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프랑스 북동부 라인강 서쪽 강변 스트라스부르를 여행했던 이탈리아 화가 살보(살바토레 만지오네·1947~2015)가 작업실에 돌아와 그린 도시의 풍경이다. 분명 풍경화지만 그림 속 장소와 완전히 똑같은 곳은 현지에 없다. 그가 당시 여행에서 받은 인상을 토대로 풍경을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조형적으로는 실제보다 단순하지만 색채는 더욱 강렬하고 다채롭다.
살보의 한국 첫 개인전 'Salvo, in Viaggio'가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오는 7월 12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아내와 딸인 크리스티나 투아리볼리와 노르마 만지오네가 살보의 작품 세계를 알리기 위해 2016년 공동 설립한 살보재단과 글래드스톤의 협력으로 기획됐다. 작가가 생전에 세계 곳곳을 여행한 뒤 그 여행지를 주제로 작업했던 1980~2010년대 회화를 펼친다.
전시 제목의 '비아지오(Viaggio)'는 이탈리아어로 '여행'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살보재단은 살보가 그동안 여행지에서 받은 영감으로 작업한 회화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최근 한국을 찾은 만지오네는 "아버지가 생전에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정말 많이 다니셨다. 많은 여행지에서 받은 영감으로 회화 작업을 하시곤 했다"며 "그럼에도 그동안 아버지 작업을 전시로 선보이면서 여행을 주제로 했던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살보는 이탈리아, 독일, 그리스, 터키 등 유럽 지역은 물론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오만, 시리아, 티베트, 네팔 등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다양한 국가와 도시를 여행했다. 여행지마다 그의 눈길을 끈 것은 각양각색의 건축양식이었다. 첨탑을 포함한 건축물을 그린 '오토마니아(Ottomania)' 연작, 고대 기둥과 고고학 유적지를 다룬 '카프리치(Capprici)' 연작, 지중해의 풍경을 담은 '메디테라네이(Mediterranei)' 연작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살보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옮기기보다는 핵심적인 특징만 잡아낸 뒤 여행에서 받은 영감과 상상력을 더해 완전히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만지오네는 "아버지는 여행 중에는 절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꼭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은 건축양식이 매우 섬세하게 묘사돼 있지만 동시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살보의 그림에 여러 시간대와 계절이 중첩된 것도 비슷한 이유다. 만지오네는 "아버지는 하나의 여행지에서 세 가지 풍경을 떠올렸다. 그곳에 가기 전 상상했던 모습과 실제 그곳에 갔을 때의 모습,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뒤 다시 그곳을 기억해냈을 때의 모습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셨다"고 말했다.
[송경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