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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3만원대면 안 갈 이유있나”...미쉐린 출신 셰프의 한식 안주 3종, 그리고 ‘와인 3잔’ [푸디人]

  • 안병준
  • 기사입력:2025.06.13 09:00:00
  • 최종수정:2025-06-15 13: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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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인-69] 마주한상(磨酒閑床) (feat. 명동 모와 레스토랑)

한식과 와인의 ‘마리아쥬’는 국내 와인업계의 풀릴 것 같으면서도 풀리지 않는 숙제 중 하나입니다. 와인은 바다 건너온 양식과 어울린다는 고정관념이 아직도 많은 국내 와인 애호가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데요. 와인의 태생이 외국이긴 하지만 와인도 결국 음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식과 어울리지 말란 법은 또 어디 있을까요.

국내 와인수입업체 중 와인과 한식의 페어링에 진심인 아영FBC는 항상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하길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서울 명동에서 운영 중인 와인바 겸 레스토랑 ‘모와’(MOWa)’에서 재밌는 페어링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바로 한국의 전통 미식 재료인 장(醬)과 제철재료를 활용한 ‘마주한상(磨酒閑床)’ 입니다.

3가지 한식 요리와 3가지 와인을 3만9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니 마냥 거부할 이유를 찾기는 어려워 보이네요.

제철메뉴와 어울린 와인으로 구성된 ‘마주한상’. 안병준 기자
제철메뉴와 어울린 와인으로 구성된 ‘마주한상’. 안병준 기자

정성스럽게 준비한 술상과 여유롭게 마주 앉은 자리
‘모와’(MOWa)’에서 선보인 마주한상. 안병준 기자
‘모와’(MOWa)’에서 선보인 마주한상. 안병준 기자

마주한상(磨酒閑床)은 ‘정성스럽게 준비한 술상(磨酒)’과 ‘여유롭게 마주 앉은 자리(閑床)’를 뜻합니다.

磨(마)는 ‘갈다, 정성 들이다’는 뜻으로 정갈하게 준비된 음식과 술을 의미하고 酒(주)는 말 그대로 ‘술’을 뜻합니다. 閑(한)은 ‘한가함·여유로움’을 뜻하며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음식을 음미하는 것을 나타내며 床(상)은 음식을 차려내는 ‘밥상’ 즉 정성스럽게 준비된 자리를 의미합니다.

즉, ‘마주한상’은 정성 들인 술상 위에 여유롭게 마주 앉는 시간을 뜻하며, 한국의 발효 식문화 속에 와인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경험을 전달하고자 했다네요.

그릇 또한 유승협 작가의 ‘기와’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도자기로 구성되어 한국적인 미식의 순간을 재현하려 노력했습니다.

유승협 작가의 ‘기와’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그릇. 안병준 기자
유승협 작가의 ‘기와’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그릇. 안병준 기자
제철 식재료와 전통 장의 만남
잿방어, 한우 2+ 육회, 돼지 항정살을 각각 비름나물, 산마늘, 청도미나리와 곁들여 제철 식재료의 신선함과 조화를 이뤄냈다. 안병준 기자
잿방어, 한우 2+ 육회, 돼지 항정살을 각각 비름나물, 산마늘, 청도미나리와 곁들여 제철 식재료의 신선함과 조화를 이뤄냈다. 안병준 기자

메뉴는 전통 장과 제철 식재료, 그리고 세계 각지의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한국 발효 음식의 깊은 맛과 와인의 숙성미가 조화를 이루는 경험을 통해 ‘와인이 한식과 어우러질 수 있는가’에 대한 미식적 해답을 제안하고 싶었다네요. 참고로 모와의 헤드 셰프는 밍글스 등에서 경험을 쌓은 문원기 셰프입니다.

먼저 48시간 이상 숙성한 잿방어에 유자를 가미한 초간장과 비름나물무침, 발효한 참외를 곁들인 요리입니다. 잿방어에 기름진 맛이 유자향과 참외의 상큼함과 어울려 침을 더욱 고이게 합니다. 함께한 와인은 ‘파이퍼 하이직 에센셜 NV’입니다. ‘섹시 심벌’ 메릴린 먼로의 아침을 깨우는 샴페인으로 알려져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기포가 섬세하고 우아해 보입니다.

두 번째는 명이나물과 발효한 표고버섯, 돼지감자 장아찌를 조합하여 만든 한우 홍두깨살 육회입니다. 파래를 이용한 타피오카칩과 매콤한 청양아이올리를 함께 곁들였는데 타피오카칩의 아삭함과 육회의 찐득함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게 특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매콤한 맛이 좀 더 올라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습니다.

와인은 하트포드 코트 러시안 리버밸리 피노누아 2022를 추천해주셨네요. 이 와인은 캘리포니아 와인 역사의 장인인 잭슨 패밀리 와인의 제품입니다.

잭슨 패밀리 와인은 나파 밸리 프리미엄 와이너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미국 와인 대회 역사상 최초의 플래티넘 와인 수상 등 캘리포니아 와인 역사의 기록제조기로 불리는 회사입니다.

하트포드 코트 러시안 리버밸리 피노누아 2022는 잘 익은 과일의 감미와 함께 입 안을 꽉 채우는 산도, 실크같은 타닌, 섬세한 텍스쳐가 조화를 이루는 복합적인 스타일의 피노누아 와인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마지막은 재래된장 소스에 재운 후 비장탄에 촉촉하게 구워낸 항정살입니다. 달래를 이용한 치미추리와 새콤한 청도미나리 무침을 곁들였습니다. 제철이 끝물인 달래와 미나리를 맛보며 지나간 봄이 문득 아쉽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와인은 해산물과 치즈에 어울리는 ‘아일린 하디 샤르도네 2022’였는데, 항정살의 살짝 기름진 맛과도 크게 부조화를 이루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일린 하디 샤르도네는 1853년 설립된 이래 5대에 걸쳐 내려온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중 하나인 하디스(Hardys)에서 ‘아일린 하디’를 기념하기 위해 출시한 와인입니다. 아일린 하디는 창업주인 토마스 하디의 조카 톰 메이필드의 아내로, 일찍 세상을 뜬 남편을 대신해 하디스 와이너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호주 와인 산업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1976년 영국 버킹엄궁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훈장을 받기도 했죠.

마주한상의 지금 메뉴는 이달까지 만날 수 있고 이달 말에는 여름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새로운 마주한상이 나온다고 합니다. 뜨거운 한여름 시원한 와인과 맛깔스러운 제철 한식을 가성비 있게 드시고 싶으시다면 명동 모와에 한번 들러보시는 게 어떨까요. 다만 성인 남성이 먹기에는 식사량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은 참고하시고요.

왼쪽부터 하트포드 러시안리버밸리 피노누아, 아일린 샤르도네, 파이퍼하이직 에센셜. 아영FBC
왼쪽부터 하트포드 러시안리버밸리 피노누아, 아일린 샤르도네, 파이퍼하이직 에센셜. 아영F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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