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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한 요즘 세대 사랑법...大소개팅의 시대 [스페셜리포트]

  • 나건웅,문지민,정혜승
  • 기사입력:2025.05.09 13:12:53
  • 최종수정:2025.05.09 13: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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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3일 오후 7시 서울 지하철 건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파티룸. 젊은 남녀 수십 명이 한데 모여 짝을 찾는다는 ‘로테이션 소개팅’이 한창이다. 한 테이블에 남녀가 둘러앉아 30분간 대화하고, 이후 남성 참가자만 일어나 다른 테이블로 옮기는 식이다. 의외로 여성 참가자가 더 많았다. 나이와 직업이 각양각색인 남성 12명, 여성 15명이 4개 테이블에 나눠 앉았다. 각자 자리 앞에는 본인이 스스로 정한 닉네임 이름표가 놓여 있다. 어색함도 잠시뿐. 얼마 안 돼 참가자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MBTI부터 이상형, 연애관 등.

서로 어색함을 떨칠 수 있는 여러 소품도 마련돼 있다. 예를 들어 ‘밸런스 게임 카드’다. ‘술만 마시면 연락 끊기는 애인’과 ‘술만 마시면 오열하면서 전화하는 애인’ 중 나은 선택지를 고르고 이유를 설명하는 식이다. TV에서나 볼 수 있던 ‘사랑 싸움’이 눈앞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남성 2명이 한 여성을 지목하는가 하면, 여성에게 관심을 받은 남성이 다른 여성에게 연락처를 묻기도 했다. ‘기싸움’도 당연히. 다른 참가자에게 대뜸 “언니 몇 살이에요?”라고 묻는다든지, 남성 참가자가 서로 운동량을 과시하는 식이다.

모임이 끝나면 오픈채팅방에 입장, 주최 측에 오늘 관심이 갔던 사람의 닉네임을 보내면 된다. 서로 매칭이 성사되면 운영진은 두 사람만의 채팅방을 개설한 후 이름을 공개한다. 이날 기자를 지목한 이는 다행스럽게도 딱 1명 있었다. 다만 매칭에는 실패해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공무원이라고 밝힌 마루 씨(닉네임·31)는 “일반 소개팅은 중간에 주선자 눈치를 보느라, 마음에 들지 않는 이와도 데이트를 이어가야 한다. 반면 로테이션 소개팅은 그런 부담이 없고 비용도 저렴하다”면서도 “회전 초밥처럼 사람이 계속 돌려지는 통에 상대방을 깊게 알아보기 힘든 건 단점”이라고 말했다.

기성세대 머리에 박힌 흔한 관념은 이렇다. 요즘 젊은 세대는 연애를 ‘뒷전’으로 밀어놨다고. 본인 커리어와 개인 시간을 더 중히 여기는 탓에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결혼도 안 하고 출생률도 떨어졌다고 여기는 이가 많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만남의 방법이 달라졌을 뿐 오히려 과거보다 더 열심이라 봐도 무방하다. 한국 청년 사이에서 요즘 ‘소개팅 광풍’이 분다. 남녀 수십 명이 한데 모여, 한 번에 여러 사람을 알아가는 ‘로테이션 소개팅’이 성행한다. 소개팅 수요를 알아차린 여러 기업과 지자체, 심지어 종교단체도 남녀 주선에 열심이다. 과거와 달라진 ‘요즘 세대 사랑법’이다.

수십 명 남녀가 한데 모여, 짧은 시간 내 돌아가며 소개팅을 진행하는 ‘로테이션 소개팅’이 최신 트렌드다. 서로 어색함을 달래주기 위한 각종 게임이나 소품도 준비돼 있다. (비긴어게인 제공, 정혜승 인턴기자)
수십 명 남녀가 한데 모여, 짧은 시간 내 돌아가며 소개팅을 진행하는 ‘로테이션 소개팅’이 최신 트렌드다. 서로 어색함을 달래주기 위한 각종 게임이나 소품도 준비돼 있다. (비긴어게인 제공, 정혜승 인턴기자)

3시간에 20명…‘로테이션 소개팅’

심리팅·사주팅·결혼희망자팅 인기

최근 젊은 세대 만남의 장으로 급부상한 트렌드는 ‘로테이션 소개팅’이다. 익히 아는 소개팅과는 다르다. 과거 소개팅은 주로 지인 소개로, 또 일대일로 만나는 방식이 당연시됐다.

