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힘든데 매출 타격
고가품 대리구매 결제 유도
알고보니 판매자와 공범
현행법상 통신사기 미해당
피해금액 환급 못받아 막막
![6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위치한 식당에 가격표가 붙어 있다. . 2025.5.6 [사진 = 뉴스1]](https://wimg.mk.co.kr/news/cms/202506/10/rcv.NEWS1.NEWS1.20250506.2025-05-06T151129_1007272264_SOCIETY_I_P1.jpg)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달 8일 평소처럼 단체 예약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가수 남진 소속사 직원이라고 밝힌 남성은 “모레 저녁 남진 선생님을 포함해 20명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업주에게 준비 상황을 확인하며 사칭범은 “고가의 주류도 대신 준비해달라. 식사 당일 오전에 결제하겠다”고 했다. 업주가 특정 계좌로 470만원을 입금하자 예약자는 ‘일이 생겨서 회식을 취소한다’는 문자 메시지만 남긴 뒤 연락이 끊겼다.
이같은 ‘사칭 노쇼(예약부도)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입법 미비로 인해 피해자들의 손해가 복구될 길이 없어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계좌 지급정지 등을 통해 피해금액을 묶어둘 수 있는 보이스피싱과 달리 노쇼 사기의 경우 사기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를 할 수 없다는 현행법의 헛점이 알려지면서 사기범들이 마음껏 활개치고 있는 실정이다.
10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발생한 사칭 노쇼 사기는 총 537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461건(85.8%)이 지난해 12월부터 단 4개월간 발생했다.

사칭 노쇼 사기는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에게 대규모 예약을 문의하며 시작된다. 사기 일당은 특정 업체를 통해 고가의 물품을 대신 구매해 주면 나중에 한번에 결제하겠다고 약속한다. 이후 피해자가 대리 구매대금을 ‘사기계좌’에 입금하는 순간 잠적한다. 일당은 피해자들이 입금을 망설이거나 의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칭 대상의 공문을 위조하는 등 치밀한 모습도 보인다.
노쇼 사기 일당은 불경기에 허덕이는 자영업자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C씨는 “모 방송국 직원이라며 촬영차 방문할 예정인데 특정 업체에서 고급 와인 수백만 원어치를 미리 구매해 놓으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예약금을 요구하니 연락을 끊었다. 안 그래도 매출이 줄어 걱정인데 사기라도 당했으면 가게를 접어야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노쇼 사기는 해외 발 전화 기반의 비대면 범죄라는 점에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와 유사하지만, 현행법상 보이스피싱으로 분류되지 않고 일반 사기 범죄로 취급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시행된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기이용계좌의 지급정지 조치와 피해금 환급 절차를 규정하고 있지만 노쇼 사기는 이 같은 조치를 기대하기 어려워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노쇼 사기 피해자가 은행에 사기범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해도 은행은 ‘보이스피싱이 아니라 해당 제도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안내하고 있다. 피해금 회수는커녕 계좌 동결조차 여의치 않은 현실에 피해자들은 무력감을 호소한다.
노쇼 사기 일당은 범행에 활용된 계좌가 쉽게 동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고 사칭 대상을 무차별 확대하고 있다. 최근 노쇼 사기 범죄는 사칭 대상을 기존 군인·정치인 등에 한정하지 않고 대학 교직원, 공공기관 근무자 등으로 넓히고 있다.
경찰의 대응 역시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지난해 보이스피싱 등에 대응하기 위해 피싱범죄 전담조직을 신설했지만, 노쇼 사기는 별도의 전담 조직 없이 강원경찰청 형사기동대 피싱범죄수사계가 주로 맡고 있다. 노쇼 사기 발생 초기에 군인 사칭 사례가 많았다는 이유로 도내에 군인이 많은 강원청이 해당 업무를 맡았다. 때문에 범행 수법의 진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노쇼 사기 피해 보전을 위해 법 적용 범위에 대한 유연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더불어, 수사력 강화도 주문하고 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빠르게 의심 계좌를 동결하는 게 중요하다”며 “사칭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는 만큼 전담 수사 인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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