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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해방 멜로, ‘바이러스’[한현정의 직구리뷰]

※감염 주의 아닌 추천※ F와 T의 독특한 하모니...무해하게 중독되네

  • 한현정
  • 기사입력:2025.04.28 20:55:41
  • 최종수정:2025-04-28 21: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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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주의 아닌 추천※
F와 T의 독특한 하모니...무해하게 중독되네
사진 I 바이포엠스튜디오
사진 I 바이포엠스튜디오

잿빛 세상이 어느새 핑크색이다. 무미 건조했던 마음은 무한 긍정이 된다. 이상하고 유치한데 그들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몽글해지니 아무래도 감염됐나보다. 흔한 고자극 없이, 무해한 중독성을 지닌, 힐링 ‘바이러스’(각본/감독 : 강이관)다.

영화는 연애 세포 소멸 직전의 번역가 옥택선(배두나)가 성의료재단의 모태솔로 연구원 남수필(손석구)과 엉망진창 소개팅을 하면서 벌어지는 발칙한 핫핑크 소동극이다. 이지민 작가의 2010년에 출간된 소설 ‘청춘극한기’를 원작으로 했다.

첫 만남부터 막무가내로 애정 공세를 피더니, 급기야 결혼하자는 수필. 그런데 이 엉뚱한 남자를 만난 뒤 택선의 세상은 더 요상해진다.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건 기본, 평소에 즐겨 입지도 않던 화려한 원피스에 눈이 가고, 매일 오던 동창 놈(장기하)의 광고성 단체 메시지조차 너무 설렌다.

그 중에서도 연구원 이균 박사(김윤석)는 가장 매력적이다. 하지만 택선을 그로부터 이 모든 증상의 원인이 ‘톡소 바이러스’에 감염 됐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된다. ‘톡소 바이러스’는 고양이를 숙주로 삼은 기생충 톡소플라즈마 곤디에서 유래했는데, 쥐에 전이될 때는 전두엽을 교란시켜 우울감을 유발하지만 인간의 경우는 반대란다. 문제는 이 투머치 행복은 발생 하루가 지나면 붉은 반점과 시력 저하 등을 동반하면서 결국 사망하게 된다는 것. 수필은 양심과 진심을 다해 그녀를 구하고자 노력한다.

사진 I 바이포엠스튜디오
사진 I 바이포엠스튜디오

사랑에 빠지게 하는 바이러스라는 설정부터 사랑스럽다. 메가폰은 바이러스를 단순히 질병 또는 재앙으로 묘사하기보단 사랑과 연결 짓는다. 기존의 장르물에서 공포의 대상·그저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 주로 재난물과 연결해 다룬 것관 대조적이다. 신박하고도 발칙하고 동화스럽다. 한 명의 여자가 자신이 살기 위해 치료제를 찾아나가는 여정을 유쾌하고도 따뜻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엉뚱하고도 독특하다. 비주류인듯 꼭 그렇지만도 않고, 동떨어진듯 공감할 여지가 다분하니 볼수록 빠져든다. 4차원스러운 개성은 대중성으로 따지자면 아슬한 경계에 걸쳐있다. 장르적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건 흔하지 않고, 정체성은 확고하며, 요즘 보기 드물게 무해하다. 사랑이란, 바이러스처럼 찾아왔다가 치유되고, 한 번 크게 앓고 나면 면역력이 증진되고, 그래서 더 단단해 질 수 있다. 이 안 어울릴듯 어울리는 묘한 연결 고리가 귀엽고 흥미롭다. F와 T의 기막힌 하모니다.

배우들의 합은 특히 좋다. 그간 주로 좀비물이나 형사물에서 봐 온 무표정한 얼굴이 아닌 한껏 화사해진 명랑 배두나는 반갑고, 노련한 김윤석은 멜로 남주로서 손색 없이 매력적이다. 손석구·장기하는 기막힌 치고 빠지기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2019년 7월 촬영을 시작해 10월에 일정을 마친 영화는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무려 6년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영화 속 신박한 설정들은 이미 현실이 돼버렸지만, 그래서 오히려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리스크는 공백기보단 작품의 개성 자체에 대한 호불호다. 누군가에겐 시작부터 몰입이 어려울 수 있다. 소동극에 가까운 오밀 조밀한 사랑 이야기라 그 미덕이 꼭 스크린에서 봐야 극대화 된다고도 볼 순 없다. 그럼에도 한 번 쯤 감염되길 추천하고 싶다. 기분 좋은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지어 질지니. 배우들의 말처럼 요즘 충무로에서 보기 드문, 착하게 틀을 깨는, 귀한 개성갑 힐링 영화다.

5월 7일 개봉. 12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9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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