로테이션 소개팅은 기본이 ‘다대다’이다. 남녀가 적게는 4명, 많게는 100명까지 한자리에 모인다. 수십 개 테이블에서 남녀가 저마다 10분 남짓 짧은 만남을 갖고 다음 테이블로 이동한다. 서너 시간 동안 스무 명 가까운 이성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애프터 신청은 어떻게 할까. 보통 테이블을 옮기기 전, 짧은 만남 동안 느낀 점을 쪽지에 적어 상대방에게 전하게끔 한다. 마음에 들지 않은 상대에게는 단순히 느낀 점만, 마음에 든 이성이라면 쪽지에 자기 연락처까지 남긴다. 소개팅이 끝나고 참가자끼리 자연스레 ‘2차’로 모임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로테이션 소개팅 전문 업체는 벌써 국내 수백 개에 달한다. 와인바·카페·파티룸 등 장소를 제공해주고 만남을 주선하는 대가로 비용을 받는다.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사전에 조건을 거는 모임도 많다. 예를 들어 1990년생부터 2000년생까지로 나이대를 제한하거나 직장인 만남을 위해 재직증명서나 사원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모임에서는 키, 대기업·공기업 재직 여부, 자가 소유 여부 등을 따지기도 한다.

소개팅마다 다르지만 2만원에서 5만원 정도를 내면 모임에 참가할 수 있다. 전문 업체는 플랫폼을 통해 사람을 모은다. 네이버는 물론 ‘프립’ ‘문토’ ‘소모임’ 등 여가·커뮤니티 앱에도 입점해 있다. 참가자는 마음에 드는 지역과 장소, 모임 성향을 골라 참석하면 된다.

요즘 로테이션 소개팅 맛집으로 거듭난 곳은 취미·여가 플랫폼 ‘프립’이다. 올해 4월 기준, 프립 내 ‘소셜데이팅’ 관련 상품 수는 300개가 넘어섰다. 모임을 주도하는 호스트 수가 전년 대비 2배 넘게 늘어났고 소개팅·모임 카테고리 전체 매출은 같은 기간 200% 증가했다. 이용자 수도 2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뒀다.

임수열 프립 대표는 “로테이션 소개팅은 기존 일대일 방식보다 긴장감과 부담이 덜하다. 요즘 젊은 세대는 즉흥성과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 수요에 잘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2023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해 지금까지 130회가 넘는 와인파티 소개팅을 열었다는 ‘로꼬’ 관계자는 “꼭 연애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같은 고민을 가진 또래와 부담 없는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며 “특히 금요일 퇴근 후에 열리는 모임은 직장 생활이라는 공통 소재 덕분에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만남을 원해 모인 이들이라지만, 무작정 대화를 시작하라면 어색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대화 소재를 끌어낼 수 있는 ‘도구’다. 보통은 참석자에게 프로필 카드를 작성하게끔 만든다. 직업·나이·주소는 물론 본인 MBTI와 취미, 이성관 등을 적어낸 프로필 카드를 서로 교환하고 이를 중심으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취미 여가 플랫폼 ‘프립’에는 300개가 넘는 소셜 데이팅 상품이 입점해 있다.  (프립 홈페이지 캡처)
취미 여가 플랫폼 ‘프립’에는 300개가 넘는 소셜 데이팅 상품이 입점해 있다. (프립 홈페이지 캡처)

소개팅+자만추…장점 결합

요새는 여러 콘셉트를 자랑하는 ‘테마 소개팅’이 인기다. MBTI 결과를 중심으로 대화를 끌어가는 ‘심리팅’, 사주팔자 결과가 어울리는 사람끼리 모임을 구성해주는 ‘사주팅’, 미리 특정 에세이를 읽어오게 한 후 감상 교환을 위주로 진행하는 ‘에세이팅’, 게임을 통해 어색함을 풀고 각자 성향을 알아갈 수 있는 ‘보드게임팅’ 등이다.

이 밖에 함께 요리를 만들고 음식을 맛보며 공감대를 쌓아가는 ‘요리팅’, 기독교인끼리 모임을 갖는 ‘홀짝팅(홀리한 내짝)’, 술자리에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소맥팅’도 있다. 최근에는 참가자가 1박 2일로 지방 휴가지를 방문하는 ‘여행팅’도 생겨나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 모임 1650회, 참가자 수 1만5000명을 넘긴 소셜 모임 업체 ‘비긴어게인’의 백승지 대표는 “최근에는 빠르고 가벼운 만남보다 진지한 관계를 우선하는 ‘결혼희망자팅’에 대한 관심이 확실히 높아졌다. 운영진이 사전 검증을 해주는 덕분에 믿고 오는 분이 많다”며 “현재까지 우리 모임을 통해 결혼한 부부가 18쌍이나 된다. 사실 나도 로테이션 소개팅으로 현재 남편을 만났다”고 설명했다.

