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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위에 재구성된 화가의 여행기…伊 작가 살보, 한국 첫 개인전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서 1980~2010년대 회화 펼쳐

  • 송경은
  • 기사입력:2025.06.05 09:06:59
  • 최종수정:2025.06.05 09: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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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서
1980~2010년대 회화 펼쳐
살보 ‘Strasburgo’(2013). 글래드스톤
살보 ‘Strasburgo’(2013). 글래드스톤

이른 아침일까. 거리에 사람 한 명 없는 고요한 도시를 찬란한 햇빛이 환히 밝히고 있다. 언젠가 프랑스 북동부 라인강 서쪽 강의 스트라스부르를 여행했던 이탈리아 화가 살보(살바토레 만지오네·1947~2015)가 작업실에 돌아와 그린 도시의 풍경이다. 분명 풍경화지만 그림 속 장소와 완전히 똑같은 곳은 현지에 없다. 그가 당시 여행에서 받은 인상을 토대로 풍경을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조형적으로는 실제보다 단순하지만 색채는 더욱 강렬하고 다채롭다.

살보의 한국 첫 개인전 ‘Salvo, in Viaggio’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오는 7월 12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아내와 딸인 크리스티나 투아리볼리와 노르마 만지오네가 살보의 작품 세계를 알리기 위해 2016년 공동 설립한 살보재단과 글래드스톤의 협력으로 기획됐다. 작가가 생전에 세계 곳곳을 여행한 뒤 그 여행지를 주제로 작업했던 1980년대~2010년대 회화를 펼친다.

전시 제목의 ‘비아지오(Viaggio)’는 이탈리아어로 ‘여행’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살보재단은 살보가 그동안 여행지에서 받은 영감으로 작업한 회화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최근 한국을 찾은 노르마 만지오네는 “아버지는 생전에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정말 많이 다니셨다. 많은 여행지에서 받은 영감으로 회화 작업을 하시곤 했다”며 “그럼에도 그동안 아버지 작업을 전시로 선보이면서 여행을 주제로 했던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살보는 이탈리아, 독일, 그리스, 터키 등 유럽 지역은 물론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오만, 시리아, 티베트, 네팔 등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다양한 국가와 도시를 여행했다. 여행지마다 그의 눈길을 끈 것은 각양각색의 건축 양식이었다. 첨탑을 포함한 건축물을 그린 ‘오토마니아(Ottomania)’ 연작과 고대 기둥과 고고학 유적지를 다룬 ‘카프리치(Capprici)’ 연작, 지중해의 풍경을 담은 ‘메디테라네이(Mediterranei)’ 연작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오토마니아’는 작가가 만들어낸 신조어다. 주로 시칠리아, 노르만, 아랍 양식이 결합된 교회 건축물을 묘사한 작업을 지칭하는 말이다.

살보 ‘Tre Colonne’(1990). 글래드스톤
살보 ‘Tre Colonne’(1990). 글래드스톤
살보 ‘Bosnia Erzegovina’(2015). 글래드스톤
살보 ‘Bosnia Erzegovina’(2015). 글래드스톤

하지만 살보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옮기기 보다는 핵심적인 특징만 잡아낸 뒤 여행에서 받은 영감과 상상력을 더해 완전히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만지오네는 “아버지는 여행 중에는 절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꼭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은 건축 양식이 매우 섬세하게 묘사돼 있지만 동시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살보의 그림에 여러 시간대와 계절이 중첩돼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만지오네는 “아버지는 하나의 여행지에서 세 가지 풍경을 떠올렸다. 그곳에 가기 전 상상했던 모습과 실제 그곳에 갔을 때의 모습,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뒤 다시 그곳을 기억해냈을 때의 모습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셨다”라며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여행을 주제 삼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빛을 통해 풍경을 재구성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탐구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살보가 오래도록 여행하길 소망했던 우즈베키스탄의 도시 키바를 모티브로 한 작품 ‘키바(Khiva)’(2015)도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인다. 실제 가본 곳을 배경으로 그린 다른 작품과 달리 이 작품은 유일하게 그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설명이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레옹포르테에서 태어난 살보는 이탈리아가 정치·사회적 혼란을 겪었던 시기 이탈리아 토리노로 이주했다. 당시는 토리노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미술사조인 ‘아르테 포베라’가 떠오르던 때였다. 초창기 다양한 재료를 실험하는 개념미술에 몰입했던 그는 1973년을 기점으로 구상 회화로 전향했다. 1976년과 198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스위스 루체른 미술관과 프랑스 님 현대미술관, 토리노 근현대미술관, 로마 현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언어를 구축했던 살보의 작품은 안타깝게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이탈리아 작가 살보의 한국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갤러리 전시장 전경. 글래드스톤
이탈리아 작가 살보의 한국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갤러리 전시장 전경. 글래드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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