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가 1분기 7조4000억원이 넘어서는 영업이익을 달성한 배경에는 ‘인공지능(AI) 메모리’ 시대를 적기에 준비한 것이 컸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 5세대 제품인 HBM3E 12단 판매를 확대하면서 영업이익률 42%라는 기염을 토했다. SK하이닉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올해는 차세대 HBM인 HBM4 양산에 돌입하고, 내년에는 차세대 메모리를 주력 사업으로 삼아 ‘AI 반도체 전쟁’에서 승기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오다.
24일 SK하이닉스는 ‘2025년 1분기 연결 기준 잠정 실적’을 통해 1분기 매출 17조6391억원, 영업이익 7조4405억원을 거뒀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2분기 연속으로 삼성전자 영업이익을 뛰어넘었다.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은 SK하이닉스가 8조828억원, 삼성전자가 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실적을 견인한 핵심은 글로벌 수요가 연평균 50%씩 증가하고 있는 HBM이었다. 특히 HBM3E 12단 제품 생산이 계획대로 확대되면서 실적을 이끌었다. HBM 비중이 74%에서 80%로 증가했고 DDR5와 HBM3E 판매를 늘린 것이 수익성 개선에 기여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2분기부터 HBM3E 매출의 절반 이상을 12단 제품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김우현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번 실적은 제품 포트폴리오를 AI 메모리 중심으로 고도화한 결과”라며 “시장 수요가 구조적으로 변화하는 흐름에 전략적으로 대응해왔다. HBM은 고객과 1년 전 공급 물량을 합의하는데 올해 수요는 변함없이 전년 대비 약 2배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HBM4에서도 승기를 이어갈 계획이다.
올해 3월 엔비디아에 HBM4 샘플을 처음으로 납품한 데 이어 연내 양산 준비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특히 SK하이닉스는 2026년부터 HBM4가 주력 제품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HBM4는 전송 속도, 대역폭, 전력 효율 등 모든 면에서 성능이 HBM3 대비 30~50% 향상된 차세대 HBM이다.
아울러 AI 메모리 전체 품목에 대한 공략을 강화한다. 대표적인 것이 현재 노트북 메모리보다 빠르고 전기를 덜 먹는 노트북 전용 고성능 메모리 모듈인 LPCAMM2다. 앞으로 AI를 탑재한 고성능 노트북이나 슬림형 워크스테이션에 주로 탑재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1분기부터 LPCAMM2를 글로벌 PC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소캠(SOCAMM) 역시 글로벌 AI 서버 고객사와 공급 시점을 조율하고 있다. 소캠은 현존하는 서버용 메모리보다 얇고 작게 만든 차세대 메모리 모듈이다. 고집적 설계가 가능해 더 많은 메모리를 작은 공간에 넣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낸드플래시 부문에서도 고성능 제품 중심의 전략을 이어갈 방침이다.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300% 이상 증가했다. SK하이닉스는 “하나의 저장 공간(셀)에 4비트 정보를 저장하는 ‘QLC 낸드플래시’ 기술을 적용한 eSSD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면서 “더 많은 데이터를 담을 수 있는 초고용량 제품도 함께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김석 SK하이닉스 낸드마케팅 담당은 “오픈AI와 딥시크의 개발에 힘입어 AI 추론용 시장이 촉발됐다”면서 “데이터 저장 수요 증가에 맞춰 초고용량 낸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하반기 반도체 경기를 비관하지 않았다. 1분기에는 △중국의 경기 부양용 보조금 △빅테크의 AI 개발 경쟁 △관세 시행 전 선구매 수요 등이 실적에 영향을 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반기 수요가 급격히 둔화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또 AI PC, AI 스마트폰 수요 증대와 빅테크 중심의 서버 투자 확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 CFO는 “미국발 관세는 미국으로 선적되는 물량에 적용되는데 미국향 물량 비중이 크진 않다”며 “주요 고객과도 공급 전략을 긴밀히 조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법인 소재지 기준 매출은 전체 매출의 60%에 달하지만, 실제 미국으로의 선적 비중은 높지 않다는 설명이다. 또 관세 효과에 대해선 “정책 방향이 불확실해 구체적 예측은 어렵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이어 “일부 고객은 단기 수요를 앞당기고 있으며 AI 탑재 제품 확대와 함께 소비자 교체 수요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SK하이니스는 수익성이 검증된 제품에 대해 투자를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용인 1기 팹은 2027년 2분기 준공하는 것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청주 M15x는 올해 4분기 가동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실적을 두고 반도체 업계에서는 고성능 중심 제품 구성, AI 수요 선제 대응, 차세대 HBM 라인업 확보 등으로 SK하이닉스 체질 자체가 전환됐다고 분석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2018년께 글로벌 빅테크가 자체 클라우드 인프라스트럭처를 처음으로 본격 도입하면서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급격히 늘어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률이 50%를 웃돌기도 했다”며 “지금은 일회성 특수와 달리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춘 상태로, 실적의 질 자체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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