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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공’ 투자…탈통신 전략 스톱? [신뢰 잃은 ‘통신 1위’ SKT]

정보보호에 소홀…얼마나 투자했길래

  • 배준희
  • 기사입력:2025.05.09 13:14:20
  • 최종수정:2025.05.09 13: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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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보호에 소홀…얼마나 투자했길래

고객 유심(USIM·가입자 식별 모듈) 정보 해킹 사태로 그동안 SK텔레콤이 전사적으로 추진해온 인공지능(AI) 기반 탈(脫)통신 전략에도 제동이 불가피해졌다. 탈통신은 전통 사업(통신)을 넘어 AI, 클라우드, 구독형 서비스, 모빌리티 등으로 카테고리 다각화(Category Spanning)에 나서는 전략을 뜻한다. 국내 1위 통신사업자 SK텔레콤은 최근 수년간 AI 인프라(데이터센터)·서비스, 구독 경제, UAM(도심항공교통) 등 신사업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해왔다. 이번 해킹 사태가 오롯이 탈통신 전략 때문에 초래됐다고 보긴 힘들지만, 전략 자원이 신사업 중심으로 배치되면서 통신 인프라 보안, 내부 시스템 투자·관리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 해킹 가능성을 높였을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디지털 신뢰’ 훼손으로 탈통신 전략의 지속가능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진단이다.

사진설명

탈통신 사업 다각화 ‘빨간불’

전략 전환기 때 줄줄이 대형 사고

최근 수년간 통신 업계에서는 AI, 플랫폼 비즈니스 등으로 사업 구조 다각화가 유행처럼 확산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AI 관련 사업에만 약 3000억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2월 미국 서비스형 그래픽처리장치(GPUaaS) 업체 ‘람다’에 2000만달러(약 294억원), 6월 생성형 AI 검색엔진 스타트업 ‘퍼플렉시티’에 1000만달러(약 147억원), 7월에는 AI 데이터센터 솔루션 기업 ‘SGH’에 2억달러(약 2943억원)를 각각 투자했다. AI 데이터센터·그래픽처리장치(GPU) 클라우드 서비스 확장으로 관련 서비스 부문을 신설하는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SK텔레콤은 오는 2028년 AI 매출 9조원 달성이 목표였다.

이는 기존 통신 사업에서 투입되는 설비 투자에 비해 비용 회수가 녹록지 않자 사업 구조를 고도화하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결과다. 2020년 이후 국내 전통 통신 시장은 포화기를 넘어 사실상 수축기로 진입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해 통신 3사 이동통신 부문 매출 증가율은 1~2% 수준에 그쳤다. 국내 이동통신 회선은 약 5700만개로 인구수보다 많다. 5G 보급률도 70%를 넘어 양적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국내 전통 통신 산업은 ▲비용 절감 경쟁 ▲정부 요금 규제 ▲ARPU(가입자당 평균 매출) 하락 압박 ▲기술 전환 비용 증가 등으로 구조적 수익성 저하 국면에 놓였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진단이다.

문제는 이 같은 전략 전환기 한복판에서 해킹·통신장애 같은 대형 사고가 반복된다는 데 있다. 통신 사업 핵심 정체성을 규정하는 네트워크 안정성·신뢰성을 통신사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해킹 사태 역풍을 맞은 SK텔레콤뿐 아니라 지난 2018년에는 KT 아현국사 화재 사고로 서울 마포·용산·서대문구 일대 유·무선 통신이 두절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에도 통신 본업 홀대 논란이 들끓었다. 2018년은 KT 역시 부동산 자산 유동화, 금융 거래 플랫폼 구축 추진 등 비(非)통신 사업 다각화에 힘을 쏟던 때다. KT는 2021년에도 내부 라우팅(네트워크 경로 설정) 오류로 수 시간 동안 전국적인 통신망 장애를 초래했단 지탄을 받았다. 이때도 구현모 당시 KT 대표가 ‘디지코(DIGICO)’를 슬로건으로 탈통신에 속도를 내던 때다. LG유플러스도 다르지 않다. 지난 2023년 약 30만건의 고객 정보 유출 사고도 LG유플러스가 AI 서비스 통합 브랜드 ‘익시(ixi)’를 선보인 지 6개월여 만에 터졌다.

