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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편, 불같은 수컷에 불과했는데”...자상한 ‘보호자’로 확 바뀐 이유는 [Book]

아버지의 시간, 사라 블래퍼 흘디 지음, 김민욱 옮김, 박한선 감수, 에이도스 펴냄 낯선 새끼를 공격하던 수컷쥐 오랜시간 친밀하게 접촉하니 공격성 거두고 따뜻하게 돌봐 진화생물학 속 육아하는 남성 테스토스테론 줄고 애착 증가 부모의 역할 분담은 관습일뿐 남성의 육아본능은 내재된 것

  • 박윤예
  • 기사입력:2025.04.27 06:54:07
  • 최종수정:2025.04.27 06: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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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시간, 사라 블래퍼 흘디 지음, 김민욱 옮김, 박한선 감수, 에이도스 펴냄

낯선 새끼를 공격하던 수컷쥐
오랜시간 친밀하게 접촉하니
공격성 거두고 따뜻하게 돌봐

진화생물학 속 육아하는 남성
테스토스테론 줄고 애착 증가
부모의 역할 분담은 관습일뿐
남성의 육아본능은 내재된 것
[사진 = 픽사베이]
[사진 = 픽사베이]

햄스터와 같은 설치류 수컷이 새끼에 대해 얼마나 극단적으로 다르게 행동하는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새끼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행동부터, 새끼를 죽여버리는 치명적인 행동까지 나타난다. 잠재적으로 영아 살해를 할 수 있는 수컷이 어떻게 자상한 아버지로 변하는지 심리생물학자들은 이해하고자 했다. 수컷 쥐가 예상치 못한 새끼를 발견했을 때 무시하거나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험자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수컷에게 새끼를 보여주면 차츰 수컷은 놀라운 변화를 겪는다.

수컷은 새끼를 공격하는 것을 멈추고, 참아내기 시작하며 결국 돌보기까지 한다. 결국 새끼를 낳았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새끼와의 장기간 친밀한 노출이었다. 임신과 출산의 호로몬 자극이 따로 없더라도 양육을 위한 신경내분비 회로의 최적화는 어미뿐 아니라 집단 내 다른 수컷 혹은 다른 암컷, 즉 보조 양육자에게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쥐뿐 아니라 인간도 마찬가지다. 평생 인간 및 영장류의 생식 전략을 연구한 저자도 사위가 육아를 전담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자는 사위가 갓난아기를 부드러운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말리고, 패드 위에 눕히고, 기저귀를 갈고, 포대기로 감싸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영락없는 육아 전문가였다. 아기는 편안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1946년생 여성인 저자는 아이를 돌보는 일은 오로지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세상이 변했다. 이 새로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묻고 답한다.

사진설명

아기와 오랜 시간 친밀하게 접촉한 남성은 프로락틴 수치가 조금씩 오르고 남성 호로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감소하며 기분 변화도 경험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젖샘을 자극해 젖이 나오게 하는 프로락틴 수치가 남성에게도 상승하는 등 내분비계의 변화 현상이 일어난다. 그 결과 이전에는 조용했던 남성의 편도체와 시상하부를 포함한 감정 처리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

또한 아이를 돌보기 시작한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옥시토신 수치가 상승한다. 옥시토신은 분만 시 자궁 수축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출산 후 어미가 새끼를 가까이 두고 싶어하도록 만든다. 이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애착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아버지의 옥시토신 수치는 임신과 출산 없이도 어머니와 비슷했다. 다만 아버지의 옥시토신은 자극적인 놀이 시간을 통해 보다 높아졌다. 포유류에서 어미가 아기를 돌보도록 진화한 신경 및 호로몬 시스템이 인간 남성에게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생물에서 관찰된다. 선충류, 물고기, 두꺼비, 새, 설치류에 이르기까지 수컷들은 알, 애벌레, 올챙이 또는 새끼와 접촉할 때 놀라운 방식으로 반응한다. 새끼에 장기간 노출된 수컷은 새끼에게 끌림을 느끼기 시작하고 이후 새끼를 소중하고 친근하게 여긴다.

아직 육아하는 남성에 대한 연구는 걸음마 단계다. 연구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연구 표본의 크기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1990년대 들어서야 두 연구자, 캐서린 윈 에드워즈와 앤 스토리에 의해 아버지의 뇌는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이후 비교심리학자, 진화인류학자, 정신생물학자, 그리고 신경과학자가 아기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을 기록하고자 분주히 움직였다.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육아하는 남성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에 육아는 어머니의 몫이고 아버지는 거들 뿐이라는 주장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아직도 그런 아버지가 있다면 이 책을 권한다. 발달심리학자인 마이클 램은 “수유를 제외하면 여자가 남자보다 부모 역할을 하기에 더 낫다는 생물학적 증거는 없다. 전통적인 부모 책임 분담은 생물학적 타당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관습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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