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현대미술 작가 브라운의 국내 최대 규모 회고전인 '앨리스 달튼 브라운 회고전: 잠시, 그리고 영원히'가 오는 9월 20일까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현대 서울 6층 ALT.1에서 개최된다.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70여 년에 걸친 작가의 예술 여정을 총망라하는 전시로, 원화 100여 점을 포함해 드로잉·소품·사진 자료 등 총 1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MBN과 MBN 미디어랩이 주최하고, 전시기획사 CCOC(씨씨오씨)가 기획·주관했다.

특히 이번 출품작의 절반 이상은 작가가 특별한 의미를 두고 개인적으로 소장해왔던 작품들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브라운의 파트너 갤러리로 이번 회고전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해온 THEO(띠오)의 김현민 대표는 "작가가 아카이빙 목적으로 소장해왔던 작품들이 전시작의 60% 정도 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시기별 작품을 두루 조명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처음으로 공개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4개 섹션에 걸쳐 브라운이 평생 지속해온 화업을 연대기순으로 펼친다. 1961~1978년 농가의 풍경과 가족을 주제로 한 초기 작업을 펼치는 '섹션1: 시작된 순간(Early Works)'을 시작으로 작가가 집의 풍경을 그리며 자신만의 화풍을 본격적으로 구축해 나가던 시기인 1979~1996년 작업을 선보이는 '섹션2: 탐색과 전환(Transitional Works)', 빛과 공간이 회화의 중심 언어로 등장하는 1998~2019년 성숙기 대표작들로 구성된 '섹션3: 깊어진 시선(Mature Works)', 한층 더 내면적이고 감각적인 세계로 작업을 확장한 2020년 이후 근작을 소개하는 '섹션4: 잠시, 그리고 영원히(Recent Works)'로 이어진다. 작가의 작업실을 옮겨놓은 듯 꾸며놓은 방에선 작가가 실제로 사용했던 물감과 붓 등을 볼 수 있다.

브라운의 작품에서는 창문과 벽, 계단, 문 같은 건축적 요소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초기 작업에서 어두운 색조와 강한 명암 대비가 특징인 고전적 사실주의 양식을 따르며 단순한 풍경을 넘어 공간의 질서와 균형감을 표현하고자 한 점이 눈에 띈다. 건축물의 요소를 그림 속 조형 요소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사용해 자연과 건축의 관계를 모색한 것이다. 마치 사진을 찍듯 현관 한쪽에 드리운 그림자를 생생하게 표현한 'Tree shadow with stairs'(1977)가 대표적이다.
대학에서 문학과 예술학을 공부한 브라운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채 작업을 시작했다. 학자의 길을 걷는 남편을 내조하고 세 아들을 키우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인 집에서 그림을 그리게 됐다. 그의 남편인 에릭 브라운은 앞서 씨씨오씨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아내의 그림은 분명 사실주의 화풍이지만 풍경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었다. 작품 안에는 늘 이야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일례로 부엌에 있는 자신과 어린 자녀의 모습을 함께 그린 'In the kitchen'(1965)은 작업과 살림을 병행했던 브라운의 개인적 서사와 열정을 보여준다. 브라운의 작업은 점차 빛과 물, 바람 등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 요소를 통해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갔다. 초기에는 집 안의 풍경이나 집을 밖에서 본 풍경을 각각 보여줬다면, 탐색과 전환기에 이르러서는 집 안에서 창문을 통해 내다본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일상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은 뒤 이를 콜라주해 조화로운 화면을 구성한 다음 여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면을 만들었다.
성숙기에 이른 1990년대 후반 이후 작품 중에는 'My summer breeze'(1999)를 제외하면 모두 작가가 창조한 풍경을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가 평소 "나는 풍경 화가가 아니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라운은 내부와 외부, 현실과 이상이 교차하면서 그 경계를 허물며 더욱더 내면적인 시선에 집중했다. 그래서 브라운 그림은 비슷한 장면이라고 해도 사진을 볼 때보다 더욱 정서적으로 다가온다.
또 다른 변화는 색채다. 빛과 그림자의 긴밀한 관계에 집중하면서 작품의 색감은 점점 더 맑고 투명한 쪽으로 변모했다. 특히 근작으로 갈수록 바람을 시각화하는 동시에 빛을 가리거나 투과시키는 커튼을 통해 정지된 장면이지만 시간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음을 암시하는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구축했다. 자연적 요소를 깊이 탐구하는 과정에서 화면의 구성 역시 더욱 간결해졌고, 작가 특유의 명상적인 분위기가 완성됐다. 'Evanescence'(2024)에서 창 너머로 비치는 빛과 수면 위에 드리운 그림자,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의 결은 단순한 장면을 넘어 내면의 사유로 이끄는 창이 된다.

이번 전시는 브라운 작품의 주요 요소인 빛과 그림자, 바람과 커튼 등을 전시장에 직접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몰입감을 높여 눈길을 끈다. 예컨대 지붕 위에 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장면을 그린 그림이 걸린 벽면에는 인공 조명과 인조 식물을 통해 만든 그림자가 나타나게끔 했다. 또 커튼이 등장하는 작품을 펼친 곳에는 커튼을 달아 바람에 흔들리게 했고, 햇살이 비치는 분홍색 집을 그린 'Dappled Pink'(1993)는 그림과 같은 분홍색 집의 일부를 구조물로 만든 뒤 그 안에 작품을 걸었다. 이런 연출은 마치 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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