반적으로 레귤러(R), 스티프(S) 등을 사용하는데 카이자 라이트 샤프트는 X 강도다. 가벼운데 강도까지 강하니 빠른 스윙에도 잘 버틴다. 김효주는 카이자 라이트 샤프트로 바꾸고 230m였던 비거리가 235~241m까지 나왔고 볼 스피드 역시 62m/s에서 64m/s로 늘어났다. 부활의 비결이다.
김효주는 “보통 샤프트가 가벼우면 스윙 시 클럽이 휘청 거리거나 잘 따라오지 못한다. 그만큼 가벼운 샤프트는 스펙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카이자라이트 샤프트는 39g에 불과한데도 강도가 X 스펙인 점이 신세계다. 샤프트가 가벼워 헤드 스피드가 빨라지는데, 드라이버 컨트롤이 수월했다. 테스트 때 볼 스피드와 비거리가 증가하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라고 설명했다.
2G-Namd FLEX FORCE(Namd) 기술은 카본 섬유 사이에 특수 나노수지를 도입해 결합력을 강화했다. 또 얇은 카본 시트를 다층 구조로 감는 ‘울트라 신 멀티 레이어드 그라파이트’ 공법을 통해 샤프트의 무게를 확 줄이고, 강도는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요넥스의 독자적인 나노 기술을 적용한 경량·고탄성 소재인 나노메트릭 DR을 적용해 얇고 가벼우면서 동시에 20%나 높은 탄성률을 갖추게 되면서 볼 스피드가 빨라지고 비거리 향상을 도와준다.
최근 관심을 모으는 샤프트는 또 있다. 세계 최고 카본 기술을 갖춘 스위스 NTPT사가 만든 ‘TPT 샤프트’다. NTPT사의 기술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단 ‘억’소리 나는 리차드 밀 시계의 몸통이 바로 NTPT사의 작품이다. 인공위성이나 우주항공, 요트 등 가볍고 강한 소재가 필요한 곳에는 언제나 NTPT사의 카본 제품이 적용됐다.
최첨단 카본 기술을 적용해 골프 샤프트를 만들었다. ‘TPT 샤프트’다. TPT라는 이름 속에 샤프트의 특징이 들어있다. ‘Thin-Ply Technology’의 약자로 ‘얇은 본 섬유를 감는 기술’이라는 의미다. 특히 여러 장의 카본 시트를 겹쳐서 만드는 제품이 아니라 얇은 카본 시트 한장을 감아서 만든다. 당연히 미세하게 차이를 만드는 ‘스파인’도 없다. 또 최첨단 기계와 로봇으로만 생산해 사람이 만들면서 생기는 불량도 없다. LO(낮은 탄도), HI(높은 탄도)로 구분된 점도 직관적이다.
TPT 샤프트는 지난해 제이슨 데이(호주)의 부활을 이끌었다. 또 브룩 헨더슨, 루커스 글로버 등이 사용하고 국내 선수 중에서는 장타자 정찬민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개막전 챔피언인 박보겸은 TPT 샤프트로 교체하고 우승까지 일궈냈다. 지난해까지 박보겸의 페어웨이 적중률은 70.98%로 투어 47위. 하지만 개막전에서는 평균 80.35%로 크게 뛰어올랐다. 티샷 정확도가 높아진 덕에 박보겸은 두 번째 샷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 최근에는 ‘베테랑’ 박지영도 TPT 샤프트로 교체하고 시즌 첫 우승을 노리고 있다.

사실 가볍고, 편하고, 치기 쉬운 샤프트의 원조는 오토플렉스다. ‘마법의 샤프트’로 불리는 오토플렉스는 한때 골프계에서 가장 큰 화제를 만들어냈다. 기존의 강도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플렉스’를 도입했고 결과도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흔들리지만 묘하게도 임팩트 순간엔 정확 하게 볼을 때릴 수 있어 ‘미스터리 샤프트’로 관심을 모았다. 부드러운데 빠른 스윙에도 밀림이나 흔들림이 없다.
‘골프 전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리 트레비노는 한국 프리미엄 샤프트인 ‘오토플렉스’ 마니아다. 후원 계약 없이 오토플렉스 샤프트에 매료돼 계속 사용 중이다. 지난해 PGA 쇼에서는 ‘드림7’을 쳐본 뒤 “힘이 빠졌는데도 너무 잘 맞고 잘 치게 된다. 정말 대단한 기술”이라고 극찬한뒤 “샤프트를 못 팔면 얘기해라. 내가 다 팔아주겠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어떤 공정으로 만들었는지도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다. 마치 레시피를 꼭꼭 숨긴 코카콜라와 같다. 박건율 회장은 “오토플렉스는 소재의 융합과 배합이 핵심 기술이다. 소재도 공정도 특허를 내지 않는 것은 다른 업체에서노하우를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올해에는 남자 투어프로들도 사용할 수 있는 오리지널 버전인 ‘오토 파워’ 신제품을 선보였다. 부드럽고 편안한 프리미엄 오토플렉스에 프로골프 투어에서도 쓸 수 있는 강한 오토파워까지 모든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불황의 시기, 골프용품업계는 ‘틈새 시장’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기존 제품을 교체하는 것이 아닌, 추가 구매를 유도할 수 있는 미니 드라이버와 프리미엄 샤프트 등이 그 중심에 서 있다. 골퍼들의 지갑을 한 번 더 열게 하는 이 전략이 불황 속 골프 용품업계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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