초유의 유심 해킹 사태로 SK텔레콤은 1위 사업자 지위를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지난 4월 22일 해킹 사고가 처음 알려진 뒤 지난 5월 6일까지 약 25만명의 SK텔레콤 이용자가 다른 통신사로 갈아탄 것으로 나타났다. 순감 규모만 2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4월 30일 국회 과방위에선 여야 의원들이 SK텔레콤 대응을 일제히 비판해 해킹 이슈는 정치권까지 비화했고 온라인에선 집단소송 움직임도 목격된다. 포털 사이트에는 ‘SKT 개인정보 유출 집단소송 카페’가 개설됐고 가입자들은 해킹 피해에 대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정원석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비관적 시나리오로 오는 6월까지 신규 가입자 유치가 제한된다고 가정하고 일평균 5월 1만5000명, 6월 5000명의 이탈을 반영하면 2025년 연간 실적 감소분은 약 1500억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정보보호 인프라 투자 홀대

SKT 1위 사업자 지위도 ‘흔들’

전문가들은 통신사가 신사업 투자를 빠른 속도로 늘리는 과정에서 정보보호 인프라 투자에 소홀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해킹 기술은 기하급수적 궤적을 그리며 발전했지만, 정보보호 인프라 투자는 이에 비례해 이뤄지지 않고 있단 지적이다.

이런 우려는 수치로도 일부 확인된다. 자회사 SK브로드밴드를 포함한 SK텔레콤의 정보보호 투자액은 경쟁 통신사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KT의 2021년 정보보호 투자비는 1021억원에서 2023년 1218억원으로 늘었고 이 기간 LG유플러스는 292억원에서 632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반면, SK텔레콤은 2021년 861억원(SK텔레콤 627억원·SK브로드밴드 234억원)에서 2023년 867억원(SK텔레콤 600억원·SK브로드밴드 267억원)으로 사실상 제자리걸음했다. SK텔레콤만 놓고 보면 오히려 27억원 줄었다.

통신사별 이용자 수와 영업이익에 견줘 비교해도 SK텔레콤의 정보보호 투자 수준은 1위 사업자 위상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난 2월 자료에 따르면, SK텔레콤 휴대폰 이용자는 2300만명, KT 이용자 수는 1300만명, LG유플러스는 1000만명이다. 이용자 수 점유율 기준 SK텔레콤이 약 50%로 KT(30%), LG유플러스(20%)를 압도하지만, 정보보호 투자 비용은 오히려 이에 못 미쳤다. 영업이익 대비 정보보호 투자 비중으로 비교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 KT는 지난해 영업이익의 12%를 정보보호 투자액으로 썼고 LG유플러스는 7.3%를 투자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영업이익의 4.7%만 이용자 정보보호를 위해 투자했다. ‘신사업 투자를 좇다 본업 경쟁력 강화를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달리 할 말이 없는 상황이란 지적이다.

이번 해킹 사태로 SK그룹 차원의 AI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측이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 지시로 AI반도체(SK하이닉스), AI솔루션(SK C&C), 인프라(SK브로드밴드) 등으로 분산된 AI 역량 통합·고도화에 전사적 자원을 쏟았다. 특히, SK텔레콤은 그룹 차원에서 집약된 AI 기술·인프라 확산의 플랫폼 역할을 맡았던 터다. AI 전략은 데이터 신뢰와 사용자 보안이 핵심이라는 점에 비춰, 사상 최악 해킹 사태는 SK그룹 AI 전략의 정당성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태 추이에 따라 그룹 내 AI 기술 확산 교두보로서 SK텔레콤 위상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진단이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에이닷 같은 개인화 AI 서비스는 개인정보에 대한 신뢰가 핵심인데, 이번 사건으로 향후 유료화 전환 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봤다. 유영상 사장 입지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박정호 부회장 사단으로 분류됐던 유영상 사장은 부회장단 퇴진 흐름 속에서도 AI TF·추진단을 맡아 자리를 지켰으나 해킹 사태로 향후 입지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촌평했다. 한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5월 7일 서울 중구 을지로 SK텔레콤 사옥에서 열린 해킹 사태 일일 브리핑에 참석해 “SK텔레콤 사이버 침해 사고로 고객과 국민에게 불안과 불편을 초래했다”며 “SK그룹을 대표해 사과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9호 (2025.05.14~2025.05.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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