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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시술에 3000만원...통 큰 왕서방 파워 [스페셜리포트]

  • 박수호
  • 기사입력:2025.05.09 13:13:05
  • 최종수정:2025.05.09 13: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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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엠레드클리닉. 엔데믹 후 주로 미국, 일본 VIP 고객 위주로 외국인 고객이 늘어났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양상이 달라졌다. 한번에 3000만원 넘는 시술도 주저 없이 받고 가는 중국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엠레드클리닉 창업자 최두영 AAC 대표(MD, 의사)는 “지난해 4월부터 중국 환자가 확 늘어나면서 중국 특수가 체감되기 시작했는데 이후 하반기에는 상반기보다도 관련 매출이 150% 더 늘었다”고 말했다. 올해 분위기는 더 좋다. 전통적으로 중국인 방한 수요가 적은 1~2월 비수기에도 올해는 전년 1분기 대비 내원객이 3배 이상 늘었다고. 이들의 돈 쓰는 스타일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중간 브로커를 끼고 눈, 코 등 간단한 시술 위주로 단체 방문하는 개념이었다면 지난해부터 방한하는 중국 고객은 단순 체험이 아닌 실질적인 피부 개선을 위해 아낌 없이 지갑을 연다는 후문이다. 엠레드클리닉 관계자는 “여력이 되는 대로 의료진 추천 시술을 복합적으로 받는 성향이 강하며 울쎄라, 써마지, 스컬트라, 티타늄, 튠페럴(엠레드 시그니처), 쥬비덤, 엘란쎄 등 고가 시술을 망라한다”며 “최근에는 보디 라인 관리나 리프팅 시술 등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시술’을 진행하다 보니 출국 일정 때문에 새벽까지 전담팀이 대응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들려줬다.

사드 갈등 이후 닫혔던 중국 관광객 지갑이 다시 열리고 있다. 이들의 씀씀이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의료 관광 분야에서 ‘V자 반등’을 보였고 1인당 평균 소비액 또한 크게 늘었다.

엠레드클리닉에서 시술 상담을 받고 있는 고객.
엠레드클리닉에서 시술 상담을 받고 있는 고객.

中 관광객 얼마나 늘었길래

1인당 22만원 → 35만원…씀씀이 커져

한국관광데이터랩 통계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112만2169명이다. 2024년 1분기 101만5101명보다 10.5% 늘어났다.

씀씀이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글로벌텍스프리’의 텍스리펀드(세금환급) 통계를 보면 올 1분기 중국인 관광객의 총 판매 금액(관광객이 구매한 상품 중 세금 환급 신청이 가능한 품목의 판매액 총액)은 약 394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2256억여원과 비교하면 74.7% 급증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한 1인당 평균 판매액은 2024년 1분기 약 22만2000원에서 2025년 1분기 약 35만1000원으로 약 58.1% 증가했다. 중국인 관광객 한 명이 한국에서 쓴 돈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참고로 글로벌텍스프리는 외국인 관광객의 세금 환급을 취급하는 국내 시장점유율 1위 회사다.

中 ‘큰손’ 어디에 지갑 열었나

작년 4위 의료 관광…올해 1위 껑충

업종별 변화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특히 의료용역(의료 관광) 분야 성장이 독보적이다. 중국인 관광객 대상 의료용역 총 판매 금액은 지난해 1분기 약 370억원에서 2025년 1분기 1001억여원으로 약 170.4% 폭증했다. 건수는 2024년 1분기 2만5305건에서 2025년 1분기 6만1006건으로 141.1% 급증했다. 건당 평균 소비 금액 역시 덩달아 껑충 뛰었다. 2024년 1분기 약 146만원에서 2025년 1분기엔 1건당 약 164만원으로 증가했다. 전체 방한 중국인 관광객을 기준으로 산출한 1인당 의료용역 소비액은 2024년 1분기 약 3만6000원에서 2025년 1분기 약 8만9000원으로 144.4% 증가했다.

보건복지부의 외국인 환자 유치 자료에서도 이런 트렌드는 감지된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환자는 117만명으로 2023년 61만명 대비 약 2배(93.2%) 증가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는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이 본격화된 2009년 이래 16년 만에 누적 505만명에 이르는 기록적인 수치다. 특히 중국인 환자 증가세가 눈에 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중국인 환자는 26만1000명이 방문, 2023년 대비 132.4%나 급증했다. 전체 외국인 환자 중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으며 일본, 대만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증가율(132.4%)을 기록했다. 특히 같은 기간 중국인 환자 17만2000여명은 한국의 피부과를 찾은 것으로 파악된다(전년 대비 278.8% 증가).

데이터를 종합해보면 코로나19 이후 건강·웰니스에 관심이 커진 중국인이 한한령 완화에 따라 한국의 첨단 의료 기술, K뷰티 트렌드, 합리적인 비용 등에 큰 매력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요인이 결합돼 본격적인 의료 관광, 관련 분야 소비 확대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글로벌 IT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국내 의료 기관이 디지털화된 의료 서비스, 틱톡 등을 통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도 중국 의료 관광객 급증 원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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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돈 쓴 곳 어디?

