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조원대 추경 편성···‘지역화폐’ 정책 강화
‘코스피 5000’ 목표로 상법 개정 적극 나서
부동산은 실수요 중심 공급으로 가격 안정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1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오차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득표에 성공했다. 후보 시절부터 ‘잘사니즘’과 ‘먹사니즘’을 강조해온만큼 당선되면 실용주의 노선을 앞세워 경제살리기에 매진할 전망이다.
이 후보는 당선되면 승리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성장 절벽’을 풀어야할 중차대한 과제를 마주하게 됐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민간 소비는 코로나19 팬데믹보다 더 심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설상가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전쟁’ 여파로 수출 타격이 현실로 나타났다. 이 후보는 당선 되면 미국과의 ‘관세 빅딜’을 성사시키고, 내수 시장 활성화로 성장동력을 찾는 일에 공을 들일 듯 보인다.
이 후보의 1호 업무지시는 정밀한 경제상황 점검이 될 듯 보인다. 그는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2일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지휘하는 비상경제대응TF를 곧바로 구성해 실행가능한 단기 응급 처방은 물론이고 중기적 장기적 대응책을 확고하게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가 한국 경제를 위기로 규정했을 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다. 지난 5월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4월 우리 경제는 산업생산과 소매판매, 투자까지 모든 부문이 마이너스(-)로 3개월 만에 ‘트리플 감소’를 보였다. 특히 품목별 관세 25%를 적용받기 시작한 자동차 생산이 전월 대비 4.2%나 급감했다. 앞서 한국은행은 현재 유예된 수준의 미국 관세율이 계속될 경우 미국 수출 비중이 큰 자동차 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분석을 내놨는데, 실제 이런 전망이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내수도 꽁꽁 얼어붙었다. 국세청 사업자현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커피음료점은 9만5337개로 작년 동기보다 743개 줄어들었다. 창업 1순위였던 커피음료점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치킨·피자 등 패스트푸드점, 옷 가게, 화장품 가게 등 주요 소매업종들이 모두 감소했다.
자영업자 수도 줄어들었다. 올해 1월부터 자영업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4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2025년 고용동향 브리프 3호). 일명 ‘나 홀로 사장님’인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자영자)는 늘었으나,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고용주)는 크게 감소한 영향이다.
이 후보가 “언제든지 30조원 규모 이상의 추경을 하겠다”고 밝힌만큼 당선 즉시 추경 편성을 통한 내수 활성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도 2차 추경 필요성에 대해선 이견이 크지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은 30조원 규모의 추경이 편성되면 올해 성장률을 0.4~0.5%포인트 가량 올리는 효과를 낼 것으로 추산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도 22조~35조원 규모의 2차 추경 편성 시 성장률이 0.22~0.31%포인트 가량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후보는 소비 진작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지역화폐, 소비쿠폰 방식을 제시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발표한 공약집에도 지역화폐 발행을 국고로 지원해 규모를 확대한다는 취지의 ‘지역화폐 발행 지원 의무화’가 담겼다.
이 후보의 지역화폐 사랑은 익히 알려졌다. 그는 “10% 지원해 매출이 늘어나면 10배 승수효과가 있다. 이걸 늘리겠다는 건 큰돈도 안 들고 혜택은 모두가 볼 것”이라며 “나중에 노벨평화상을 받을 정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부터 내세웠던 ‘코스피 5000’을 향한 여정도 시작한다. 그는‘코스피 5000’을 목표로 제시하며 △주가 조작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외국인 투자 확대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상법 개정 등을 공약했다. 상장지수펀드(ETF) 장기 투자 포트폴리오를 공개하며 ‘개미 투자자’ 중심의 주가 부양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당장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가로막혔던 상법개정안부터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 후보는 주식시장 활성화 공약의 일환으로 ‘주주 충실 의무 상법 개정 재추진’과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 선임을 위한 집중투표제 활성화’를 약속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법 개정은 한 달도 안 걸린다. 2, 3주 안에 처리하고 거부권 행사 안 하면 된다”며 “쉽게 할 수 있는 조치 몇 가지만 해도 주식시장이 상당히 회복되고, 내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가 조작 처벌 수위도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이 후보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 한 번이라도 주가 조작에 가담하면 다시는 주식시장에 발을 들일 수 없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외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경영 감시 기능 강화 ▲합병 시 기업가치 공정 평가 ▲‘쪼개기 상장’ 시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신주 우선 배정 등을 약속했다.
부동산 정책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며 세금 중심의 억제책보다 공급 확대를 앞세울 가능성이 높다. 이 후보는 수도권 4기 신도시 개발과 기존 노후 계획도시 재정비를 통해 주택 공급 확대를 꾀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B·C 노선의 지연 없는 추진과 D·E·F 단계적 추진, 5대 초광역권역별 광역급행철도 건설 등을 공약한 바 있다.
지난 20대 대선과 공약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후보는 당시 기본주택·국토보유세·분양가상한제 강화 등 규제 중심 정책을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건설·부동산 시장 침체가 심화하는 만큼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정책을 내세웠다는 평가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성을 높여 민간 공급을 활성화하고 용적률 완화, 신속 인허가제 도입 등을 통해 시장의 숨통을 틔우겠다는 입장이다. “세금으로 집값 잡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발언은 보다 시장 친화적인 메시지로 해석된다.
미래 먹거리로 급부상한 인공지능(AI) 산업 지원을 위한 방안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대통령실에 AI 전담 수석비서관직을 신설하고, 해당 수석비서관에게는 국가 최고인공지능책임자(CAIO) 역할을 맡겨 범국가적 AI 대전환 전략을 추진할 전략기구를 설치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강화해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민간 투자 100조원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재생에너지 정책도 강화한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에너지고속도로’를 강조해왔다. 재생에너지가 전국 곳곳에서 생산되고 소비될 수 있도록 전력망을 촘촘히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2030년까지 서해안 해상전력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소멸 위기 지역에 햇빛·바람연금을 확대해 지역경제를 살리겠다고 했는데, 그는 태양광에너지로 수익을 올리는 경기도 여주 구양리의 사례처럼 지역경제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앞서 4월 ‘지구의 날’에는 석탄발전을 2040년까지 전면 폐쇄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지난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목표를 10년이나 앞당기겠다는 의미다. 논란의 중심에 있던 원전을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라도 재생에너지 산업을 대대적으로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노동분야에서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는 주 4.5일제의 단계적 도입과 사회적 합의를 통한 65세로의 정년 연장을 공약했다. 지역별 의료 격차 해소 방안으로는 지역의사제, 지역의대, 공공의료 사관학교 신설을 제시했다.
특히 주4.5일제는 ‘K직장인’ 최대 관심사다. 이 후보는 무조건적인 노동 시간 단축을 주장한다. 법정 근로 시간을 현행 40시간에서 36시간으로 줄이는 게 골자다. 2022년 대선과 지난해 총선에서도 내세웠던 공약이다. 근로 시간을 줄이면 원칙적으로 임금이 줄어든다. 이 후보는 “포괄임금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하겠다”며 “기존 임금 등 근로조건이 나빠지지 않도록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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