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놀고, 똑똑하게 일하세요.”
미국 남부의 명문인 벤더빌트 대학교 커샌드라 사이벨 레이버 부총장이 한국의 학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요. 벤더빌트 대학은 요즘 한국 학생들을 유치하는데 관심이 많답니다.
K팝과 K컬쳐로 미국에서 한국 문화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어요. 또 미국에 유학을 간 한국 유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도 한층 높아지면서 한국에서 유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문호를 넓히고 있답니다. 레이버 부총장이 한국을 찾은 이유도 한국의 대학들과 탄탄한 협력 관계를 맺어 많은 학생들을 벤더빌트 대로 유치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그래서 레이버 부총장을 직접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미국 사립대학 부총장이라니, 평소에는 전혀 마주칠 일이 없을 법한 높은 사람이라 긴장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매우 친절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습니다.
밴더빌트대가 위치한 미국 남부는 대체로 보수적이기로 알려진 지역이에요. 먼저 밴더빌트대도 비슷한 분위기인지 물어봤습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어요. 우리는 다양한 관점과 의견의 힘을 믿습니다. 하나의 문제를 하나의 방식으로만 접근하지 않죠. 그리고 학생들이 아주 창의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절제력도 중요해요. 한 가지 문제에 대해 끈질기게 생각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길 바라죠. 그런 면 때문에 다소 보수적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그는 지역과 학교 분위기는 다르다고 답했습니다. 부총장은 한국 학생들과의 교류에 대한 기대를 전했는데요.
“한국 학생들이 밴더빌트를 더 잘 알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관계를 넓혀가고 싶어요. 한국 고등학생들이 진학을 고려하는 학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밴더빌트를 하나의 기회로 보고, 그 가능성에 기대를 품게 되면 좋겠어요. 저는 부총장으로서 저희가 한국 학생들에게 매우 열려 있고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다는 걸 꼭 알려드리고 싶어요.”

아주 따뜻한 환영의 말이네요. 그렇다면 밴더빌트는 어떤 학생을 선발할까요?
“학문적으로 우수한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재미를 느끼는 것도 중요해요. 예를 들어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축구 경기를 보러 가는 것이나 새로운 동아리나 사업을 시작하는 것 등에 대해 흥미를 가지기를 원해요. 또 혁신적이면서 창조적인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학생을 높이 평가합니다.”
공부에 찌든 학생은 유학을 가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어요.
“밴더빌트대는 또 고등학교 시절에 리더십을 발휘한 학생들을 많이 받아들여요. 그런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직접 동아리를 만들기 때문에, 체육부터 고급 음식(fine dining) 만들기까지 온갖 종류의 동아리가 있죠.”
제가 “Play hard, work smart(열심히 놀고, 똑똑하게 일하라)”라는 말이 떠오른다고 하자, 부총장은 “그렇죠” 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밴더빌트 대학에는 약 7000명의 학부생과 약 6000명의 대학원생이 있고, 그 중 약 11~12%의 학생이 유학생이라고 합니다.
“우리 학교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비율이 거의 반반이어서 좋아요. 대학원생과 학부생이 서로의 멘토가 될 수 있죠. 서로서로 가르치는 문화예요. 누군가가 앞서 나가야 다른 학생이 잘 되는 구조가 아니에요. 누군가가 잘 됐다는 건, 팀 전체가 함께 잘 해냈다는 뜻이니까요.”
경쟁보다는 협력을 중시하는 분위기의 학교네요. 유학생이 어떻게 학교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지도 물어보았습니다.
“우리 학교에는 유학생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미국 학생들이 많아요. 학부생들 모두 기숙사에 거주하기 때문에 유학생들도 물론 같이 지내죠. 그래서 학부생들은 같이 살면서 같이 놀고 같이 공부하죠. 예를 들어 인도 학생들은 빛의 축제인 디왈리를 열어요. 학생 식당 중 한 곳에선 쌀국수가 나오고, 다른 곳에선 불고기가 나오죠. 한국만큼 맛있지는 않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우리는 모두에게 소속감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거에요. 소속감은 우리 학교가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이고, 문화고, 가치예요.”