로테이션 소개팅을 장사에 활용해 매출을 높이는 자영업자도 있다. 기존에 와인바나 칵테일바, 카페, 파티룸 등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직접 소개팅을 주선하는 방식이다.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 고정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적잖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받은 파티룸은 로테이션 소개팅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서울 송파구에서 와인바를 운영하며 로테이션 소개팅을 주선하고 있는 한 자영업자는 “이색 소개팅 참가비로 매출을 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케팅에도 도움이 된다”며 “특히 소개팅이 좋은 만남으로까지 이어진 고객은, 그 다음부터는 확실한 단골 손님이 된다”고 말했다.

로테이션 소개팅에 3번 참가했다는 군인 최민석 씨(가명·31)는 “직업 특성상 주변에는 남자만 바글바글하다. 지인 소개에도 한계가 있었다”며 “한 번에 다양한 직군에 있는 여러 여성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불교도 소개팅에 진심이다. 조계종은 템플스테이 소개팅 ‘나는 절로’를 지난해부터 진행 중이다. 사진은 최근 경남 하동군 쌍계사에서 열린 나는 절로 행사 장면. (조계종 제공)
불교도 소개팅에 진심이다. 조계종은 템플스테이 소개팅 ‘나는 절로’를 지난해부터 진행 중이다. 사진은 최근 경남 하동군 쌍계사에서 열린 나는 절로 행사 장면. (조계종 제공)

기업·지자체·종교단체도 주선

은행권 소개팅, 불교는 ‘나는 절로’

대기업도 소개팅 열풍에 올라타는 분위기다. 외부 참가자를 대상으로 비용을 받고 소개팅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직원 복지 차원에서 내부 프로그램으로 소개팅을 기획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비교적 딱딱한 분위기의 은행권이 의외로 소개팅에 적극적이다. 젊은 직원 수요에 맞춰 사내 복지 일환으로 소개팅 행사를 마련하는 분위기다. 포문을 연 곳은 신한은행. 신한은행은 지난해 ‘슈퍼 쏠로’라는 사내 소개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참가자를 모집해 제주도에서 4박 5일 촬영을 마친 뒤,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총 10부작으로 방송했다. 회차마다 댓글이 100개 이상 달리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이후 은행권 소개팅 열풍이 유행처럼 번졌다. 하나은행은 솔로인 미혼 직원 20명을 대상으로 소개팅 프로그램 ‘사랑, 그게 뭔데’를 진행한 데 이어, 은행 VIP 고객 자녀를 대상으로 맞선을 주선하기도 했다.

급기야 ‘은행권 연합 소개팅’도 등장했다. KB국민·하나·우리은행은 각 사 미혼 남녀 직원을 대상으로 은행판 ‘나는 솔로’ 행사를 개최했다. 은행별 미혼 남녀 5명씩 총 30명이 참여했다. 선발된 최종 참가자는 하루 동안 단체 레크리에이션, 데이트 식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결혼 적령기 연령이 늦춰짐에 따라 재직 중 직원 미혼 기간이 과거보다 길어졌다. 미혼 직원 비율이 높아진 만큼 그들이 필요로 하는 복지에 대해 고민하다 소개팅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자체도 소개팅에 뛰어들었다. 지역 내 결혼과 출산율을 높여 인구 소멸을 막겠다는 취지인데, 한 해에 수천만원 예산을 투입할 정도로 진심을 다하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부산 사하구는 미혼 청년 만남 행사 ‘두근두근 사하 브릿지’ 사업을 운영 중이다. 사하 브릿지는 2040 남녀가 참가하는 1박 2일 소개팅이다. 사하구는 미리 참가 동기와 사하구 정착 의지, 연애·결혼 가치관, 직업 소신 등 내용을 물어 참가자를 선별한다. 돈도 준다. 커플 성사 시 데이트 비용으로 1인당 50만원을, 상견례 때는 준비금 100만원을, 결혼 땐 2000만원 축하금과 전세보증금 3000만원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전국 각지에서 소개팅 붐이다. 대전시는 최근 남녀 60명을 대상으로 ‘대전 썸타자’를 개최했다. 모임은 4월부터 6월까지 총 6회에 걸쳐 진행한다. 60명 공통모임 3회, 20명씩 소모임 3회를 주선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참가자 중 절반은 소상공인을 우선 선발한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지난해 10월 충남 논산 역시 ‘나도 솔로’라는 행사를 열어 커플 4쌍이 탄생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인 선샤인스튜디오에서 만 30세 이상 43세 이하 미혼 남녀 18명이 참가했다. 짝을 이룬 남녀가 결혼까지 하면 최대 700만원 청년 결혼축하금을 지급한다.

