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동구에 때 아닌 ‘신선식품 전쟁’이 펼쳐졌다. 올해 1월 롯데마트가 식료품 특화점 ‘롯데마트 천호점’을 오픈한 지 3개월 만인 올해 4월 이마트 역시 신석식품 특화매장인 ‘이마트 푸드마켓 고덕’을 인근 명일동에 새로 개장했기 때문이다. 두 점포는 차로 달리면 1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위치했다.
4월 22일 늦은 6시, 이마트 푸드마켓 고덕을 찾았다. 이마트가 5년 만에 처음 내놓는 서울 매장이자 신선식품‘만’ 판매하는 독특한 점포다.
입구부터 ‘신선’을 강조한 배치에 시선이 절로 간다. 색감이 튀고 향기가 강한 파인애플과 오렌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덕점 하이라이트인 ‘수산·축산 코너’가 나온다. 인기 상품을 따로 구성해 초저가에 판매하는 ‘상품 특화존’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이날은 축산엔 ‘K-흑돼지존’, 수산엔 ‘연어의 모든 것’이라는 이름으로 특화존이 구성돼 있다. 매장서 만난 60대 남성 장대현 씨(가명)는 “모르긴 몰라도 쿠팡이 더 쌀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이곳 가격도 합리적인 데다 직접 보고 사니까 훨씬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어느덧 늦은 7시. 자동차로 10분을 달려 롯데마트 천호점을 방문했다. 이마트와 가장 큰 차이점은 상품 구성이다. 전체 매장 상품 중 80% 이상이 식료품이고 나머지 20%는 펫용품이나 주방용품 등이 차지한다. 롯데마트 천호점에서 사람이 가장 많았던 곳은 ‘오늘 뭐 먹지’ 코너다. 부대찌개·된장찌개·샤브샤브·야채곱창 등 테마형 밀키트를 진열해 파는 곳이다. 이곳에 진열된 냉동 간편식 판매 품목은 500여개로 일반 롯데마트 매장 대비 70% 많다. 천호동에 거주하는 50대 남성 김종일 씨는 “신선식품이 잘돼 있고, 주방용품 살 때도 편리해 자주 방문한다. 대량으로 구매하면 온라인과 가격 차이도 나지 않아 만족한다”고 귀띔했다.
‘신선식품’이 한국 유통 업계 화두로 떠올랐다.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신선식품 강화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오프라인은 신선식품 특화매장을 잇달아 열고 있고 이커머스 기업 역시 제품군 강화에 여념이 없다.
‘신선식품 전쟁’의 도화선이 된 건 역시 쿠팡이다. 쿠팡은 신세계·롯데 등 전통의 유통 강호를 누르고 국내 매출 1위 유통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쿠팡 약진에 힘입어 국내 온라인 쇼핑 매출은 지난해 처음으로 오프라인을 넘어섰다. 대형마트·백화점 등 오프라인 채널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하지만 쿠팡을 넘어설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가격 경쟁력은 물론 취급 상품 수, 배송 속도, 멤버십 혜택까지. 뭐 하나 쿠팡을 이길 만한 구석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프라인 유통이 주목한 영역이 바로 ‘신선식품’이다. 제품 상태를 꼼꼼히 따지지 않는 공산품과 달리, 식료품은 신선도를 매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구입하길 원하는 소비자가 많다. 이 때문에 국내 유통을 평정한 쿠팡도 유독 신선식품 카테고리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쿠팡, 그리고 다른 유통 기업과 경쟁하는 이커머스 기업도 생존을 위해 신선식품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양상이다. 네이버는 신선식품·새벽배송 강자 컬리와 협업을 확정하며 신선 경쟁에 뛰어들었다. 컬리 지분 인수도 검토 중일 정도로 적극적이다. 오아시스마켓은 티몬 인수로 새 판을 짜겠다는 계획이다.


오프라인 활로는 ‘신선식품’뿐
마트·백화점·편의점 앞다퉈 경쟁
오프라인 유통은 요즘 채널을 가리지 않고 ‘신선식품’ 확장에 주력한다.
가장 힘을 주는 채널은 대형마트다. 신선식품 외에는 매출 확대를 위한 활로가 없다시피 하다. 공산품 가격 경쟁력은 이커머스에 밀린 지 오래고 백화점처럼 고급화 전략을 구사할 수도 없다. 편의점에는 접근성 면에서 뒤진다. 더구나 신선식품은 마트가 가진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역이다. 대규모 영업망과 물류망을 통해 신선한 식자재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확보 가능하기 때문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신선식품을 앞세운 특화점을 선보이는 중이다.
