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에선 로봇 열풍이 뜨겁다. 미국에선 엔비디아가, 한국에선 삼성전자가 쌍두마차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CES 2025 기조연설에서 “2023년 챗GPT처럼 로봇 시대가 오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AI 소프트웨어 ‘그루트’를 내놓은 엔비디아는 2025년 상반기 중 로봇용 컴퓨터 ‘젯슨토르’를 선보인다. 삼성전자는 국내 최초 2족 보행 로봇 ‘휴보’ 개발사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을 35%까지 끌어올리고 로봇사업부를 별도로 신설하는 등, 로봇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로봇 사업을 강화한다는 소식에 레인보우로보틱스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AI를 탑재한 로봇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가운데 숨겨진 ‘로봇 보석주’가 ‘인튜이티브서지컬(Intuitive Surgical·ISRG)’이다. 이 기업은 전 세계 수술용 로봇 시장 1위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로봇이 월가 테마로 떠오르자 인튜이티브서지컬 주가는 크게 올랐다. 지난해 4월 360달러 수준이었던 주가는 2월 12일 기준 589달러까지 수직 상승했다.


보수적인 의사와 병원
쓰던 제품 계속 쓰는 경향
수술용 로봇은 성장세가 뚜렷한 시장이다. 리서치 기업 모도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수술용 로봇 시장 규모는 2024년 76억달러(약 11조830억원)에서 2029년 117억6000만달러(약 17조1500억원)로 커진다. 이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9%에 달한다.
인튜이티브서지컬은 1995년 설립됐다. 2000년 세계 최초 수술용 로봇 ‘다빈치 수술 시스템(da Vinci Surgical System)’이 FDA 승인을 받으면서 폭풍 성장해왔다. 현재 시장점유율은 80% 안팎에 달한다.
다빈치는 초기 기본 모델(S/Si)을 거쳐 5세대까지 진화했다. 지난해 3월 FDA 승인을 받은 5세대는 기존 4세대(X/Xi)보다 수술 적용 범위가 넓어졌고 정밀도는 높아졌다. 최근 선보인 다빈치 5세대의 기세가 매섭다. 아직 미국 시장만 선보였는데도 2024년에만 362대가 팔렸다. 이미 2500명 이상 외과 의사가 40종 이상 시술에 이용하는 등 빠르게 시장을 키워가고 있다. 과거 수술 로봇 신형 모델의 1년 차 판매량은 Xi는 206대, Si는 218대 수준이었는데 두 모델보다 100대 이상 많이 팔렸다.
수술용 로봇은 특히 복강경 수술에서 톡톡히 역할을 해왔다. 복강경 수술은 작은 구멍을 뚫은 뒤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공간을 확보하고 도구를 삽입해 수술을 진행한다. 개복 수술(배를 칼로 절개해 복강 내 장기를 치료하거나 제거하는 방식)보다 통증과 상처가 적고 회복 기간이 짧다. 복강경 로봇 수술은 1~2㎝ 크기만 절개하는 ‘최소 침습’과 ‘정교함’이 강점이다. 로봇 팔은 인간 손보다 섬세하다. 손떨림도 없어 정밀하고 안전한 수술이 가능하다.
인튜이티브서지컬 제품 라인업도 다양하다. 다빈치는 복잡한 수술에 맞게 4개의 로봇 팔(arm)로 구성됐다. 다만 간단한 수술에서 많은 팔은 수술 도구 간 충돌로 되레 위험을 부른다. 이런 필요성에 따라 2018년에는 단일공 수술 로봇인 ‘다빈치 SP(단일 포트)’를 내놓았다. 하나의 로봇 팔에 카메라와 수술 도구를 동시에 장착한 형태다. 비뇨기과와 두강경(두개골, 경추 등) 관련해 FDA 승인을 받았다. 또 다른 라인업으로 2019년 출시된 ‘폐생검(lung biopsy) 로봇’인 ‘이온(lon)’이 있다. 이 로봇은 최소 침습 방식으로 폐 조직을 채취해 폐암 등을 진단하기 위해 설계됐다. 폐암은 남자나 여자나 자주 걸리는 암 2위에 랭크돼 있을 만큼 흔한 암이라 수요가 탄탄하다.
수술용 로봇 시장에도 경쟁자가 있다. 대형 의료기기 회사 ‘메드트로닉’과 초대형 제약회사인 ‘존슨앤드존슨’이 뛰어들었지만 인튜이티브서지컬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메드트로닉의 경우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웠는데 수술 적용 부위가 제한적이다.
경쟁사 로봇 성능이 올라와도 또 다른 장벽이 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다빈치는 이미 오랫동안 사용돼온 만큼 외과 의사에게 익숙하고 사전 교육이 잘돼 있다. 이를 버리고 새로운 기기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선점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셈이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10억~27억원(약 7만~20만달러)에 달하는 고가 장비를 도입할 때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이 사용됐느냐’를 먼저 따진다.
한국에서는 2005년부터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다빈치 1세대’를 도입했다. 당시 국내 최초로 담낭절제술과 전립선절제술에 로봇 수술을 적용했다. 이후 다른 여러 병원에서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의 로봇 수술 누적 건수는 2013년 1만례(건)에서 2023년 기준 4만례로 크게 증가했다. 환자 10명 중 1명꼴이다. 2023년 말 기준 국내 로봇 수술 누적 시행 건수는 약 31만례로 추정된다.

제품·부품·서비스 3각 매출
구독 모델처럼 현금흐름 안정적
인튜이티브서지컬 사업 구조는 안정적이다. 사업 부문은 ① 다빈치 시스템(system) ② 부품 및 액세서리 (instrument) ③ 서비스(services) 등 3개다. ‘다빈치 시스템’보다 효자로 꼽히는 부문은 ‘부품 및 액세서리’다. 이 분야 2024년 매출액은 50억달러(약 7조3000억원)로 전년보다 19% 증가했다. 메인 제품을 10~15회 사용하면 안정성을 고려해 의무적으로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 로봇 팔 끝부분 등 교체해야 할 부품과 소모품이 많다. 이 분야가 인튜이티브서지컬의 진짜 주력으로 올라서는 셈이다.
서비스 분야 2024년 매출액은 13억달러(약 1조9000억원)로 전년 대비 12% 성장했다. 의사들에게 로봇 조작에 필요한 전용 프로그램과 가상 시뮬레이션 등을 제공한다. 또 교육과 유지보수도 진행한다. 서비스 분야는 다년 계약이 기본이라 매출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콘텐츠 기업처럼 구독 모델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라는 평가다.
김재임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인튜이티브서지컬을 의료 장비와 테크 분야에서 가장 유망한 우량주로 판단한다”며 “전반적인 로봇 수술 증가에 따른 수혜와 다빈치5로의 업그레이드가 빠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급등한 주가는 부담이다. 목표주가 590달러를 제시한 김충현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다빈치 5세대 기세가 매섭지만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기준 68배로, 경쟁사(37배)나 지난 5년 평균(52배) 대비 높은 편”이라며 중립 의견을 냈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7호 (2025.02.19~2025.02.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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