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스 카버의 아시아 첫 개인전 '승화'가 오는 6월 14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화이트큐브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지옥(불)' 연작과 '풍경(공기)' 연작 등 신작 10점을 선보인다. 카버는 "현대 회화는 하나의 거칠고 광대한 대지와 같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역사적 공허함과 과거에 대한 향수(또는 집착)로 인한 갈라짐이 있지만, 곧 예술가들의 유토피아적·디스토피아적 환상으로 메꿔져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고 밝혔다.
카버의 작업은 다층적으로 이뤄진다. 프로타주(드로잉 도구로 질감이 있는 표면 위를 문질러 탁본을 뜨는 기법)가 대표적이다. 그는 나무 틀에 고정하지 않은 캔버스 천 밑에 조형물을 놓은 뒤 그 위에 대고 유화 물감을 칠하면서 조형물의 도드라진 부분이 캔버스 위에 드러나게 작업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밑그림 위에 인물 등 다른 요소를 그려 완성하는 방식이다. 밑그림과 그 위에 그려진 그림이 중첩되면서도 동시에 깊이감이 느껴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낸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또 다른 연작인 '풍경'은 대기의 순환을 모티브로 한다. '원시적 축적'(2025)에서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선들은 수술실의 무균 공기 순환 시스템 도면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에 '지옥' 연작의 요소들을 가져와 종이에 옮겨 그린 뒤 이를 가이드 삼아 바늘로 폼코어에 구멍을 뚫고, 다시 이 점묘층에 프로타주 기법을 적용해 환영 같은 흔적을 만들었다. 그 결과 지옥 연작에 있던 인물과 요소들은 유령처럼 흐릿하게 남아 변혁의 단계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앞서 '지옥' 연작이 파괴를 목격하도록 했다면 '풍경' 연작은 상한 마음에 치유와 휴식을 가져다주는 듯하다. 작품의 배치 역시 입구 쪽에서 먼저 '지옥'을 감상하고 안쪽 방에서 '풍경' 을 관람하도록 구성됐다.
[송경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