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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인사이트·제약사 R&D 협업 … 새 고혈압 치료제 일냈죠"

이무용 동국대 일산병원 교수
한가지 성분으로 된 고혈압 치료제
혈압 조절 안되면 약 강도만 세져
2017년 스페인 심장학회 참석때
저용량 고혈압 복합제 가능성 확신
임상 풍부한 한미약품과 손잡아
세계 최초 저용량 복합제 개발
최적의 비율 찾아 부작용 줄여

  • 이상훈
  • 기사입력:2025.05.13 16:07:39
  • 최종수정:2025-05-13 18: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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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여름, 스페인 바르셀로나. 한낮 태양이 저녁까지 길게 이어지는 이국의 거리를 걸으며 이무용 동국대 일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한국은 점심시간. 시간대를 맞춰 다급하게 누른 번호는 다름 아닌 한미약품이었다. 그 순간 그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 실제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법이 무엇인지 해답을 손에 쥐고 있었다. 유럽심장학회(ESC)에 참석한 그는 그곳에서 단일제 중심의 기존 고혈압 치료 방식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수년간 환자를 진료하며 경험한 현장의 목소리와 최신 연구가 맞닿는 지점에서 그는 분명한 확신을 얻었다. 바로 저용량 성분으로 구성된 3제 복합제가 고혈압 초기 치료의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설명드릴 게 있습니다. 이건 꼭 해야 할 일입니다." 당시 그는 고혈압 치료에서 흔히 쓰이던 '단계적 약물 치료' 방식, 즉 한 가지 성분으로 시작해 혈압이 조절되지 않으면 점차 약을 추가하는 방식에 많은 한계를 느꼈다. 실제로 환자들은 약을 추가할수록 부작용에 대한 불안이 커졌고, 복약 순응도는 떨어지는 일이 많았다. 반면 초기부터 여러 성분을 저용량으로 병용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혈압 조절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었다. 문제는 이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제약 파트너'를 찾는 일이었다.

이 교수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제약사는 바로 한미약품이었다. 복합제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과 풍부한 임상 경험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체적으로 임상조직을 운영하며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없이도 안정적인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이 교수는 "한미는 단순한 생산 파트너가 아니었다"며 "최초 복합제 경험이 풍부했고, 무엇보다 빠른 의사결정과 체계적인 내부 조직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같이하면 반드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 확신했다는 게 이 교수 말이다. 그의 전화를 받은 한미약품 신제품개발본부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반응했다. 단순한 제안으로 넘기지 않고, 곧바로 개발팀이 움직였다. 신규 복합제에 대한 미래 가치를 알아보고 교수의 아이디어에 강한 공감과 열의를 보였으며 현업 부서들과의 공동 작업을 곧바로 시작했다. 단 한 통의 전화로 제약사와 의료진의 진정한 협업 모델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바로 '아모프렐'이다. 이 약은 암로디핀(Amlodipine), 로사르탄(Losartan), 클로르탈리돈(Chlorthalidone)을 각각 3분의 1 용량으로 조합한 세계 최초의 저용량 3제 복합제다. 기존 고혈압 복합제(아모잘탄플러스 5/50/12.5㎎)의 구성 성분을 3분의 1로 줄이되, 효과는 유지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었다.

한미약품은 이 까다로운 제형 구현을 위해 '레이어링 기법'을 적용했다. 약물이 방출되는 시간을 정교하게 조절함으로써 세 성분이 서로 간섭 없이 체내에서 안정적으로 작용하도록 제형을 설계한 것이다. 이 기술은 호주의 선진 연구팀도 관심을 보였으며, 한미는 실제로 해당 기술을 국제학회에서 발표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교수는 단순한 제안자에 머무르지 않았다. 임상 설계부터 데이터 분석, 논문 작성까지 전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특히 다양한 저용량 조합을 시험하며 최적의 비율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이 교수는 "단일 성분보다 복합제를 처음부터 쓰면 복약 부담이 줄고, 빠르게 혈압이 조절되면서 치료 지속률도 올라간다. 특히 부작용을 두려워하는 환자들은 큰 심리적 안정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젊은 고혈압 환자들에게도 아모프렐이 유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젊은 환자들은 특정 원인에 의한 고혈압이 많고, 약 거부감도 크기 때문에 초기부터 효과적이고 간편한 치료제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아모프렐은 크기가 작고 1일 1회 복용하는 단일 정제 제형으로, 복약 편의성과 순응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장점을 갖췄다.

이 교수는 아모프렐 개발을 단지 신규 복합제 출시로만 보지 않는다. 의료진의 인사이트와 제약사의 개발 능력이 만나 '현실화한 혁신'을 이룬 대표 사례로 평가한다. 이는 향후 국내 제약 산업이 나아가야 할 신제품 개발 모델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는 같이 개념을 잡고 실행까지 해냈다"며 "이는 한미약품만의 성과가 아니라, 한국 제약과 의료계 전체의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약품은 하반기 국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가격 경쟁력이 있는 국산약 특성과 복약 편의성에서 차별화한 강점을 갖추고 있어 해외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기대다. 마지막으로 그는 고혈압 치료의 패러다임이 '단계적 접근'에서 '초기 집중 치료'로 바뀌어야 한다고 확언했다. 이 교수는 "예전엔 고혈압 약을 하나씩 늘려가며 조절했지만, 지금은 처음부터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하다"면서 "아모프렐은 그에 딱 맞는 해답"이라고 덧붙였다.

단순한 복합제가 아니라 치료 실패를 줄이고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약물, 아모프렐은 고혈압 치료의 새로운 기준이자 산학협업의 이상적 모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2017년 여름, 바르셀로나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였다.

[이상훈 매경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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