명품 “中보다 싸다”…백화점 몰려

지난해 1분기만 해도 중국인이 가장 많이 지갑을 연 곳은 백화점이었다. 이어 화장품(2위), 의류잡화(3위), 의료용역(4위), 쇼핑몰·아웃렛(5위), 외국인전용판매장(면세점·6위)이 뒤를 이었다. 올해 양상은 다르다. 의료용역이 1위를 차지한 가운데 백화점, 화장품, 의류잡화, 쇼핑몰·아웃렛이 한 계단씩 내려왔다. 눈길을 끄는 건 시계·주얼리가 외국인전용판매장을 밀어내고 6위에 안착했다는 점이다.

종합 2위인 백화점의 올해 1분기 총 판매 금액은 857억여원으로, 2024년 1분기(646억원) 대비 32.7% 증가했다. 1인당 소비액은 2024년 63만7127원에서 2025년 76만4652원으로 20% 늘었다. 명품과 고가 브랜드 중심 쇼핑 수요가 성장을 견인했다. 위안화 약세에도 원화가 상대적으로 더 약세를 보이면서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한중 매장 간 ‘가격 역전’ 현상이 심화되자 중국인 원정 쇼핑객이 늘어났다는 후문. 이를 간파한 한국 백화점이 신규 VIP 라운지 확충, 통역 매니저 상시 배치, 스페셜 오더 서비스 확대 등을 통해 중국인 VIP 고객 유치에 공을 들였던 것이 올해 1분기 실적에 그대로 반영됐다.

종합 3위에 오른 화장품도 선전하긴 마찬가지다. 2025년 1분기 총 판매 금액은 828억원으로, 2024년 1분기(464억원) 대비 78.4% 급증했다. 1인당 소비액은 2024년 4만5749원에서 2025년 7만3795원으로 61.3% 증가하며 K뷰티의 글로벌 인기를 입증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 국가약품감독국(NMPA)의 ‘비동물실험’ 인허가 지연으로 한국산 화장품으로 대체 구매하는 현상이 나타난 점도 컸다.

의류잡화 역시 중국 관광객이 쓸어담는 품목 중 하나다. 올해 1분기 총 판매 금액은 791억원으로, 2024년 1분기(422억원) 대비 87.5% 폭증했다. 1인당 소비액은 2024년 41만5867원에서 2025년 70만5092원으로 69.5% 늘었다. K패션과 한류 콘텐츠의 영향으로 의류, 액세서리 소비가 특히 급증했다.

쇼핑몰·아웃렛도 중국 특수를 누리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올해 1분기 총 판매 금액은 167억원으로, 2024년 1분기(135억원) 대비 23.2% 증가했다. 1인당 소비액은 2024년 13만3879원에서 2025년 14만9177원으로 11.4% 늘었다. 상하이, 베이징 등 주요 도시의 관세 특혜 종료 이후 중국 현지에서 고가 패션 상품의 실구매가가 상승하면서 한국 아웃렛 구매의 매력도가 높아졌고 한국 아웃렛들은 ‘당일 배송’, 중국행 국제 특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구매 편의성을 높인 덕이다. 시계·주얼리(136.1%) 역시 이런 트렌드를 타고 순위를 전년 7위에서 6위로 끌어올렸다. 더불어 총 판매액은 적지만 같은 기간 증가율이 높은 업종으로는 약국(699.4%), 안경(68.6%), 스포츠용품(65.8%) 등이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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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 나 홀로 ‘울상’

단체 관광·싹쓸이 쇼핑…옛말

반면 면세점 인기는 한풀 꺾인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에 해당하는 외국인전용판매장은 판매액이 2024년 1분기 85억원에서 2025년 1분기 63억원으로 더욱 쪼그라들었다.

이는 과거 단체 관광객 위주의 ‘싹쓸이 쇼핑’이 줄어들고 개별 여행객·젊은 관광객 비중이 늘어난 트렌드 변화와 관련이 깊다. 이들이 백화점, 아웃렛, 로드숍 등 다른 유통 채널에서 개별적인 선호에 맞는 상품을 구매하거나 의료·웰니스 등 다른 목적에 지출을 늘리면서 전통적인 면세점 소비가 상대적으로 위축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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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특수 이제 시작?

지정학 리스크는 늘 변수

최근 뚜렷한 방한 중국인 관광객 증가세를 두고 ‘중국 특수의 시작’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움직임 덕분이라는 일부 시각도 있다. 실제 중국 정부는 중국인의 한국 단체 관광을 허용했고 편리해진 비자 정책, 한국 가수의 중국 공연 성사 등 유화 제스처를 적극 취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인 사이에서는 개별 여행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저가 관광’에서 벗어나는 듯한 움직임도 감지된다.

