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얀마 대지진 등 해외 재난 상황을 외면하는 것은 잘못인가.
▷도울 능력이 있는데 돕지 않는다면 잘못이다. 재난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부하기보다는 장기적인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단체에 일상적으로 기부하는 것이 좋다.
-아프리카 기아 문제를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72년 '기근 풍요 도덕'에 대한 글을 처음 썼을 때 사람들이 세상의 빈곤에 대해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물에 빠진 아이'라는 비유를 사용했다. 공원을 걷고 있는데 어린아이가 연못에 빠져 익사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상상해보라. 주변에 부모나 베이비시터가 있는지 둘러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비싼 신발이 망가진다 해도 아이를 구하지 않으면 잘못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가 바로 눈앞에 있지 않고 아프리카나 다른 저소득 국가에 있다 한들 무엇이 다를까. 중요한 것은 적은 비용으로 아이를 도울 수 있느냐다.
-한국에선 노후나 자녀 지원 문제로 기부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데.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노부모를 부양하거나 자녀를 교육하는 데 쓰는 돈 말고 불필요한 곳에 돈을 쓰는지 살펴야 한다. 예컨대 새로 나온 아이폰, 친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비싼 외제 차 등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것들 말이다. 이보다 금액이 작은 옷이나 레스토랑, 콘서트 등 소소한 지출도 있을 것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하루 2.15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극빈층 인구가 약 7억명에 달한다.
-인색한 기부 문화를 바꾸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기부에 관해 이야기하길 꺼리는 문화가 있다. 이건 잘못된 태도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기부하는 것을 알면 기부할 의향이 강해진다는 증거가 많기 때문이다.

▷옥스퍼드대 대학원생일 때부터 기부를 시작했다. 아내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었고 난 장학금을 받고 있었다. 소득의 10%를 기부했다. 당시 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희생은 아니었다. 오히려 삶을 풍요롭게 하고 만족감을 주었다. 그러다 수입이 늘어나면서 기부액도 늘렸다. 지금은 수입의 최소 3분의 1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려고 노력한다. 2023년엔 100만달러 상금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전액을 기부했다.
-기부의 가장 큰 선물은.
▷기부를 통해 삶의 목적의식을 갖게 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골프를 치는 친구들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돕고 세상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에 비하면 골프는 지루한 일이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데.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행정부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2년 안에 중간선거가 치러지면 민주당이 다시 하원을 차지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게 되길 바란다.
-트럼프 대통령과 하버드대의 갈등을 어떻게 보고 있나.
▷프린스턴대가 하버드대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프린스턴대도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거절해 연구 지원금 2억1000만달러를 잃었다. 정부가 대학의 교육 내용을 지시해서는 안 된다. 특히 하버드대나 프린스턴대처럼 주립대학이 아닌 사립대학의 경우 더욱 그렇다.
-동물 안락사 찬성 입장은 인간에 대해서도 동일한가.
▷그렇다. 고통을 덜어줄 방법이 없다면 생명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경우 자발적 안락사를 지지한다. 죽음이 임박한 말기 질환 환자의 경우 삶의 질이 좋지 않다면 환자가 원하는 시간에, 가족이 곁에 있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아 국가 중 이를 합법화한 국가가 없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국이 최초로 이를 시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공지능(AI)이 의식을 갖는다면 도덕적 지위와 권리는.
▷아직 AI가 의식이 있거나 의식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생물학적 물질이 아닌 실리콘 칩으로 전류를 흐르게 하면서 의식을 가진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의식이 있는 존재가 고통이나 쾌락을 느낄 수 있다면, 내가 동물에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과 같은 원칙은 다른 모든 의식이 있는 존재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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