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곰'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PGA 내셔널리조트 챔피언스코스 15번홀 입구에는 곰 형상과 함께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그 유명한 '베어트랩'의 시작이다. 그린이 벙커와 워터 해저드에 둘러싸여 있어 정밀하지 못한 티샷은 골퍼들의 희망을 산산조각 낸다.
베어트랩뿐만이 아니다. 오거스타 내셔널GC의 '아멘 코너', 이니스브룩의 '스네이크 핏(뱀 구덩이)', 퀘일할로 골프클럽의 '그린 마일(사형장 가는 길)' 등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특급 대회를 개최하는 골프장들은 톱골퍼들의 멘탈과 기량을 동시에 시험할 수 있는 '마의 홀'을 갖고 있다.
'한국의 마스터스' GS칼텍스 매경오픈이 열리는 명문 회원제 골프장 남서울CC에도 '남서울 마의 홀'이 있다. 마지막 16번홀부터 이어지는 3개 홀에서 우승자의 얼굴이 뒤바뀐다. 올해 남서울CC는 최고의 코스 관리와 함께 따뜻한 날씨까지 이어져 '진정한 골프 전쟁터'로 변신할 준비를 마쳤다.

첫 관문인 16번홀은 '한국남자골프 최고난도 홀'이다.
지난해 나흘간 버디 8개, 그린적중률 단 19.38%, 평균타수 4.55타가 기록됐다. 지난해 열린 한국남자골프 경기에서 '최고난도 홀'과 '최소 버디 기록 홀'을 모두 차지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을 뜻하는 '로드홀'이라는 별명이 붙은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17번홀에 빗대 '남서울 로드홀'로도 불린다.
원래 파5홀로 운영되지만 대회 기간만 파4홀로 바뀌는 16번홀은 '한국의 마의 홀'로 항상 손꼽히는 곳이다. 2017년 파4홀로 첫 대회를 치른 이후 '어려운 홀' 부문에서 2위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2017년 평균타수는 무려 4.69타를 기록했고, 2018년에는 4.76타로 높아졌다. 이후 2019년 4.73타, 2021년 4.68타, 2022년 4.58타, 2023년에는 4.54타로 선수들의 혼을 쏙 빼놨다. 작년에는 대회 기간에 비가 내리며 평균타수가 4.55타로 기록됐지만 선수들은 "그린이 부드러워져 그나마 칠 만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국내외 톱골퍼들이 16번홀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전장이 길고 페어웨이가 좁아서다. 티잉 구역에서 페어웨이를 바라보면 넓고 깊은 벙커 2개가 보인다. 벙커에 공이 들어가면 2m 높이를 넘기는 벙커샷을 해야 하는 만큼 선수들이 티샷하기 전 느끼는 부담감이 상당하다.
드라이버를 잡고 장타를 날려 벙커를 직접 넘기거나 아예 우드를 잡고 벙커에 빠지지 않도록 짧게 쳐야 한다.
페어웨이에서 두 번째 샷을 해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작년 그린적중률이 19.38%밖에 되지 않았다. 5명 중 단 1명만 2온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또 그린이 빠르고 단단하고 경사까지 심해 파를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2023년 '장타자' 정찬민은 티샷으로 공포의 벙커를 훌쩍 넘겨 타수를 잃지 않으며 우승에 성공했고, 2024년 김홍택도 나흘간 이 홀에서 단 1타도 잃지 않아 우승할 수 있었다.

작년 나흘간 버디는 40개 나왔지만 보기가 81개, 더블보기가 4개나 나오며 막판에 선수들의 순위를 끌어내렸다. 평균퍼트수도 1.9개나 되고 평균타수도 3.12타를 기록했다. 특히 내리막이 35m에 달하고 티잉 구역과 그린 근처의 바람이 달라 선수들도 곤혹스러워한다.

특히 남서울CC의 역사가 이 홀을 더 어렵게 만든다. 티잉그라운드 왼쪽에 자리 잡은 큰 나무가 점점 자라며 시야를 가린다. 오른손잡이 골퍼 기존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페이드 구질'로는 절대 티샷을 할 수가 없다. 이 홀을 위해 선수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드로 구질 연습을 따로 하기도 한다.
물론 가장 주목받는 건 유리판 그린이다. 남서울CC에서 올해 대회 최고 그린 스피드 4m를 예고한 만큼 선수들은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 물론 모든 선수가 최고의 그린 상태가 반가운 것은 아니다. 경사가 심하고 빠른 그린으로 '유리판'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서울CC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더 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연습할 때부터 '남서울 공략법'을 되뇐다. 바로 '내리막 퍼팅은 절대로 남기지 말아라'다. 남서울CC의 그린은 울퉁불퉁 굽이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크기가 작고 경사는 꽤 급한 편이다. 그리고 경사는 거의 모든 홀이 페어웨이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따라서 핀보다 길게 친 샷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온그린하지 못하더라도 핀보다 짧은 것이 낫다.
김비오, 박상현, 이태희, 허인회 등 역대 우승자들은 "남서울CC에서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완벽한 기회가 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면서 "욕심을 부리는 순간 타수를 잃는 골프장이 남서울CC다. 올해도 인내심이 강한 선수가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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