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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왕 만든 3가지 비결은 '메모·공부·호기심'

특허청 전문심사관으로 변신한 대기업 특허 달인들
신현억·김진석·양중환 씨
삼성·LG서 30여년 근무
반도체 특수공정 장비 등
3인 특허 출원만 1000건
중국업체 스카우트도 거절
"내 조국·기업 지켜야죠"

  • 최원석
  • 기사입력:2025.05.13 17:31:47
  • 최종수정:2025-05-13 19: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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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특허청 전문심사관, 신현억 전문심사관, 양중환 전문심사관(왼쪽부터)은 30년 넘게 삼성과 LG에서 디스플레이를 연구하면서 수백 건의 특허를 낸 달인들이다. 한주형 기자
김진석 특허청 전문심사관, 신현억 전문심사관, 양중환 전문심사관(왼쪽부터)은 30년 넘게 삼성과 LG에서 디스플레이를 연구하면서 수백 건의 특허를 낸 달인들이다. 한주형 기자
신현억 특허청 전문심사관(59)은 휴대전화 메모 앱을 열어 대용량 파일 하나를 보여줬다. 직접 손으로 그리고 색칠까지 한 그림과 함께 전문용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메모는 끝없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쌓아온 '나만의 보물창고'라고 소개하는 그의 표정은, 멋진 모험을 떠나는 아이 같았다.

발명의 날 60주년(19일)을 앞두고 '평생을 특허에 바친 사람들'을 만났다. 각각 대기업에서 30년 넘게 연구개발에 매진해 수백 건의 특허를 내고, 퇴직 이후 인생 2막은 특허청에서 전문심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신 심사관과 김진석 심사관(57)은 삼성디스플레이에 오래 재직했고, 양중환 심사관(58)은 LG디스플레이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나 폴더블폰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 기술 등을 개발했다.

세 사람이 보유한 특허를 합치면 1000건에 달한다. 재직 시 각종 기술상과 특허상을 휩쓸며 '발명왕'이라 불린 특허의 달인들이다. 매경 인터뷰를 위해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오래 사귄 동료처럼 '척하면 착' 단어 하나로 다 통했다. 양 심사관은 "여기 다 똑같다. 선수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다"며 웃었다.

신 심사관이 삼성을 다닐 적 별명은 '아이디어맨'이었다. 30년간 회사를 다니며 자신이 대표로 출원한 특허만 630건이고, 공동특허까지 포함하면 1000건이 넘는다. 아이디어맨이 된 비결을 묻자 신 심사관은 "끊임없이 메모한다"고 답했다. 그는 "아이디어의 70%는 책상 밖에서 떠오른다. 산책할 때, 버스 탈 때, 샤워할 때 등 언제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메모할 준비를 한다"고 했다.

발명왕이 되는 방법으로 달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메모를 강조했다. 세 사람 모두 인터뷰 내내 자신의 노트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었다. 양 심사관은 "고등학생 때 교련 선생님이 책을 100권 주면서 읽고 메모하라고 시켰는데 그때부터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지금도 무언가를 읽을 때면 항상 옆에 펜과 종이를 둔다.

또 다른 비결은 호기심이다. 김 심사관은 "현상과 기술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메커니즘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며 "머릿속에서 이미지화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디스플레이 적층 구조에 관한 특허를 낼 때 거절의견서를 받은 적이 있는데, 머릿속에서 3D로 그림을 그리니 해결책이 보였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오랜 고민과 갖은 고생 끝에 특허가 나오지만, 수백 건의 특허를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양산화돼 제품으로 나온 특허들은 절대 잊을 수 없다. 김 심사관은 1999년 웨이퍼에서 부산물을 제거하는 반도체 공정 장비를 개발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당시 미국에서 공급받던 장비를 국산화한 것이다. 김 심사관은 당시 소식을 보도한 매일경제신문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에도 매일경제를 챙겨 읽었는데, 마침 아내가 코팅까지 해서 갖고 있더라"며 웃었다.

양 심사관은 "특허가 양산될 때는 마치 자식을 낳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OLED TV에 사용되는 형광 블루 발광 재료를 개발하고 양산화하기까지의 과정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는 "양산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회의를 당시 구미에서 했는데, 콘클라베를 보는 기분이었다"며 "양산이 결정됐을 때는 팀원들과 함께 울었다"고 했다.

발명왕으로 살았던 이들은 이제 특허청 심사관으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중국 업체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조금의 고민도 없었다고 했다. 김 심사관은 "삼성에 청춘을 바쳤는데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양 심사관도 "지금 디스플레이 시장은 한중 간 경쟁이 격화된 상황인데 동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발명왕들도 특허청에서는 아직 신입이다. 임용된 지 1년도 안 된 이들은 지도심사관에게 심사를 배우고 있다. 지난해 8월 임용돼 심사관으로서는 가장 선배인 김 심사관은 "지도심사관의 실력이 뛰어나다"며 혀를 내둘렀다. 평생 연구개발을 한 덕에 기술을 빨리 이해하지만, 아직 특허와 변리사의 언어가 낯설다. 그는 "한국 심사관들이 다른 나라보다 근거 레퍼런스를 세세하게 기록한다"며 "선배들이 만든 전통인 만큼 누가 되지 않도록 잘해야겠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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