이 밖에도 대구 ‘너랑나랑 두근대구’, 전북 남원 ‘하늘이 무너져도 내 짝은 있다’, 경남 거창군 ‘오늘은 썸데이’ 등 여러 지자체에서 각종 미혼 남녀 커플 매칭 사업을 운영 중이다.

서울시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반포 세빛섬에서 개최한 ‘설렘 in 한강’은 100명 모집에 총 3286명이 신청했을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한강 요트 체험, 레크리에이션 게임, 1 대 1 대화, 칵테일 데이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해 총 27쌍 커플이 성사됐다. 올해 2월에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2번째 소개팅 행사인 ‘설렘, 아트나잇’을 개최하기도 했다.

종교단체도 커플 연결에 소매를 걷어 올렸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조계종)은 지난해부터 ‘나는 절로’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인기 연애 프로그램 ‘나는 솔로’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1박 2일 전국 각지 템플스테이를 통해 미혼 남녀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제공한다. 지난해 6차례 행사를 진행해 총 160명 만남을 주선했다.

올해 4월 경남 하동군 쌍계사에서 열린 ‘나는 절로, 쌍계사’에서는 참가자 24명 가운데 9쌍이 커플로 이어졌을 정도로 성사율이 높다. 선발된 참가자는 1박 2일 동안 한복을 입고 남성은 ‘차’, 여성은 ‘다’로 시작하는 가명을 사용해 행사에 참석했다. 오는 7월에는 봉선사, 11월에는 직지사에서 나는 절로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소개팅 문화가 각광을 받으면서 소개팅을 사업으로 연결시키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기업 중 한 곳이 롯데시네마 운영사 ‘롯데컬처웍스’다. 결혼정보회사 노블레스수현과 손잡고 지난해 4월 선보인 ‘무비플러팅’이 인기를 끌며, 벌써 1년 이상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다. 롯데시네마 프리미엄 상영관인 샤롯데관에서 남녀가 단체로 영화를 감상한 후 다대다 미팅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영화라는 소재를 통해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연출했다. 관객 감소로 위기를 맞은 극장 공간을 새롭게 활용하는 사례로 각광받는다. 롯데컬처웍스 관계자는 “영화라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 이어지는 만남과 전문 사회자가 진행하는 부담 없는 소개팅에 참가자 반응이 긍정적”이라며 “매 기수 높은 커플 성사율에 고객 관심이 급증해 정기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소개팅 시대는 앞으로도 ‘쭉’

철저한 신원 인증…시니어도 GO

최신 소개팅 트렌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뢰’와 ‘효율’이다. 오프라인 만남과 운영진 검증을 통해 신뢰를 보장받고 단기간 내 저렴한 비용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 효율을 챙긴다. 신뢰와 효율은, 결

혼까지 생각하는 진지한 만남의 전제이기도 하다.

팬데믹 이후 주춤했던 온라인 데이팅앱도 이런 트렌드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전통의 글로벌 강자 ‘틴더’는 최근 ‘진지한 관계’ 카테고리를 신설해 시장 확장을 꾀했다. ‘위피’는 신뢰도를 높이고자 시스템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인공지능(AI) 기반 신원 인증과 모바일 신분증 패스(PASS) 인증 시스템을 도입했다. 팀블라인드가 새로 선보인 데이팅 앱 ‘블릿’ 역시 확실한 신원 보장으로 인기다. 재직 중인 회사나 직업, 전문 자격증 등을 인증하고 나서야 블라인드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개팅 유행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색다른 테마를 입힌 단체 소개팅은 이미 대유행 중이다. 과거 젊은 세대가 단체 미팅을 꺼렸다면 요즘에는 놀이나 취미처럼 즐기는 방식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기성세대 만남에서 일대일 소개팅이 대세였다면, 앞으로는 이색 단체 소개팅이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개팅 트렌드는 앞으로 확장 여지가 더 남았다. 젊은 세대를 넘어 시니어 수요도 있기 때문이다. 중장년 취미 모임 플랫폼 ‘시놀’이 선두 주자다. ‘시니어 놀이터’의 약자로 올해 3월 기준 회원 수가 9만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인기다. 최근엔 5070 이성 친구 매칭 서비스 ‘시럽’을 선보이는가 하면 오프라인 만남을 진행하는 ‘5060 추억의 단체 미팅’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소개팅 만남이 결혼과 출생까지 이어질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정부·지자체가 소개팅에 나서는 이유도 결국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서지만, 소개팅 프로그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리어 혼인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다대다 소개팅처럼 기회가 늘 열려 있다고 생각되면,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만남을 포기할 수 있다”며 “성격이나 스펙 등을 더 깐깐히 따지게 되면서 결혼을 미룰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체험기 | 로테이션 소개팅 직접 해보니
오늘 밤은 ‘남자 9호’…TV 연·프가 눈앞에

