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대한 상담이나 강의를 할 때마다 많이들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바로 이것이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날 때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엔 대체로 이런 고민이 수반된다.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욱해서 후회할 때가 많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하다못해 마트에서, 내 차 운전대 앞에서 우린 늘 마주하게 된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을.

그러고 보면 화(火)가 무슨 죄겠는가, 화라는 감정은 (모든 감정이 그러하듯) 날 만 하니까 난 거고 시간이 지나면 적당히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화가 치밀어오르는 그 순간을 적당히 넘기지 못하는 나 자신을 탓하게 된다. 마치 그저 자신의 소임대로 알맞게 튀겨져 맛난 냄새와 기름진 자태를 뽐내는 치킨이 아닌, ‘살이 찌네~ 다이어트를 해야 하네~’ 하면서도 주구장창 찾아먹은 나를 탓하는 것처럼. 그러니 늘 그게 문제이자 숙제인 거다. 이 놈의 화(火)를 처리하는 나란 인간의 반응.
그래서 다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날 때, 그 순간을 욱하지 않고 일단 잘 넘어가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어본다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난 이렇게 대답한다. “얼른 만지자”라고. 무엇을? 기왕이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의 것. 더 기왕이면 살아있는 것. 이를테면 반려동물의 복슬복슬한 털. 또는 밉지 않은 사람, 나의 배우자나 연인, 자녀, 친구라면 그들의 손이나 등, 어깨를. 아니면 나무 잎사귀나 꽃잎도 좋다. 만약 생물(生物)이 없다면 부드러운 인형, 담요, 마사지볼, 오늘 입고 온 부드러운 자켓이나 실키한 소재의 스카프라도 만지도록 한다.
별 것 아닌 거 같겠지만 그 효과가 제법 크다. 실제 분노에 자주 노출되는 감정노동자들이나 분노를 달고 사는 질풍노도의 청소년기 아이들, 감정 조절이 어려운 고령의 노인들에게 촉각 중심의 치료를 했더니 심리적 안정감이 회복되고 화, 스트레스는 경감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상당히 많다. 그만큼 우리의 뇌는 ‘촉각’에 즉각 반응한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을 때라도 일단 부드러운 자극이 들어오면 ‘어라? 이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느낌 뭐지~ 요거 요거 기분이 좋은데?!’ 하면서, 치솟던 분노의 강도를 약간은 가라앉히는 것이다. 그러면 딱 그만큼의 차분함이 생긴다. 소위 부교감 신경(parasympathetic nervous system, PSNS)이 활성화되면서 안정감과 통제력이 회복된다. 바로 그 틈에 우리는 순간적으로 욱하는 반응을 조금은 뒤로, 즉 내가 원하는 때와 원하는 방식으로 슬쩍 미룰 수 있게 된다.
그러니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날 때가 오면, 얼른 내 옆에 있는 부드러운 촉감의 것, 말랑이는 것을 찾아 딱 3분만 쓰다듬자. 아, 그런데 눈 씻고 찾아봐도 지금 당장 그것들이 없다면? 아휴, 무슨 걱정인가. 내 두툼한 뱃살도 수단이 될 수 있다. 사실 그러려고 우리가 평소에 ‘내가 죄인입네~’ 하면서도 치킨님(!)을 노상 열심히 영접해둔 거 아니겠는가.
[글 변시영(상담심리전문가(Ph.D), 『마흔, 너무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게』 저자) /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80호(25.05.2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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