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코로나19 기간에 개봉하지 못한 '창고 영화'(미개봉작)까지 바닥이 나면서 영화계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대로 가다간 수년간 '2억명'을 훌쩍 넘겼던 극장 관객 수가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1억명 이하'로 급감하리란 우려도 나온다.
15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내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2625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4024만명에 비해 약 1400만명 줄어든 수치다. 극장가 매출도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작년 1~4월 극장 매출은 3917억원, 올해 같은 기간엔 2515억원을 기록하며 1400억원가량이 증발했다.
1~4월 영화 관객 수(2625만명)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해 3배수를 곱하면 7875만명대가 나오는데, 이는 허황한 산술적 계산이 아니다. 극장들은 작년 1~4월 4024만명, 한 해 동안은 1억2513만 관객 수를 동원했는데 5~12월에 별다른 '변수'가 등장하지 않아 3배수가 그대로 적용됐기 때문이다.
개봉 신작도 급감 중이다.
KOBIS에 따르면 올해 1~4월 신규 개봉한 국내외 영화는 406편으로 작년 동기 493편에 비해 80편 이상 줄었다. 팬데믹 기간에는 2021년 671편, 2022년엔 590편에 달할 정도였는데 현저히 숫자가 줄어들었다.
영화계 관계자는 "극장가 수익을 지탱해주는 대작 영화(텐트폴 영화)가 올해 상반기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며 "OTT의 대체 효과, OTT에 비해 대중이 비싸다고 느끼는 티켓값,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인해 침체된 분위기가 연초 영화시장 위축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영화의 황금기가 팬데믹이란 충격파에 의해 휘청거린 이후 종막에 다다른 것이다.
한국 극장가는 2012년 1억9489만명을 동원한 뒤 이듬해인 2013년 2억1225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사상 처음으로 '2억 관객' 시대를 연 바 있다.
당시 2억 관객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었다. 2014년 2억1506만명, 2015년 2억1702만명 등 2억 관객이 꾸준히 이어졌고 팬데믹 직전인 2019년 2억2667만명으로 고점을 찍었다. 2억 관객 시대는 7년간 단 한 해도 멈추지 않았다.
신작 영화가 부재한 사이 국내 극장가에는 재개봉작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과거 개봉했던 구작을 4K 리마스터링판이나 감독판 등으로 바꿔 극장에서 재상영하는 것을 재개봉이라 한다.
최근 들어서는 재개봉 수준이 두 번째 개봉이 아니라 3회 이상 개봉하는 경우도 주요 마케팅 관행으로 굳어졌다. 영화 '색, 계'는 역대 3번째(1월 1일) 개봉했고, '죽은 시인의 사회'는 4번째 개봉(1월 27일), '클로저'도 4번째 개봉(2월 3일), '500일의 썸머' 역시 4번째 개봉(2월 12일), '양들의 침묵'은 2번째 개봉(3월 7일), '존 윅'은 5번째 개봉(3월 19일)했다.
'패왕별희'는 지난 3월 26일 8번째 개봉, '러브레터'는 지난 1월 21일 무려 10번째로 개봉했다. 이달 28일 재개봉이 예정된 '아마데우스'도 이번이 한국에서 3번째 개봉이다.
영화계 관계자는 "마니아층의 관심과 4K 리마스터링 기술로 옛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관람하려는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는데, 재개봉작은 안전한 선택이긴 하나 큰 흥행으로 연결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극장가의 침체는 북미와 유럽 시장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중이다.
북미 영화 통계 사이트 '더 넘버스'에 따르면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영화시장의 2025년 극장 관객 수는 7억명을 간신히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북미 시장 극장 관객 수는 7억6216만명, 2023년엔 8억1930만명이었다. 팬데믹 이후 지속 하락세다. 극장가 최고 황금기였던 팬데믹 이전의 북미 극장 관객 수는 12억~13억명대였다. 영국은 극장 관객 수가 팬데믹 직전 1억7600만명이었다가 팬데믹 당시 4400만명까지 떨어진 뒤 작년엔 1억3800만명을 기록했다.
18개월에 달하는 홀드백(극장 상영 뒤 OTT 유통 금지 기간) 등 영화산업을 강력히 보호하는 프랑스만이 팬데믹 직전 2억1300만 관객보다 약 10% 줄어든 1억8000만명을 유지 중이다.
변수는 남아 있다. 17일 개봉 예정인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과 12월 개봉하는 '아바타: 불과 재'의 개봉은 기대를 모은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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