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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seas Trip]친숙한 일본, 낯설게 여행하기

하코다테, 항구 도시에서 낯선 풍경을 만나다 야마나카, 시인이 칭송한 온천수를 만나다 니가타, 사케의 도시를 새롭게 만나다

  • 추효정(여행작가)
  • 기사입력:2025.05.09 12:54:15
  • 최종수정:2025-05-09 1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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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 항구 도시에서 낯선 풍경을 만나다
야마나카, 시인이 칭송한 온천수를 만나다
니가타, 사케의 도시를 새롭게 만나다

일본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여행지다. 그렇다면 익히 들어본 것 같은 목적지에서 잠시 벗어나 낯섦을 여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친숙한 나라에서 다소 이색적이고 낯선 장소, 특별한 주제의 여행을 맞닥뜨린다면 그 신선함은 곱절의 경험으로 나타날 것이다.

항만 창구를 개조해 만든 하코다테의 한 쇼핑몰
항만 창구를 개조해 만든 하코다테의 한 쇼핑몰

오래된 그곳, 하코다테

항구 도시에서 낯선 풍경을 만나다

기대는 실망을 자초한다. 그러나 기대가 없는 여행이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기대가 없는, 그래서 실망도 없는 여행을 바란다면 ‘무계획’에서 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저것 재고 따지지 말고 무작정 가보는 것. 아무런 정보도 계획도 없이 도달한 낯선 곳에서 낯선 상황을 하나둘 맞닥뜨리며 이어가는 여행, 하코다테 여행이 그랬다.

하코다테는 홋카이도 남부에 위치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도시 중 하나다. 오늘날엔 홋카이도에서 삿포로에 밀려 2인자 신세를 면치 못하는 도시지만 역사적으로 하코다테는 일본 최초의 개항 도시이자 일본 북부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1934년 일어난 심각한 대화재로 도시 건물의 반 이상이 파괴되고, 이로 인해 수천 명의 사상자 및 이주민이 발생하는 대참사가 이어졌으며 그 결과 급격한 인구감소가 나타나 이는 도시의 명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건이 됐다.

사진설명

여러 부침에도 불구하고 하코다테를 이루는 핵심요소는 바로 ‘독보적인 항구 도시’라는 점이다. 하코다테 도심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모토마치 지구에 닿는다. 이국적인 서양식 건축 스타일로 지어진 성당과 교회 건물의 낯선 풍경을 가장 먼저 맞닥뜨리게 된다. 항구 도시라는 이점은 외국인과의 활발한 교역과 문화교류에서 영향을 받아왔다.

여러 교회 건물 가운데 가장 특색 있는 곳은 러시아 정교회 건물이다. 1858년 러시아 영사관에 의해 설립된 일본 최초의 정교회 교회로서, 오늘날까지 하코다테의 서양식 건축물을 대표하는 데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 1859년 설립된 로마 카톨릭 교회, 1874년 하코다테를 방문한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개신교 교회, 같은 해 영국인 신부가 세운 성공회 교회 등도 볼 만하다. 현존하는 교회 건물은 1930~40년대 재건축 및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재건된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

(위) 하코다테 만 전경  (아래) 영국인 신부가 세운 성공회 성 요한 교회
(위) 하코다테 만 전경 (아래) 영국인 신부가 세운 성공회 성 요한 교회

항구 도시의 매력은 아침과 밤, 서로 다른 두 얼굴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하코다테의 아침은 도심의 시장이 중심이다. 새벽 5시에 문을 여는 하코다테 아침시장 ‘히로바’는 항구 도시의 진가를 코끝에서부터 느끼게 한다. 각종 신선한 수산물이 일으키는 짜고 비릿한 하모니가 아침을 깨우기 때문.

약 250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는 시장은 하코다테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다양한 해산물과 향토 음식을 제공하는 거점 장소다. 또다른 아침 산책은 하코다테 만 지역을 걷는 것.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 낯선 공기가 전혀 차갑지 않은, 오히려 정신을 맑게 돋우는 기분을 만끽하면서 아름다운 항구의 아침 풍경을 감상한다.

일본 최초의  러시아 정교회 건물
일본 최초의 러시아 정교회 건물

이제 밤의 얼굴을 살필 차례. 목적지는 하코다테산이다. 해발 334미터에 위치한 하코다테산을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버스나 케이블카를 이용해도 좋지만 시간이나 체력적 여유가 있다면 하이킹을 추천한다. 도심에서 산 정상까지 1시간가량 소요되는데,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지 않아 다소 쉽게 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정상으로 가는 길에 내려다보는 도시 풍경이 제법 훌륭하다는 것.