대학에서는 교외 활동도 중요하지만 진로 준비도 빼놓을 수 없죠. 밴더빌트대에서는 취업과 관련하여 어떤 준비를 할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밴더빌트에서는 인턴십 경험을 적극 권장해요. 관심 있는 산업이나 기업의 문화를 실제로 경험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습니다. 밴더빌트에는 ‘원드리(Wond’ry)’라는 협업 공간이 있는데, 여기에는 학생들이 스타트업에 대해 생각해보고 제품 제작·디자인·시장 분석·사용자 경험까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돕는 리더들이 있어요.”
대학 안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어요. 그렇다면 밴더빌트의 미국 학생들은 한국에 관심이 많을까요?
“요즘에는 한국에 관심을 갖는 미국 학생들의 수가 예전보다 훨씬 늘어났어요. 그 이유는 한국 산업이 발전한 것도 있지만 K문화의 영향도 커요.”
이야기가 K팝으로 이어지자 레이버 부총장은 밴더빌트의 음악대학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작곡을 가르치는 교수진, 록 음악 산업의 비즈니스를 가르치는 교수진 등이 있어 다양한 수업을 받을 수 있다고 해요.

레이버 부총장은 밴더빌트가 이번에 ‘융합컴퓨팅대학(College of Connected Computing)’을 새로 신설하게 되었다고 소개합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과 연결하여 배울 수 있는 곳이라는데요.
요즘은 AI가 큰 화두죠. 밴더빌트에서는 AI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물어봤어요.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에요. 처음에 생성형 AI가 나왔을 때는 많은 교수가 사용을 두려워했죠. 하지만 우리는 완전히 달랐어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하기를 원했죠. 물론 출처는 밝히고요. 기존 논문이나 책을 인용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AI는 위협이 아니라 우리의 파트너죠. 어떤 분야든 AI와 함께하는게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니까요.”
AI 사용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밴더빌트에서는 똑같은 기술을 사용해 조직의 병리 진단을 하기도 하고, 고대 문명의 유적을 탐사하기도 해요. 우리는 밴더빌트가 이런 창조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대학으로 잘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AI가 어떻게 교육의 미래를 바꿀지도 물어봤어요.
“우리는 학생들이 AI를 창의적, 그리고 윤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교육할 책임이 있어요. AI의 기회와 비용 모두 이해해야 하죠. 그래서 우리는 인간 간의 교류(human interaction), 문학, 음악, 미술도 가르쳐야 해요. 기술과 인문학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죠.”
그는 ‘인간 간의 교류’와 ‘균형’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강조했어요. 하지만 그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보다는 무척 긍정적이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항상 새로운 기술에 대한 걱정이 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는 아이들이 TV를 너무 많이 보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요. 또 처음 자전거가 나왔을 때는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다칠 거라고 걱정했죠. 하지만 우리는 기술을 익힌 후에 균형을 찾는 방법도 함께 배우게 돼요.”
한국 청년들이 걱정하는 실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물어봤는데요.
“실업률이 10%라 해도 10명 중 9명은 일자리를 갖는다는 뜻이에요. 많은 학생들이 취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직장을 갖게 돼요. 미래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고 큰 그림을 계속 보아야 해요.”
정말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관점이죠? 마지막으로 청소년 독자들이 눈앞에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지 물어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아직 여러분이 보지 못한 많은 기회가 있어요. 지금은 힘들더라도 그 기회가 언젠가 열릴거에요. 인내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문이 열리거든요. 미국 대학생들은 전공을 진로 가능성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학생들을 지켜보면 흥미와 능력이 2~3년만에 바뀌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기대하지 못했던 문이 열리는 거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아주,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흥미로우면서도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요. 저도 한 시간 동안의 대화를 마친 뒤 마음이 한층 더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마지막까지 긍정적이고 따뜻한 메시지를 전해준 레이버 부총장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