이마트는 ‘이마트 푸드마켓’이라는 신선식품 특화매장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해 12월 대구에 문을 연 ‘이마트 푸드마켓 수성점’이 1호점이다. 삼겹살·양파·오징어 등 신선 10대 품목을 최저가로 판매하는 게 특징이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최근 5개월 동안 초기 매출 계획 대비 델리(완성요리)는 115%, 채소는 110%, 과일은 100% 넘게 팔렸다.
가능성을 확인한 이마트는 올해 4월 서울 강동구에 ‘이마트 푸드마켓 고덕점’을 추가로 열었다. 식품 종류만 1만3000개를 배치, 수도권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이마트 관계자는 “신선식품 중에서도 델리 상품군 매출 상승률이 폭발적이다. 외식 물가 상승으로 저렴하게 한 끼 해결을 원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마트도 맞불을 놨다. 올해 1월 식료품 특화매장 ‘롯데마트 천호점’을 선보였다. 천호점 외에도 전 매장에 걸쳐 신선식품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시장 반응은 벌써 뜨겁다. 올해 1분기 기준 롯데마트 전체 과일 매출은 약 5%, 축산과 수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 10%씩 늘었다. 특히 같은 기간 한우는 20% 매출 상승을 보였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오프라인 매장은 물론, 영국 리테일테크 기업 오카도와 협업해 만든 식료품 전용 앱 ‘롯데마트 제타’ 등을 통해 신선식품 시장을 지속 공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킴스클럽은 ‘산지 직매입’으로 차별화 중이다. 도매상 등 중간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고 산지 농가와 직계약을 늘려, 유통 마진을 줄이고 신선도가 높은 상품을 확보하고 있다. 성과도 있다. 식자재 매입 전문 법인인 이랜드팜앤푸드 매출은 2023년도 1378억원에서 지난해 3085억원으로 2배 이상 성장했다. 각 매장에서 신선식품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다.
대형마트뿐 아니다. 이제는 백화점도 신선식품 전쟁에 뛰어들었다. 프리미엄 식품 상품군을 늘려 고객을 매장으로 불러오겠다는 전략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2월 강남점 식품관 내에 식료품 전문매장 ‘신세계마켓’을 개장했다. 한 달 누적 방문객 40만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해당 기간 강남점 식품관 매출은 전년 대비 34% 증가했고, 결제 건당 평균 구매액도 1.5배 늘었다. 신세계백화점 측은 “해외 프리미엄 상품과 초신선식품 등을 강화한 전략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롯데백화점 역시 식품관 리뉴얼에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인천점이다. 지난해 12월 인천점 지하 1층에 2000평 규모 미래형 식품관 ‘푸드에비뉴’를 새롭게 선보였다. 국내외 최고급 식재료를 판매하는 ‘레피세리’, 전 세계 2000여종 와인을 한자리에 모은 와인관 ‘엘비노’ 등 프리미엄 매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개장 1년 만에 누적 방문객 1000만명을 기록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현대백화점은 아예 자체 식품 브랜드를 내놨다. 프리미엄 돈육 브랜드 ‘현대 셀렉티드 포크’를 올해 3월 말 공개했다. 1등급 이상 암퇘지만을 선별해 100% 무항생제·저탄소 인증 등 엄격한 자체 품질 기준을 적용했다.
매출 성장이 둔화된 편의점도 신성장동력으로 신선식품을 점찍었다. CU는 1~2인 가구를 겨냥한 ‘싱싱생생 990원, 1990원 채소’ 시리즈를 판매한다. 양파·대파·마늘·당근 등 한국인 밥상에 자주 오르는 상품을 소분해 990원 또는 1990원으로 판매한다. 소규모 가성비 제품으로 장보기 수요를 끌어오겠다는 복안이다. CU 신선식품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GS25는 지난해 1월부터 신선식품 PB 브랜드 ‘리얼프라이스’를 도입했다. 계란·고기·두부·콩나물·우유 등 신선식품을 시중 평균가보다 20~30% 저렴하게 판매한다. GS25 지난해 전체 신선식품 매출은 전년 대비 256% 증가했다. 리얼프라이스 제품군은 2024년 1분기 대비 올 1분기 매출이 300% 증가하며 전체 판매 성장을 견인했다.

