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 엔화 매수세…지난해 블랙먼데이 사태와는 달라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달러의 지위가 하락하며 대체 투자자산인 엔화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겹치며 한동안 잠잠했던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21일 오후 2시 30분 현재 달러· 엔 환율은 140.6엔을 기록 중이다. 장 초반 141엔대 중반으로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일본은행의 깜짝 금리 인상 직후 일시적으로 시장이 패닉에 빠졌던 지난해 8월 5일 ‘블랙먼데이’ 때(146엔대)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급격한 엔화 강세로 대규모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일본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국가 자산에 투자해 차익을 거두는 전략이다. 하지만 금리 차가 줄거나 엔화가 급등하면 손실이 발생한다. 특히 엔화가 갑작스레 강세로 전환되면 투자자들은 보유 포지션을 급하게 청산하는데, 대규모 청산이 시장 전체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으로 달러 지위는 전례 없이 추락한 상황이다. 지난 20일(현지 시간)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미국 달러 가치를 뜻하는 달러인덱스는 장중 한때 98.25까지 밀렸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인 지난 1월 13일 장중 한때 110.18까지 치솟았다 관세 전쟁 본격화로 3개월 새 10.8% 폭락했다.
시장에서는 대체 안전자산으로서 엔화가 주목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상호관세 방침을 발표한 2월 말부터 달러· 엔 환율은 150엔 선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엔화 강세에 달러 등 기타 통화 자산을 팔고 엔화를 매수한 투자자도 늘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가능성도 엔화 강세에 불을 지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최근 “현재 실질금리가 매우 낮다”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재차 시사했다. BOJ가 금리 인상 기조를 강화할 경우 일본계 은행의 해외 대출이 줄고, 일본 투자자의 해외 투자금이 본국으로 환류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신흥국 금융 시장은 외국인 자금 이탈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지난해 8월 블랙먼데이 같은 급작스러운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을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당시 엔화 강세를 예상하지 못했던 투자자들이 엔화를 급격히 매수하면서 글로벌 금융 시장이 출렁였지만, 이번에는 시장이 선제적으로 엔화 매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국제국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엔 캐리 트레이드 수익률 변화와 청산 가능 규모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전체 엔 캐리 자금 잔액은 506조6000억엔(3조4000억달러·4708조원)에 달했다. 이 중 6.5%인 32조7000억엔(약 304조원)이 단기간 내 청산 가능하다고 분석됐다. 만약 이 자금이 대거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글로벌 증시와 외환 시장 충격은 불가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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