하코다테산 전망대 야경은 일본 3대 야경 중 하나로 유명한 곳이다. 한데 막상 맞닥뜨린 관광객들로 붐비는 정상에서의 야경보다 중턱에서 고요히 바라다본 풍경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위) 탁 트인 해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다치마치곶  (아래) 하코다테산 정상에서 바라다본 시내 전경
(위) 탁 트인 해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다치마치곶 (아래) 하코다테산 정상에서 바라다본 시내 전경

야마나카 온천 마을

에도시대 시인이 칭송한 그 온천수

일본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온천 방문에 있다. 화산활동이 활발한 일본에는 전국에 수천 개의 크고 작은 온천이 자리한다. 온천은 지하수가 지열에 의해 데워져 지표로 나온 것으로 화산 주변은 지열이 매우 높기 때문에 그에 따른 영향으로 온천 마을이 발달해 있다. 일본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온센(温泉)’이라 쓰여진 간판을 쉬이 찾아볼 수 있는데, 아름다운 협곡을 따라 자리잡은 온센을 발견하면 온천욕 이상의 경험을 기대해볼 수 있다. 일본 이시카와현 남서부에 위치한 가가 지역에서 그 값진 경험을 만끽했다.

하쿠산 산기슭에 자리잡은 가가 지역은 예로부터 온천 천국으로 일컬어졌다. 많은 수의 사원과 온천이 자리해 있어 일본 현지인들 사이에서 ‘관광 도시’로 인식되는 곳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다. 그중 산악 지역에 카쿠센 계곡을 따라 들어서 있는 야마나카(Yamanaka) 온천 마을은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가가 지역을 구성하는 4대 온천 마을 중 하나다.

(좌) 카쿠센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속 하이킹 코스 (우) 하쿠산 산기슭에 자리잡은  야마나카 온천 마을
(좌) 카쿠센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속 하이킹 코스 (우) 하쿠산 산기슭에 자리잡은 야마나카 온천 마을

1,300여 년 전 방랑 승려 교키에 의해 발견된 이 마을의 온천수는 약알칼리성을 띠며 이 지역에서 가장 좋은 온천수를 뿜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야마나카 온천 마을이 일본 전역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에도시대 유명한 하이쿠 시인인 마츠오 바쇼를 통해서다. 이곳에 한동안 체류하며 온천에 대한 칭송을 담은 시를 쓰기도 했던 그는 야마나카 온천 마을을 일본 최고의 온천이라며 극찬해 마지 않았다.

나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온천 마을을 방문했는데 차가운 공기가 온천수에 대한 열망을 더욱 자극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온천에 앞서 먼저 협곡을 따라 산책을 즐겼다. 경치 좋은 카쿠센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속 하이킹 코스는 야마나카 마을 여행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이곳 협곡에는 여러 개의 다리가 마을의 주택가와 산책로를 이어주고 있다. 독특한 철교로 디자인되어 마치 숲속 풍경과 어우러져 동화 속 느낌을 자아낸다. 다리 위에서 바라다보는 무성한 나무숲과 주택가 풍경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해 평화로운 휴식처가 따로 없다.

(위)  다이죠지 강변 산책로에서 강을 바라봤다. (아래) 대중온천탕 ‘기쿠노유’ 전경
(위) 다이죠지 강변 산책로에서 강을 바라봤다. (아래) 대중온천탕 ‘기쿠노유’ 전경

다이죠지 강변을 따라 한 시간여 산책을 즐긴 후 다시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향했다. 야마나카 마을의 도심에는 좁은 골목길 사이로 오래된 일본식 건물이 자리잡고 있어 옛 일본 마을의 정겨운 풍경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이 중심부에 마을의 상징 건물인 대중온천탕 ‘기쿠노유’가 있다. 남탕과 여탕으로 나뉘어 두 개의 별도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 이곳에서 시인 마츠오 바쇼가 칭송했던 온천수에 몸을 담갔다.

광물 성분이 풍부해 치유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 온천수에 몸을 맡긴 채 통창으로 구름에 뒤덮인 바깥 풍경에 한동안 넋을 잃었다. 오감이 일제히 함성을 일으키듯 온천수에 반응하는 짜릿한 쾌감이 그 시간을 채웠다.

술맛 부르는 곳, 니가타

최고의 쌀과 물이 빚어내는 사케의 도시

니가타 강변 풍경
니가타 강변 풍경

이번에는 사케의 도시로 간다. 쌀겨를 발효시켜 만드는 일본식 쌀 와인의 일종인 사케는 ‘쌀’의 품질이 곧 술맛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키워드다. 때문에 예로부터 양질의 쌀 재배가 이뤄지는 지역이 사케의 고장이라 불렸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니가타다. 지리적으로 서쪽으로 동해를, 동쪽으로 산악 지대를 끼고 있는 니가타는 해발 고도가 낮은 데다 풍부한 자연 환경, 일본에서 가장 긴 강인 시나노강이 흐르는 천혜의 영향으로 오랜 세월 고품질의 쌀 재배가 가능해 사케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특히 에도시대부터 곡창지대를 필두로 유명 술 양조장이 발전하기 시작해 오늘날 니가타 전역에는 약 90개의 사케 양조장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곳은 일본 전역에서 가장 많은 사케 양조장을 보유한 도시로서, 약 500여 종에 달하는 많은 종류의 사케가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케의 도시’답게 니가타에서는 매년 3월이면 도시 전역에서 박람회가 열리는데, 사케를 기반으로 다양한 주제의 축제 및 공연, 강의, 워크숍 등이 대규모로 펼쳐진다.