온라인도 신선식품 전쟁 중
컬리 잡은 네이버, 티몬 인수 오아시스
온라인도 신선식품 전쟁터다. 이커머스 1위 쿠팡을 잡기 위한 카드로 너 나 할 것 없이 신선식품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최근 별도 쇼핑 앱을 내놓는 등 커머스 강화에 여념이 없는 네이버가 대표 주자다. 네이버는 최근 신선식품 강자인 ‘컬리’와 전략적 동맹을 맺으며 잰걸음에 나섰다. 올해 안으로 컬리를 네이버 플러스스토어에 입점시키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는 컬리 앱 없이도 네이버 쇼핑 앱을 통해 컬리가 다루는 신선식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인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멤버십과 결제, 퀵커머스 등 연계 가능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컬리 협업으로 네이버는 ‘상품군 확대’ 그 이상의 효과를 기대 중이다. 그간 쿠팡 대비 네이버 한계로 지목돼오던 새벽배송 물류망을 얻게 된 덕분이다. 컬리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선식품 새벽배송 서비스 ‘샛별배송’을 도입한 회사다. 한편 컬리 역시 네이버라는 대형 채널을 통해 이용자 수 확대를 노릴 수 있다. 네이버는 현재 컬리 지분 약 10%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흑자 경영으로 유명한 신선식품 강자 ‘오아시스마켓’은 외형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오아시스마켓을 운영하는 오아시스는 티몬 최종 인수 예정자로 선정됐다. 그간 신선식품에 집중했던 오아시스가 종합 오픈마켓 사업에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신선식품 배송 강화에도 나섰다. 오아시스마켓은 올해부터 새벽배송 서비스 지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새벽배송 권역에 지난해 7월 세종시, 올해 3월 대전을 추가한 데 이어 최근에는 충남 공주시까지 확장했다.
변수가 하나 더 있다. 그간 신선식품 배송 대행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팀프레시가 자금난으로 새벽배송 서비스를 일시 중지했다. 기업 간 거래(B2B) 물류망에 공백이 생긴 상황에서 쿠팡·컬리·오아시스마켓 등 B2C 강자가 B2B 쪽으로 침투할 여지가 생겼다.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 신선식품 경쟁 판도가 아예 새롭게 짜이는 모습이다. 기존엔 컬리, 오아시스마켓, 쓱닷컴 정도였지만 쿠팡과 덩치에서 게임이 안 됐다. 하지만 이제는 네이버+컬리, 오아시스+티몬 등 연합군 탄생으로 더 치열한 승부가 예고된다”고 말했다.
쿠팡도 경쟁자 추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다. 올해 2월 고품질 신선식품을 내세운 ‘프리미엄 프레시’를 새로 선보였다. 기준을 높여 엄격하게 선별한 과일·수산·채소·정육 상품을 별도 카테고리에서 판매 중이다. 예를 들어 정육 부문에서는 1++등급 한우 브랜드 제품을, 계란은 자유방목 1번란 브랜드만 제공하는 식이다.
인기에 힘입어 상품군도 확대 중이다. 2월 당시 상품 가짓수 500여개에서 최근 950여개로 늘렸다. 인기 신선식품 품목은 ‘고등어밥상 가시제거연구소 고등어’ ‘상하목장 유기농인증 우유’ ‘존쿡 델리미트 사각 잠봉’ ‘소금집 잠봉 햄’ 등이다. 백화점에서 주로 취급했던 프리미엄 제품군까지 쿠팡이 넘보는 셈이다.

신선식품 전쟁의 향방은
오프라인 ‘배송’, 온라인 ‘신뢰’ 문제
신선식품 전쟁은 계속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외식 물가 상승으로 식자재 수요가 증가했고 저속노화 열풍에 힘입어 제철 식재료와 다양한 건강 식자재를 원하는 소비자가 늘었다.
기업 수익 면에서도 신선식품 확대가 유리하다는 의견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장은 “신선식품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수·축산물은 과거부터 유통 구조가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중간 물류 마진이 붙으면서 가격이 오르는 구조”라며 “신선식품 취급량 자체가 늘어나고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기업이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최종 승자는 누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오프라인이 신선식품 쪽에서 갈수록 강점을 가질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배송보다는 품질을 중요시하는 소비자 성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고 오프라인 채널 간 ‘구매 통합’을 통해 가격 경쟁력도 점차 키워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욱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책임 소재가 다르다는 점도 오프라인 채널에는 유리한 점이다.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 구매 시 온라인은 판매자 책임, 오프라인은 소비자 책임이라는 구조 차이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품질 신뢰도가 높은 오프라인 채널로 이동이 더 활발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온라인에서는 쿠팡, 오프라인에선 이마트 손을 들어주는 이가 많다. 이유는 역시나 ‘규모의 경제’다. 쿠팡은 이미 수많은 소비자를 확보했고 그간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직접 물류배송 인프라를 갖춰놨다. 상품 경쟁력인 가격·배송 면에서 경쟁자가 넘어서기 힘든 구조다. 이마트도 비슷하다. 대형마트 중 매장 수가 가장 많고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까지 통합 운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영학과 교수는 “상품 소싱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성공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도 특화몰보다는 쿠팡·네이버 같은 종합몰이, 오프라인도 덩치가 큰 대기업 경쟁력이 더 높아질 것”이라며 “결국 비용을 낮출 수 있는 통합 운영 역량이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건웅·반진욱 기자 정혜승·정수민·지유진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7호 (2025.04.30~2025.05.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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