한국 정부, 민간 업체 역시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다양한 정책과 마케팅을 추진하면서 2025년 방한 중국인 관광객이 5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특수를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과거 사드 배치로 인한 갈등이 방한 중국인 관광객 수에 직격탄을 날렸던 사례가 불과 6~7년 전 일이다. 중국 정부가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 비자 제한이나 단체 관광 금지 등의 ‘단절 정책’을 다시 취할 수 있다. 일명 지정학적 리스크다. 또한 중국 내부의 경기 둔화나 소비 심리 변화 등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병철 경기대 관광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향후 중국인의 한국 관광 비중이 지나치게 높거나 K컬처(공연, 드라마, 미용 등) 의존도가 심화되면 중국 정부가 예전처럼 추가 규제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며 “한국 관광 산업은 중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 다변화 노력을 지속하는 동시에 정치 리스크에 항상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 서원석 한국관광학회장(경희대 호텔관광대학장)
中 MZ세대 사로잡을 ‘킥’ 있어야 지속 성장
서원석 한국관광학회장(경희대 호텔관광대학장)
서원석 한국관광학회장(경희대 호텔관광대학장)

Q. 최근 방한 중국인 관광객 증가의 가장 큰 이유는.

A. 한중 관계 해빙기 속에 중국 정부가 관계 개선을 위해 여행 제재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 가장 크다. 한중 간 상호 무비자 입국 합의에 따른 인적 교류 확대 등 훈풍이 불고 있는 상황이다.

Q. 중국 관광객 소비 패턴이 이전과는 달라 보이는데.

A. 팬데믹 종료와 함께 중국인 관광 유형이 단체 여행객에서 1980년대 이후 출생한 MZ세대 중심 개별 여행으로 바뀌고 있는 점에서 변화의 핵심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자유 여행 선호 관광객이 늘고 면세점 쇼핑보다 한국 또래 세대가 향유하는 로컬 문화 자체를 소비하려는 욕구가 커졌다. 한류 콘텐츠 인기에 힘입어 한국 의료 기술, 화장품, 패션 인기가 상승했고, 중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한국만의 특별하고 독특한 제품 구매 욕구도 증가했다.

Q. 달라진 중국 관광객에 맞춤형 대응 전략이 따로 있을까.

A. 관광객 연령이 젊어졌다는 점을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대응해야 한다. 젊은 관광객은 장소 방문보다 체험 등 경험에서 즐거움을 찾기 때문에 차별화되는 경험 위주의 콘텐츠 구성이 중요하다. 전통 채널보다 소셜미디어(SNS) 마케팅을 강화하고 AI(인공지능), VFX(실감형 시각 효과) 등 스마트 기술 활용 홍보도 필요하다. 단기 대응보다는 어느 세대나 즐길 수 있게 지속가능한 관광 트렌드 개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Q. 중국 관광객 증가세 지속 가능성과 리스크는.

A. 한한령 완화 분위기는 반갑지만 향후 중국 경기 변화와 미중 외교 갈등 등 대외 변수가 많아 과도한 의존은 위험 요인이다. 사드 배치 갈등처럼 정치적 갈등이 관광 수요 급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인지해야 한다. K컬처가 흥행할 수 있는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필요하다.

Q. 한국 관광 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한 정책 제언은.

A. 지나친 저가 관광 상품 횡행을 막아야 한다. 관광객 수보다 재방문율을 높이고 다양한 지역을 경험하는 고품격 관광 상품 출시가 필요하다. 관광 산업 성과 목표를 ‘관광객 1인이 얼마나 부가가치를 창출했느냐’에 두고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어떻게 조사했나
관광공사 데이터 + 세금 환급 추이로 가늠

방한 중국인 관광객의 최신 소비 트렌드를 심층 분석하기 위해 과학적인 데이터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 우선 한국관광데이터랩으로부터 확보한 방한 외국인 국적별 통계 자료를 통해 중국인 관광객 수의 변화 추이를 정밀 분석했다. 더불어 글로벌텍스프리로부터 제공받은 2024년, 2025년 1분기 중국인 관광객 대상 텍스리펀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전체 소비 규모, 업종별 씀씀이 변화 등을 구체적인 수치로 도출했다. 글로벌텍스프리는 외국인 관광객 대상 텍스리펀드 사업자로 시장점유율 70%에 육박하는 해당 분야의 국내 1위 업체다. 이 회사 데이터는 관광객의 실제 소비 중 세금 환급이 가능한 구매액을 집계하므로 중국 관광객의 소비 트렌드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기사에서는 ‘총 판매 금액’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해당 기간 동안 외국인 관광객이 구매한 상품 중 텍스리펀드가 이뤄진 품목의 판매액 총액을 뜻한다. 참고로 글로벌텍스프리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1297억원, 영업이익은 218억원을 기록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9호 (2025.05.14~2025.05.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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