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빌리어드뉴스 MK빌리어드뉴스 로고

鄭 "北, 美타격 3대 국가…냉정히 인정해야"

정동영, 독일서 돌출발언 파장
북한 핵미사일 사실상 용인
현실론 강조하며 파격메시지
일각 북한 비핵화 혼선 우려
北외무성 "핵 결코 포기안해"
유엔서 비핵화 불가 재확인

  • 김성훈/임성현
  • 기사입력:2025.09.30 18:02:13
  • 최종수정:2025-09-30 23:34:33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9일 독일 베를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같은 날 미국 뉴욕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  AFP연합뉴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9일 독일 베를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같은 날 미국 뉴욕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 AFP연합뉴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9일(현지시간)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의 하나가 돼버렸다"면서 "냉정하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장관이 언급한 3대 국가는 북한 외에 중국, 러시아를 뜻한다.

정 장관은 이날 독일 베를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북한이 스스로 전략국가라고 말하는데, 전략적 위치가 달라졌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비핵화를 전제로 한 미·북 대화가 열렸던) 7년 전 위치와는 다르다. 일단 그 현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 장관은 북한의 진전된 핵·미사일 능력을 인정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대북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논란이 예상된다. 북한의 핵 위협이 급격하게 고도화하는 상황에 기반한 '현실론'으로도 읽히지만, 통일부 장관으로서의 돌출 발언들이 대통령실·외교부 등과 조율되지 않아 대북 정책에 혼선을 가져온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 비핵화 논의가 후순위로 비칠 수도 있다.

정 장관은 2019년 미국과 북한의 '하노이 노딜'로 인해 북핵 문제의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때만 해도 북한이 미국에 매달리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회담 결렬 직후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현 외무상)이 '미국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고 했던 것을 거론하며 "그 말이 불행하게도 맞았다. 스몰딜이 성사됐더라면 핵 문제 전개 과정은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의 실수를 주장하는 북한 입장을 재확인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 장관은 간담회에서 "북·미 관계를 통해 안보 대 안보를 교환한다면 미국은 지원하거나 돈을 낼 생각이 전혀 없지 않냐"며 결국 한국이 한반도 평화 구축에 핵심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개혁개방을 추구한) 베트남의 길을 가고 싶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이 진정이라면 남북 협력밖에는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정 장관 발언은 지난주 미국 뉴욕 유엔총회 연설과 '대한민국 투자 서밋'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내놓은 '교류(E)·관계 정상화(N)·비핵화(D) 이니셔티브'와 북핵 언급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핵폭탄을 싣고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ICBM 개발도 (핵탄두) 대기권 재진입 기술만 남겨둔 상황"이라며 북한이 조만간 재진입 기술마저 완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시키는 것으로도 안보상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정 장관 발언에 대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하고 있다는 경각심을 환기하는 차원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부 안팎에서는 정 장관이 잇달아 내놓는 파격적인 대북 메시지가 자칫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 '원팀' 기조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정부의 대북·외교안보 그룹 내에서 '자주파·동맹파' 대립이 격화하는 가운데 정 장관이 '평화적 두 국가론'을 띄운 데 이어 자칫 '북 핵 용인' 주장까지 내놓는 것이 결과적으로 대북 정책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외교안보 소식통은 "정 장관은 통일부 장관으로서 내부적인 논란을 감수하더라도 이처럼 급진적인 대화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한 것으로 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정 장관은 후보 시절부터 △통일부 명칭 변경 △평화적 두 국가론 △남북 접경지역 내 군사훈련의 선제적 복원 등을 주장해 논쟁을 불렀다. 이는 '미국과 일부 이견이 있더라도 남북 관계 개선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자주파의 견해와 맥을 같이한다.

같은 날 북한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김 위원장이 앞서 밝힌 '핵 포기 절대 불가' 입장을 재확인하며 미국 등 국제사회를 향한 여론전을 지속했다.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은 미국 뉴욕 유엔총회 연설에서 "핵은 우리 국가의 법이자 국책이며 주권과 생존권 그 자체"라며 "어떤 환경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고위급으로서는 7년 만에 나선 유엔총회 연설이다.

그는 "우리는 핵을 헌법에 결코 침해받지 않는 절대적이고 신성한 것으로 규정했다"며 이미 사회주의 헌법에 핵 보유 사실이 명문화된 점을 부각시켰다. 이어 김 부상은 "북한에 비핵화를 강요하는 것은 주권과 생존권을 포기하고 헌법을 위반하라는 요구와 같다"고 반발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내놓은 '비핵화 절대 불가' 방침을 재확인한 셈이다.

[김성훈 기자 / 뉴욕 임성현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