지난 5월 2일 저녁, 오늘의 소개팅 장소인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한 와인바에 도착했다. 기자가 신청한 로테이션 소개팅은 1990년생부터 2001년생만 신청 가능한 모임. 직장명을 기입하고 명함과 신분증 이미지도 첨부해야 했다.

엄격한 사전 요건 탓일까, 이런 자리가 오랜만이어서일까. 다소 긴장한 상태로 입장했다. 당장 눈앞에 와인잔을 들이켜고픈 욕구가 간절했지만 ‘주량 이상 과음으로 다른 참가자에게 불편함을 주면 안 된다’는 사전 경고 안내문이 머리를 맴돌아 참아냈다.

매장 내 준비된 3개 테이블에 남자 셋, 여자 셋이 각각 자리를 잡았다. 30분간 대화를 나누다가 시간이 지나면 남자가 모두 일어나 다른 여성 세 명이 기다리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긴다.

오늘만큼은 ‘남자 9호’. 각자 와인잔에 지정받은 자기 번호와 MBTI를 적어야 한다. 와인잔이 이름표 역할을 하는 셈이다. 기자와 같은 MBTI가 적힌 와인잔을 손에 쥔 여성 한 분에게 자연스레 시선이 꽂혔다.

행사는 분위기를 풀어줄 간단한 게임으로 시작했다. 화면에 띄운 드라마 속 장면을 보고 대사를 맞추는 게임이다. 기자가 속한 테이블이 1등을 해 경품으로 와인 한 병을 얻었다. 그간 드라마를 열심히 본 보람을 이런 데서 느끼다니.

이후 본격적인 테이블별 활동이 시작된다. 게임의 연속이다. 악어 이빨을 한 사람씩 눌러 입이 닫히면 걸리는 복불복 게임을 시작으로, 카드에 적힌 질문에 답하면 옆 사람에게 장난감 폭탄을 넘길 수 있는 게임 등 다양한 게임이 이어진다. 폭탄을 손에 들고 있을 때 터지면 벌칙으로 와인 한 잔을 마셔야 한다. 일부는 벌칙을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테이블을 옮기고 나서도 게임이 계속됐다. 잘 몰랐는데 오늘 콘셉트는 ‘게임팅’인가 보다. 거짓말 게임, 귓속말 게임 등 대학 시절 갈고닦은 술게임이 소개팅 용도로 총출동한다. 테이블을 돌다 보니 세상이 참 좁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알게 된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것으로 추정되는 남녀부터 지인이 겹치는 사례까지 ‘세상에 이런 일이~’ 속출했다.

정신없이 놀고 마시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모두 지났다. 이제 선택의 시간. 3개 테이블을 거치며 만난 이성 중 한 명을 선택해 종이에 적어서 낸다. 매칭 결과는 다음 날 문자로 통보된다. 오늘 걱정은 내일로 미루고, 곧바로 2차 모임이 진행된다. 20명 참가자 중 남자 5명, 여자 6명 총 11명이 2차에 참석했다. 비용은 갹출. 이때는 주제 제한 없이 자유로운 대화가 이어진다. 즐거운 분위기 속 2차 모임을 마치니 시간이 어느덧 밤 11시 30분이다.

다음 날 오전 11시경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남자 9호와 여자 ○호가 매칭되셨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상대방 연락처가 담겨 있다. 매칭된 사람한테만 발송되는 메시지다. 화살표가 엇나가면 아쉽게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다. 고작 문자 한 통에 어깨가 하늘까지 솟는다.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이 번호로 연락을 할지 말지. 승자의 고뇌다. 문지민 기자

[나건웅·문지민 기자, 정혜승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9호 (2025.05.14~2025.05.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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