이마요 츠카사 양조장의 내부 시설
이마요 츠카사 양조장의 내부 시설

지역에 위치한 양조장을 방문해 제조과정을 살피고 사케를 맛보는 양조장 투어도 니카타 여행의 핵심이다. 도심에 자리한 이마요 츠카사(Imayo Tsukasa) 투어를 미리 예약한 뒤 양조장을 찾았다. 1시간여 동안 영어와 일본어 두 그룹으로 나눠 진행된 양조장 투어는 내부시설을 둘러보며 역사와 제조에 관한 설명을 듣고 투어 말미에 사케 시음을 했다.

이마요 츠카사 양조장은 1767년 여관 겸 사케 가게로 문을 열었다. 당시 이곳 지역 사케 양조업자들 사이에서 사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사케에 물을 많이 섞기로 악명 높았는데, 워낙 물 양이 많다 보니 물고기가 살 수 있을 정도로 희석되었다는 의미로 ‘금붕어 사케’라는 별명이 우스갯소리로 나돌았다.

(위로부터)이마요 츠카사 양조장 입구 전경, 사케 제조과정을 엿볼 수 있는 양조장 투어, 사케 제조에 쓰이는 니가타 쌀
(위로부터)이마요 츠카사 양조장 입구 전경, 사케 제조과정을 엿볼 수 있는 양조장 투어, 사케 제조에 쓰이는 니가타 쌀

하지만 이마요 츠카사 양조장은 잔꾀를 부리는 대신 전통 제조법을 고수해 사케 생산에 힘썼고, 그 결과 니가타 대표 사케로 명성을 쌓아 오늘날에 이른다. 사케 제조에서 쌀과 물의 조합은 최고의 맛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오로지 100% 고품질의 니가타산 쌀과 스가나타케 산의 맑은 물을 기반으로 술을 빚고 있는 이곳 양조장의 철칙은 긴 세월의 흐름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맛을 지키는 배경이다.

쿠비키 자전거도로

옛 철도 트레일을 따라 즐기는 라이딩

다소 이색적인 일본 여행을 원한다면 자전거 두 바퀴에 몸을 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서울과 부산을 잇는 몇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장거리 구간의 자전거도로는 극히 드문 편이다. 대다수의 자전거도로가 50~100킬로미터 안팎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그중 쿠비키 자전거도로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토이가와와 조에쓰 사이 동해 연안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며 총 32킬로미터로 뻗어 있는 이 자전거도로는 일본 특유의 옛 정취를 품고 있는 어촌과 산간 농장을 통과하는 풍경이 자전거 페달을 밟게 하는 매력적인 요소로 꼽힌다.

(위쪽 좌로부터 시계 반대방향)동해의 탁 트인 풍경, 어촌 마을 풍경,  쿠비키 자전거도로
(위쪽 좌로부터 시계 반대방향)동해의 탁 트인 풍경, 어촌 마을 풍경, 쿠비키 자전거도로

이 구간은 1960년대 철도 트레일로 쓰였던 옛 호쿠리쿠 철도의 잔해 위에 자전거도로를 건설한 것이 특징이다. 역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이 자전거도로 위 여러 개의 터널과 다리를 따라 라이딩을 하다 보면 과거로 회귀한 것 같은 독특한 매력을 더한다. 자전거길이 차량이 통과하는 도로와 다소 떨어져 있어 차량이 일으키는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 또한 쿠비키 자전거도로의 장점 중 하나다.

전체 구간을 통과하려면 약 4~5시간 정도 소요된다. 당일치기 여행으로 이상적인 코스다. 이토이가와나 조에쓰를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하루 정도 라이딩에 시간을 내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을 쌓는 선택이 될 것이다. 라이딩을 하려면 일단 자전거가 필수적이다. 편리한 라이딩을 위해 자전거 대여점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

여러 개의 좁다란 터널을 통과하는 자전거길
여러 개의 좁다란 터널을 통과하는 자전거길

이토이가와역이나 조에쓰묘코역 주변에 자전거 대여점이 자리해 있어 쉽게 자전거를 빌려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당일치기 이색 여행으로 시도해볼 만한 이유다. 쿠비키 자전거도로를 따라 자리한 여러 곳의 지역 신사와 오래된 전통 농가에 자리 잡은 민속 박물관, 해산물 시장을 차례로 방문하고, 동해의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하는 것 또한 놓치지 말 것.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77호(25.04.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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